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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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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171회 작성일 24-12-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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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38:1-6
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의 기도는 우리가 많이 아는 내용입니다.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수 백편입니다.

히스기야가 기도를 잘해서 의인이 아닙니다.

그 동안 믿음 생활을 잘해서 의인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히스기야가 의인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에 나오는 여러 왕들이 중병에 걸렸을 때 선지자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에게 내가 살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물어보고 살 것이라고 예언하는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죽음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에게는 벌을 주었습니다.

죽음이 예정된 자에게 살 것이라고 예언하는 선지자가 수 백 수 천이라고해서 살거나 생명이 연장될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왕들은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으로 허망한 거짓 예언자들을 찾고 그들을 의지하였지만 모두 다 소용없는 짓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할 때 이 넘의 늙은 이가 망령이 들었나 하며 화내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토달거나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무릎 꿇고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응답 받은 이유는 히스기야가 의인이여서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받아들였기에 그의 기도는 응답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1  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

한 국가의 왕인 히스기야는 안 써본 약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비싸도 돈에 상관않고 여러 약재들을 구하여 발라봐도 소용없었습니다.

흔하디 흔한 무화과 한 뭉치를 종처에 바르면 낫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은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던 엘리사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무화과 자체가 효험이 있다거나 요단강 물 자체에 약효가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고 의미없을 것 같은 무화과와 요단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치유하신다는 사실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22  히스기야도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징조가 무엇이냐 하였더라

히스기야는 나아만과는 달리 징조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나아만 보다 믿음이 없어서가 징조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나아만의 문둥병이야 그 즉시 피부가 아기살처럼 변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앞으로 15년을 살게 될 것이라는 장기간의 사건입니다.

15년 내내 진짜 내가 그 전에 안죽나 전전긍긍한다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앞으로의 15년에 대한 확실한 징조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의 아버지 유다 최악의 왕 아하스에게 아무 징조라도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7:10-14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히스기야는 징조를 구했지만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믿음이 부족해서 징조를 구하고 아하스는 믿음이 넘쳐서 징조를 구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 반대입니다.

히스기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앞으로 15년을 더 산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도저히 안되는 일을 된다고 하시니 하나님께 징조를 구한 것입니다.

징조조차 구하지 않는 의심없는 믿음을 참된 믿음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조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을 마치 믿음으로 포장한 아하스에게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아하스에게 닥친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에 대한 대응책은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였습니다.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이 있으니 하나님의 징조는 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하스가 택한 앗수르라는 인간적인 방법은 보기에는 그럴 듯했고 실제 앗수르는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남유다를 두고두고 약탈하고 괴롭혔습니다.

아하스가 앗수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라면 남유다의 백성들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억지로라도 다음과 같은 징조를 주셨습니다.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징조는 참으로 비현실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고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는 하나님의 징조를 의지하는 것은 아하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하스는 끝까지 하나님의 징조를 구하지 않았고 결국 앗수르에 의해 남유다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앞으로 15년을 더 살것이하는 비현실적인 예언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였습니다.

7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해가 십도 앞으로 가는 것도 인간의 과학으로 설명되 안되는데 십도 뒤로 물러갔다는 것은 더더욱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만든 해시계는 인간의 방법과 과학을 상징하는 첨단 기술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징조대신 인간적인 방법을 택했던 아하스의 불신앙을 상징하는 해시계입니다.

불신앙의 상징인 해시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해가 뒤로 갔는지 아니면 지구가 앞으로 갔는지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해봤자 의미없습니다.

이미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아하스처럼 더 이상의 징조가 필요없는 완벽한 믿음의 위선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그 어떤 인간적인 방법이나 과학도 우리 마음의 근원적인 공포와 불안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아하스의 해시계도 최첨단 과학도 해답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하심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구하는 한 우리는 매일 흔들리고 불안합니다.

우리는 참된 징조를 구해야 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기적, 임마누엘의 기적을 우리는 매일 구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에 매몰되면 우리의 눈과 귀가 닫히게 됩니다.

우리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만 치우쳐 거기에 갇혀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현실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비현실적인 징조를 매일 구해야 합니다.

바로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라는 징조를 매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지옥같은 현실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하여도 우리는 비현실적인 하나님의 징조 예수 그리스도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이길 수 없다고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말이지만 우리에게는 임마누렝 예수 그리스도라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징조가 있기 때문에 믿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실체적 소망입니다.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된 인간 관계에도

아무런 개전의 가능성이 보이지않는 막장 인간에게도

세상 사람들은 답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봅니다.

그들은 현실 속에 갇혀있지만 우리는 현실을 초월하는 비현실적인 확실한 징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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