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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과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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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400회 작성일 24-08-1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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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11:1-3
1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2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게 한지라
3  요아스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성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예후가 북이스라엘에서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분명 자신의 모든 아들들을 잃어버린 슬픔에 눈물을 흘려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달랴는 아하시야와 그의 형제들의 자식들, 즉 자신의 손자들을 다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남유다를 다스리기위해 다윗의 혈통을 완전히 끊어 놓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고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겁니다.

아달랴가 자기 손자들을 몰살하기까지 잔인해진 원인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 사이의 딸입니다.

바알 숭배가 그의 피속에 흐르니 돈과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영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과 손자들의 목숨따위도 아무 것이 아닌 것입니다.

자신의 손자들까지 없어지면 자신만이 유일한 왕족이므로 남유다의 여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권력 앞에서 한 없이 인간 이하가 되버립니다.



두 번째, 4대에 걸친 아합 정권을 보며 악한 자의 흥함이 계속되리라 믿었습니다.

아버지 아합의 자손들이 모두 다 멸절당하고 자신만이 유일하게 남은 아합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바알 숭배의 대표자인 아합의 유일한 후손으로서 남유다를 바알 숭배로 물들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바알 숭배자들이 예후를 피해 남유다로 도망쳐 왔습니다.

남유다를 바알숭배의 세상으로 만들어 자신의 정권을 영원히 이어가리라 아달랴는 믿었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아달랴의 치세는 겨우 6년 동안이었습니다.

6년 동안 여왕 노릇하려고 자신의 손자들을 다 죽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최소 몇 십년 동안, 아니 영원히 남유다의 여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죽였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손자들 중에 막 태어나서 그 존재조차 몰랐던 아기가 살아남았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살아남은 아기 요아스를 성전에서 몰래 6년 동안 길렀습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 여호야다는 마지막 남은 왕자 요아스를 앞세워 혁명을 일으키고 아달랴를 축출하였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의 혁명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습니다.

4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맹세하게 한 후에 왕자를 그들에게 보이고

여호야다가 접촉한 대상은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이었습니다.

가리 사람은 이방인 용병들입니다.

주류인 유다 지파들이 아닌 것입니다.

권력 수뇌부의 유다인들이 아달랴의 바알숭배에 동조되어 권력의 이익을 나누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차라리 이방인 가리 사람들과 혁명을 도모하는 것이 보안 유지에 더 유리한 상황은 남유다 백성들의 아달랴와의 더러운 결착과 타락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 호위병의 백부장들입니다.

호위병은 아달랴를 가장 가까이서 보위하는 보디가드와 같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였듯이 여호야다는 아달랴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헛점을 파고 들었습니다.

아달랴가 공포정치를 일삼아 통치자로서 인의로써 다스리지 못하여 가장 가까운 핵심보좌진들조차 등을 돌렸음을 여호야다는 간파하였습니다.


5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 들어온 너희 중 삼분의 일은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6  삼분의 일은 수르 문에 있고 삼분의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7  안식일에 나가는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성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
8  너희는 각각 손에 무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너희 대열을 침범하는 모든 자는 죽이고 왕이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하니

여호야다는 혁명군을 셋으로 나누어 삼분의 일은 아달랴가 있는 왕궁을 지키게하고

삼분의 일은 여호와의 성전의 수르 문, 즉 성전의 앞쪽 문을 지키게하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성전의 뒤쪽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세 번째,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제사장 여호야다가 소수의 이방인 용병들과 변절한 호위부대 장교들과 합작한 역성 쿠데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13  아달랴가 호위병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백성에게 이르러
14  보매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장관들과 나팔수가 왕의 곁에 모셔 섰으며 온 백성이 즐거워하여 나팔을 부는지라 아달랴가 옷을 찢으며 외치되 반역이로다 반역이로다 하매
15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16  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14절에 '규례대로' 라는 부분이 새로운 왕 요아스의 정통성을 가장 잘 대표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동원한 가리 용병들과 호위병들은 어떠한 살상이나 충돌없이 율법의 규례대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왕위 수여식을 지키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였습니다.

이전 권력의 수뇌부들을 축출하는 무력행사는 전혀 없었기에 전혀 쿠데타에 해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달랴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동원한 군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유다 백성들에 의해 말이 다니는 진창길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왕자 요아스를 앞세워 세운 정부의 모토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2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무너진 남유다의 왕위의 회복은 무력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워짐을 보게됩니다.

백성들은 새로운 군벌의 무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서는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왕자 요아스를 왕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위임받은 왕 같은 제사장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21세기 제사장 여호야다의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왕권은 무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가 받은 왕권의 정통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아달랴의 통치로 인해 돈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린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힘과 무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 될 때 이 나라는 하나님께 돌아오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를 얻게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꾸만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힘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라고 언약을 주셨습니다.

언약에 대한 가장 쉽고도 적절한 설명은 결혼식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자신의 말을 지키겠다는 서약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하신 말씀을 끝까지 지키시며 우리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것임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매 순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최대의 무기를 활용하였습니다.

4  일곱째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여호와의 성전에서 맹세하게 한 후에 왕자를 그들에게 보이고

여호야다는 혁명에 앞서 그와 함께할 군사들에게 혁명의 성공 후 얻게 될 보상 따위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게하였습니다.

비밀이 누설되면 왕자 요아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목숨도 날라갈 위험천만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이방인 용병들마저 목숨을 걸고 충성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렇게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야다는 혁명에 성공한 후 바알숭배에 찌든 남유다를 개혁하는데 다른 어떠한 정치적 행위보다 오직 하나님과의 언약을 가장 먼저 내세웁니다.

17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 왕과 백성 사이에도 언약을 세우게 하매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자 바알 숭배에 찌든 남유다는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18  온 백성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허물고 그 제단들과 우상들을 철저히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제사장이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19  또 백부장들과 가리 사람과 호위병과 온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려와 호위병의 문 길을 통하여 왕궁에 이르매 그가 왕의 왕좌에 앉으니
20  온 백성이 즐거워하고 온 성이 평온하더라 아달랴를 무리가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21  요아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칠 세였더라

대부분의 혁명이나 쿠데타가 그러하듯 기존의 권력집단에서 새로운 세력으로의 단순한 자리바꿈이 아니었습니다.

18절에 온 백성이 주도한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습니다.

그 비결은 남유다 백성들의 진보된 시민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이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조는 아달랴에 의해 완전히 끊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6년 동안 비밀리에 길러진 왕자 요아스에 의해 다윗의 왕조가 끝내 이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상은 돈과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런 정통성없는 21세기 아달랴가 왕노릇하며 이에 따른 권력의 아첨꾼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귀찮다 힘들다고 결혼도 싫고 애도 안가진다는 젊은 이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기만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들이 스스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21세기 제사장 여호야다의 임무를 맡은 우리들은 더 이상 직무유기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모두 다 끊어졌다고 여겼던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가 말씀에 충실할 때 다시 세워진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잊고 돈과 힘에 의지하다보디 이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옵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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