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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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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147회 작성일 24-09-08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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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3:1-4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북이스라엘의 아합정권을 몰아내고 바알숭배를 근절한 예후에게 평생의 고민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3대 절기를 지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아람의 하사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3대 절기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야 했지만 예후는 여로보암의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 년에 세 번 남유다의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짜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레위지파 제사장들에 의해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후마저도 도저히 말씀대로 절기를 지킬 용기가 없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죄,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 마음대로 날짜를 정하고 아무나 제사장으로 삼아 예배를 드리는 여로보암의 죄를 예후도 따르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골칫거리였던 아람 군대의 침략은 예배만 제대로 드렸더라면 없었을 것입니다.

예후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자 아람의 하사엘은 북이스라엘을 큰 고통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험한 것인지 본문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6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7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아람왕 하사엘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있었지만 최소한은 살려둔 이유는 두고두고 피를 빨아먹을 요량이었을 것입니다.

아람의 침략 이전에는 최소 60만명의 군대가 침략 후 겨우 만명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예후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국경을 개방하여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에서 일 년에 세 번 예배를 드린다면 사람들은 점점 더 남유다로 모일 것이고 북이스라엘은 내리막길을 걷다 결국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날짜도 편한 날로 바꾸고 제사장도 아무나 뽑았습니다.

어떻게든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60만의 대군은 겨우 만 명만 남기도 멸절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날 교회들은 더 많은 신자들을 모으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합니다.

대부분의 노력들은 인간적이고 얄팍합니다.

더 큰 교회를 짓고 더 많은 사람들로 채우는 것을 전도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상품을 주고 돈을 줘가며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것입니다.

돈 써가며 힘 써가면 사람들만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은 전도가 아니라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교회다닌다고 말해놓고 정작 세상에서 돈 떼어먹고 직원들 함부로 대하면서 교회 나오라고 하면 전도가 아니라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제대로 전도하고 싶으면 성경말씀대로 전도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직업현장에서 양심적이고 정직하게 살면 그것이 전도입니다.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에게 자녀들에게 충실히고 사랑을 쏟으면 그것이 전도입니다.

전도의 대상에게 예수님만 전해야 하는데 꼭 우리 교회로 데리고 와서 목사님과 교인들에게 인정받으려고하는 것도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우리교회가 아니더라도 가까운 말씀 중심의 교회로 인도할 수 있는 넓은 그릇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진정한 사랑을 쏟아주면 알아서 교회가 어디냐고 찾아올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예수님은 전하지 않고 사람만 모으려고 하는 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교회로 사람 데리고 오지 않으면 교회 부흥은 어떻게 하냐고 묻습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교회가 부흥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성경에 부흥은 딱 한 번 나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하박국 3장 2절)."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부흥하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 주의 일입니다.

신약성경을 봐도 예루살렘교회가 급격히 커지자 하나님께서 디아스포라로 흩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신약성경 바울서신의 초대교회들을 보면 가정 중심의 작은 교회들이 서로 교류하고 연합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들은 몸집을 키우려 서로 경쟁하다보니 이웃 교회가 오히려 남보다 더 남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예후는 여로보암의 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모아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오히려 다 망하고나서야 여호아하스가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내리막길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아니 한국교회의 침체는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호아하스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14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요아스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는 그의 아버지 여호아하스와 함께 아람군대의 침략을 겪으며 그 때마다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리자 요아스는 엘리사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달여왔습니다.

15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16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17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죽음을 앞두었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 요아스가 아람군대를 물리치도록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엘리사의 말대로 화살을 쏘았지만 여전히 엘리사의 죽음이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19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요아스는 엘리사가 지시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 엘리사를 잃는다는 슬픔과 두려움만 앞섰습니다.

엘리사의 지시대로 행한다고해서 과연 아람군대를 물리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 여호아하스 때부터 평생동안 자신과 북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아람제국은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큰 산이었습니다.

요아스에게는 엘리사가 지시하는 행동들이 그저 부질없이 느껴졌습니다.

떠나는 엘리사의 마음을 맞춰주기위해 마지못해 따른 것이었습니다.

엘리사가 화살을 집어 땅을 치라고 했을 때 겨우 세 번치고 말았습니다.

엘리사가 지시한 행동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를 알았더라면 요아스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쳤을 것입니다.

25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과연 엘리사가 죽고 요아스는 아람 군대를 세 번 이겼지만 완전히 진멸시키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요아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보였습니다.

그런 대수롭지 않아보였던 하나님의 말씀대로 역사는 이루어 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깁니다.

들으면 유익한 교훈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은 너무나 커보입니다.

사업의 문제, 경제적 문제, 건강의 문제, 가정의 문제들은 한번도 이겨본 적 없는 아람군대처럼 언제나 커보입니다.

아람 군대 앞에 하나님의 말씀은 별 의미가 없는 것 처럼 보입니다.

앞 길이 막막한데, 지금 당장 답이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안지켜도 별 문제 없고 심지어 안들어도 상관없는 오래된 잔소리처럼 여깁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을 세상은 그 만큼 가볍게 여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겁게 여기면 세상도 그 사람들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무겁게 여기면 아람군대 같던 세상이 이제 너무나 쉬워보이게 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듣고 순종하면 그것이 형통이며 그것이 전도입니다.

말씀없이 남들 하는대로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근본없이 중심없는 신앙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근본을 잡고 기초를 닦아야 제대로된 신앙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일곱 명의 왕들이 바뀌는 동안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들과 엘리사는 세상의 신분으로는 하늘과 땅차이였지만 엘리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악하고 교만했던 북이스라엘 왕들도 엘리사에게만은 아버지라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조아렸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를 만들고 세상의 왕들의 무릎을 꿇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면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로보암을 따라가야 살 것 같고 부자될 것 같고 돈도 사람도 많이 모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기를 각오하고 순종하는 길이 사는 길이며 형통의 길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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