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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 없이 얻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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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355회 작성일 24-03-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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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데는 아무런 값을 치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생의 구원은 값을 매긴다고 한들 매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갚을 수 없는 막대한 가치이기에 값 없이 얻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지 오히려 무감각해질 수도 있습니다.

구원을 공짜로 받았다는 말인데 어감이 이상하지만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공짜 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의심이 자연히 들게 됩니다.

공짜 라고 속이며 사람들을 끌어모아 결국엔 낚이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의도치 않게 공짜 때문에 민망한 경우도 있습니다.

단체 모임을 뷔페에서 했는데 아끼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먹고 싶은 것있으면 시켜주겠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뷔페에서 그런 말을 했으니 듣는 사람이나 말한 사람이나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에 금이 모래같이 많다면 굳이 금을 선물할리 없습니다.

너무나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귀한 것처럼 준다면 생색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맑은 날 따뜻한 햇볕을, 비오는 날 물을 주면서 생색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너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것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무료이며 공짜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두려운 것은 공짜이기에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착각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공짜로 받지만 흔해서 공짜가 아니라 너무 비싸서 값을 치룰 수 없기 때문에 공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다른 말로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구원이 필요없는 사람에게는 구원자가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왜 그리스도, 구원자가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가 없으므로 구원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중병에 걸렸어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가장 심각한 상태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의 DNA, 원죄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대표적인 죄인 이기심과 정욕은 다른 사람에게 감출 수 있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인 빼도박도 못할 결정적인 테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시기와 질투 입니다.

나와 비교되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죄를 저질러 한 방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순수하게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은 단언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럼 그렇지, 너라고 별 수 있나 라는 악한 시기와 질투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저의 분야와 관계없는 유명 연애인이나 운동 선수의 범죄 뉴스에 안타까움이 앞서지만 한 편으로는 별 관심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대형 교회의 유명한 목사의 횡령이나 성범죄 등의 뉴스가 나오면 가장 안타까워하고 슬퍼해야하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슬퍼하는 마음외에 잘난 척하더니 잘됐다하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슬퍼하는 마음도 나락으로 떨어진 당사자의 입장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향후 목사로서의 내 앞날과 불이익 때문에 슬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가 죄인들입니다.

테러리스트, 유괴범, 성범죄자, 사기꾼 도둑들만이 아니라 가면을 쓴 시기와 질투 덩어리들인 모든 인간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본문에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선 사람들은 강도 테러리스트, 유괴, 방화범, 성범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장도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섰습니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남들보다 더 우월할 것 같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을 모함하고 거짓 증인 세우고, 심지어 로마 황제 가이사를 하나님보다 더 위에 세웠습니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를 감추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형을 면제받은 강도 바라바는 후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강도 또한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갔습니다.

나라 팔아먹던 매국도 세리들과 창녀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장도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모든 죄 중에서 시기와 질투가 가장 위험하다는 말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구원을 위해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루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공짜로 받은 구원은 흔해서 공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으로 값을 치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공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귀한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받은 구원이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하려고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목숨의 가치가 너무나 크기에 우리가 억만금을 바친들 공짜나 다름없는 해변의 모래 한 알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제 내가 받은 구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공짜 라서 쓰다보면 문제 생길 것이다.

그래도 얼마라도 갚아야 하질 않겠나

이런 소리들은 쓸데없는 것입니다.

이제 앞만 보고 가야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만 따라 가야합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의 길, 십자가의 길은 자기를 부인해야한다는데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을 나의 주권자로 삼아햐 한다는 말입니다.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이루는 삶이 나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관심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옮겨집니다.

공짜로 받은 구원의 복된 소식을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가장 큰 기쁨으로 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을 공짜로 받았으니 얼마나 횡재한 것입니까?

이러한 큰 기쁨을 혼자만 숨긴다면 아직 예수님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정상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야 정상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처럼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천하 어느 것도 나를 죽음에서 구원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쾌락도 세상 자랑도 잠시 있다 사라질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만이 내게 영생의 구원을 줄 수 있습니다.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대한민국은 돈 없으면 죄인인 세상입니다.

돈 없으면 죄인이요, 불효자요, 패배자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의미도 행복도 기쁨도 없습니다.

항상 불안할 뿐입니다.

삶의 자세와 인생의 목표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얻어도 제 목숨조차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다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오직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만 눈에 보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돈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돈도 명예도 권력도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다시 오실 예수님께서 영광으로 오십니다.

반대로 돈을 손에 쥐고 복음전도의 사명을 포기한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부끄러움으로 갚으십니다.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 앞에 여러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 모두가 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후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마가다락방의 120 성도들에게 강림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과 일부 성도들에게 임할 성령강림을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입니다.

영생의 구원이라는 너무나 엄청나게 값진 은혜를 공짜로 받는다라는 복음은 누구에게나 쉽게 전할 수 있을 것 같고 쉽게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우리들도 구원의 은혜가 공짜라서 오히려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가 납득이 가질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인간이 신에게 노력과 정성을 바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큰 돈을 들여 굿을 하고 지성을 바치고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공양하지만 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없다는 자신의 죄에 대한 심각한 자각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놀라운 은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잠시 머물다 갈 돈, 명예, 권력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생각이 무너지려면 오직 성령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생각을 내려 놓을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영원한 생명의 구원의 소망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 힘만으로는 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깨달았듯이 복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복음을 전하기위해 돈도 목숨도 내놓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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