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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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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작성일 24-05-05 07:56 조회 10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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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22:1
1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없이 삼 년을 지냈더라
2  셋째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내려가매
3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
4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은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싸우시겠느냐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지난 20장에서 이스라엘 아합왕이 아람왕 벤하닷을 살려주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칠천의 병력으로 십만의 아람 군대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아람왕의 아부에 넘어가 아람왕을 살려준 것입니다.

3절에 길르앗 라못은 지난 전쟁에서 아람왕을 살려준 댓가로 이스라엘이 돌려받아야 하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으로부터 살아 돌아간 벤하닷은 마음을 바꾸어 삼 년이 지나도 땅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하는 악한 자들의 꾀임에 넘어간 아합왕은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었습니다.

아합은 유다왕 여호사밧에게 도움을 청하여 공동으로 아람을 공격하기로 하였습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아람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 보자고 했습니다.

 6  이스라엘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쯤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아합왕이 모은 사백 명의 선지자들은 모두 승리를 예언하였습니다.

아합왕이야 원래 자기 영혼을 팔아 넘긴 자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으니 그렇다치고 사백 명의 선지자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지 어떻게 단시간에 사백 명을 모으고 한결같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총체적인 거짓의 향연이었습니다.

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11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자기를 위하여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2  모든 선지자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그 중에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가장 압권이었습니다.

철로 된 뿔들같은 소품까지 만들 정도로 의사표현력이 출중한 자였습니다.

유다왕 여호사밧은 사백 명의 선지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에 꾸며낸 거짓을 느꼈습니다.

7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8  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 왕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아합왕은 지금 길한 예언 흉한 예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아람왕 벤하닷의 아부에 속아 넘어가 살려준 댓가로 인해 3년 만에 나라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정상입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예언자 미가야 한 사람이라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13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이 일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길하게 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의 말처럼 길하게 하소서
14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신은 원어로 내시입니다.

내시는 남성을 제거하고 왕을 보좌하는 자로서 본디 이스라엘에는 없었던 직위였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페니키아에서 내시 제도 등 여러 혐오스러운 문화들을 들여온 것입니다.

이 내시가 미가야 선지자에게 길한 예언을 하라고 주문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얼마나 이스라엘이 썩어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왕 앞에 선 미가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19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20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3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

미가야는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길한 예언과는 반대되는 흉한 예언을 전했습니다.

이에 아합왕은 격분하여 미가야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길한 예언 때문에 복이 오고 흉한 예언 때문에 화가 온다는 말은 말같지도 않는 말입니다.

아합왕처럼 권력을 이용하여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를 동원하여 길한 예언을 한다고해서 복이 올리 없습니다.

복과 화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지 거짓 예언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흉한 예언은 아합왕에게 있어서 화가 아니라 죽음을 피할 기회였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한 아합왕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비참하게 피흘려 죽었습니다.

21장에서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했던 아합이 엘리야의 예언 앞에 회개하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 대목을 기억합니다.

이번에도 미가야의 예언 앞에 무릎꿇고 회개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을 살려주셨을 것입니다.

아합왕이 미가야의 예언 앞에 회개하지 않았던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바로 거짓의 영이었습니다.

사백 명의 거짓 예언자들이 떼로 달려들어 거짓 예언들을 퍼부어대니 거짓의 영에 사로잡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짓의 영이 무서운 이유가 본문에 나옵니다.

24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25  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철로 뿔을 만들어 전쟁의 승리를 예언했던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예언에 폭력으로 반응하며 하나님의 영이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이 영이 자기에게 있으니 거짓말도 문제없고 폭력도 문제없다는 시드기야의 모습에서 거짓의 영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죽이기위해 거짓 증인들을 동원했던 대제사장들의 거침없는 거짓말과 예수님께 가한 폭력들이 연상되는 부분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했던 아합이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 운운하면서 거짓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있다는 잘못된 신념은 모든 거짓말과 폭력을 합리화합니다.

히브리서 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예수님을 믿었지만 다시 타락한 자들은 다시 회개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하였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 있기에 회개할 생각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확신 가운데 믿어야 합니다.

다만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면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의 말씀만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생각, 자신의 믿음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테스트하고 때로는 부정해야 합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 확고한 믿음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거짓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언어와 행동 생각을 철저히 점검하고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문제없다고 말하고 행동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만이 될 수 있고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이 있으므로 거짓과 폭력도 문제없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빨리 무릎꿇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다.

이미 나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있다는 신념때문에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짓의 영에게 대항할 실용적인 방안이 있습니다.

끊임 없이 더 높은 윤리적 수준에 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더 넓은 아량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더 깊은 공감력과 이해심을 추구해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의 소통방식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만족하는 자신의 친절도들 생각보다 훨씬 더 높여야 합니다.

돈 욕심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사람 영혼 구하는 욕심을 늘려야 합니다.

말하는 때가 듣는 때보다 더 많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니 반대로 해야 합니다.

통틀어 말하자면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착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다면 이러한 인격적 성장은 멈추지 않고 상향 증가할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든 짜증이 나고 인성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면 대수롭게 생각하지 말고 심각하게 여기고 진지하게 회개해야합니다.

한 두번 실수한 것 쯤이야 하나님이 계시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거짓의 영을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니 우리도 자동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면 큰 일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절대선을 향해 매일매일 점검하고 고치고 보수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은 화려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친다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감동적인 말씀과 찬양은 영적 성장의 동기는 되지만 실질적인 영적 성장은 아닙니다.

영적 성장이라는 말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사소하고 치사한 상황에서 진정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성질나는 순간, 짜증나는 순간에 입을 닫고 성질을 누르는 지극히 사소한 승리들이 쌓여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돈 욕심과 육체의 음욕, 지나친 식욕, 잘못된 습관들을 극복하는 순간들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영적 키는 그 때 자라나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육신과의 싸움은 사소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단한 전쟁의 승리보다 사소하고 비루한 육신과의 싸움이 훨씬 더 가치있습니다.

육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큰 전쟁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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