하스모니안 왕조 - 마카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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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4세의 폭정으로 유대 모데인 마을 출신의 제사장 마타디아스와 그의 다섯아들들이 안티오쿠스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팽배한 헬라주의에 대한 반동임과 동시에 시리아에 대한 독립전쟁이기도 했다.
1. 마카비 시대(주전 166-139년)
1) 제사장 마타디아스의 봉기
경건한 유대인들('하시딤')은 안티오쿠스 4세의 정책에 반대하여, 목숨을 걸고 율법을 준수하려고 했다. 어느 날 하스모니아라고 하는 집의 가장이었던 마타디아스가 제우스에게 제사를 드리던 자를 죽이고, 안식일을 준수하고 율법을 지키기 위해 광야로 피신하였다. 그때 경건한 자들이 이 세력에 연합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배교한 유대인들을 척결했다. 후에 마타디아스는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불과 1년 후에 전사했다.
이들의 저항운동은 마카비의 세아들에 의해 계속 수행됨으로 하스몬 가문의 이들이 약 130년간 유대를 다스리게 된 것이다.
2) 유다 마카비(166-160년)
마타디아스의 아들인 유다 마카비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군대를 인도하였다. 마카비는 히브리어로 망치라는 뜻으로 유다에게 붙여진 이름이나 후에 이 가문이 마카비라고 불리게 된다. 그는 시리아 요새를 점령하였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탈환하였다. 그리하여 주전 164년 12월 25일에 제단에 제사를 다시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시리아는 이들을 공격하였으나, 왕의 후견인인 루시아가 철수 명령을 내림으로 공격이 중단되었다. 이로 인해 유다는 다시 율법을 준수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카비는 돈을 주고 대제사장직을 산 메넬라우스를 제거하였다. 그러자 시리아 왕 데메트리우스 1세가 또 다시 헬라화를 지지하는 알키무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는 헬라화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아론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경건한 사람들('하시딤')은 자기들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헬라에 항거하지 않았다. BC165년 유다 마카비는 이교도에 의해 더럽혀 진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고 성전을 정화하였다. 이후로 성전정화를 기념하는 하누카(수전절 요10:22)라는 절기를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유다 마카비는 정치적인 독립을 얻어야 진정한 종교적인 독립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시리아에 항거하였다. 그는 주전 160년에 시리아와의 전쟁에서 전사하였으며, 헬라화를 지지하던 대제사장 알키무스도 주전 160년 말에 죽고 대제사장직은 공석으로 남게 되었다.
3) 요나단 마카비(주전160-142)
유다 마카비가 죽은 후에 그의 형제인 요나단 마카비가 그 뒤를 이었다(주전 160-142년). 요나단은 데메트리우스 1세와 정적이었던 알렉산더 발라스를 지지하였는데 결국 왕권 다툼은 알렉산더 발라스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 발라스는 자신을 지지해 준 요나단 마카베오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였고, 공석이었던 대제사장직까지 겸임하게 해 주었다(주전 153년). 그러나 경건한 사람들('하시딤')은 많은 피를 흘린 요나단이 대제사장이 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으며, 마카베오 가문과 멀어지게 되었다.
이때 자칭 안티오쿠스 4세의 아들이라고 하는 자가 일어나서 알렉산더 발라스를 몰아내고 다시 왕권을 탈취하였으며, 그는 자신을 데메트리우스 2세라고 불렀다. 후에 데메트리우스 2세는 안티오쿠스 6세와 다시 세력 다툼을 하게 되었다. 이때에 안티오쿠스 6세를 지지하던 트리포라는 자가 데메트리우스 2세를 지지하던 요나단 마카비를 죽여버렸다(주전 142년).
4) 시몬 마카비(주전 142-134년)
요나단의 뒤를 이은 사람은 그 동생인 시몬 마카비였다(142-134년). 시몬은 유다 군대의 총 사령관과 대제사장직을 겸하였다. 그는 마침내 시리아 군을 예루살렘에서 몰아내고 이스라엘 독립을 쟁취하였다(주전 142년). 그리고 시리아에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았으며, 나라에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열었다. 유대 백성들은 유대의 통치권을 시몬의 가문에 세습시킬 것을 결의했다(주전 140년). 그 이후 그의 후손들은 왕위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하스모니안 왕조라 불리게 되었다. 이는 시리아에 가장 먼저 항거한 맛다티아스의 아버지의 이름인 하스몬을 따서 이 왕조를 하스모니안 왕조라고 불렀다.
[하스모니안 왕국]
시몬과 그의 후손들은 BC63년 로마가 쳐들어 올 때까지 약 80년간 유다 독립 국가를 다스렸다. 역사가들은 이 기간을 가리켜 하스몬 왕조라고 부른다.
5) 요한 힐카누스 1세(134-104): 시몬의 아들
시몬이 사위(톨레미)에 의해 살해된 후 그 뒤를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 1세가 계승한다. 그가 경건하지 못한 자로 왕겸 대제사장이 되므로 하스모니안 왕조는 살육과 왕권쟁탈로 얼룩지게 된다.
이때 유대교에서 세 종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하시딤(경건한 자들)이 분열하게 되는데 바로 이들이 에세네파들이다. 이들은 극도의 성별과 의식주의를 추구한다. 그리고 성전을 중심으로 마카비들과 연계한 바리새인들은 아론의 자손이 아닌 자들이 제사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여 하스몬 왕조와 분리하며 정치에서 손을 떼고 율법 연구에 전념하게 된다.
요한힐카누스는
지배권 확장-그리심 산의 성전을 파괴하고 사마리아인들의 성지를 빼앗았다.
바리새인과의 갈등 지속: 아론의 자손이 아니면서 대제사장 직을 맡음으로 바리새인들과의 갈등이 지속됨.
바리새인들은 정치, 군사적인 일에 손을 끊고, 율법 연구와 적용 시키는 일에 있다.
❁사두개파 시조: 바리새인들이 돌아선 것을 본 요한은 그들의 지지를 요구하지 않고, 냉정하게 현실주의적인 정치를 추구하였으며, 헬라주의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게 되었다. 이러한 제사장과 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들이 후에 사두개파를 형성하게 된다.
분파명 | 기원 | 특징 | 예수와 합치점 | 예수와 불일치점 | 관련 성경 |
헤롯당 Herodians | 헤롯 왕조의 출현 때에 점차 세력화된 무리들로서 특히 헤롯 안디바 시절에 그 위세를 떨침 | 헤롯왕의 적극 지지자들로서 정치적 세력을 형성한 편당 | 거의 전무 복음서 내에서는 대부분 그들의 예수 살해의도만 묘사됨 | 예수를 정치적 견제세력으로 간주로마로부터 자신들의 실추된 세력을 회복하려는 큰 야망의 거침들로서 예수를 적대시함 | 마22:16 막3:6,1 막2:13 |
열심당 Zealots | 헤롯대왕 당시(BC6년경)에 조직되어 AD73년 마사다(Massada) 항전 때까지 존속 | 이스라엘 내의 로마통치를 몰아내고자 경성된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 | 이스라엘의 미래관. 메시야 존재는 믿었으나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바로 그 분임을 부인함 | 로마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회복할 위대한 지도자라는 정치적 메시야상을 고집 | 마10:4 눅6:15 행1:14 |
엣세네파 Essenes | 원래는 하시딤 곧 바리새파에 속했다가 분리된 것으로 추정(마키베오상2:42; 7:13) 특히 경건을 추구하는 무리로서마카비시대(BC165-155)때 시리아왕조에 대항해 은둔과 세속 분리를 목적으로 조직됨 | 금욕적이고 분리주의적인 유대 종파
개인적 경건 훈련 및 각종 정결예식 강조 | 공의와 정직과 선행 및 공동체 생활을 추구 | 엄격한 구율에 따라 수행하는 기념 및 정결예식을 최상의 의(義)로 간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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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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