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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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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1,738회 작성일 23-07-23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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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6:20-23
20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이르되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 하니
2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23  그 때에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아히도벨의 모든 계략은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그와 같이 여겨졌더라

압살롬의 반란에 다윗은 즉시 피난을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을 다윗을 대신한 왕으로 인정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 상황을 압살롬과 다윗,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가족간의 싸움이라고 여겼고 압살롬과 다윗이 서로 화해하면 해결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명석한 지략가 아히도벨은 이러한 현 상황을 압살롬에게 유리하도록 바꾸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에 남기고 간 열 명의 후궁들을 압살롬이 취하도록하여 압살롬과 다윗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과 다윗 둘 중 하나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약한 쪽보다 더 강한 쪽 편에 서기를 원하며 현 상황에서 압살롬은 다윗보다 더 강한 쪽이었습니다.

열 명의 후궁들 중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정절을 버리고 압살롬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더럽고 역겨운 방법이었지만 결국 아히도벨과 압살롬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대세가 압살롬으로 굳어지는 것을 본 아히도벨은 단번에 전쟁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습니다.

17: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사람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오늘 밤에 내가 일어나서 다윗의 뒤를 추적하여
2  그가 곤하고 힘이 빠졌을 때에 기습하여 그를 무섭게 하면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이 도망하리니 내가 다윗 왕만 쳐죽이고
3  모든 백성이 당신께 돌아오게 하리니 모든 사람이 돌아오기는 왕이 찾는 이 사람에게 달렸음이라 그리하면 모든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니
4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그 말을 옳게 여기더라

실상 이 전쟁은 이념이나 명분, 민족적 갈등과는 전혀 상관없는 다윗과 압살롬 둘의 갈등이기에 둘 중 하나만 없어지면 저절로 마무리되는 것이었습니다.

핵심을 궤뚫어본 아히도벨의 계략은 그야말로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4절이 굉장히 거슬립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윗을 섬겼던 이스라엘 장로들은 다윗의 선택적 제거를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동의하였습니다.

강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입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약한 자를 왜 꼭 죽여야 하는가 입니다.

검사들은 강한 집권세력의 들보는 못 본체 하면서 약한 사람들한테는 먼지까지도 탈탈 털고자 합니다.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묻지마 범죄자들은 힘이 없고 약한 여성들에게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들의 분노를 쏟는지 말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서 베드로는 체포되신 예수님을 세번 부인할 때 세 번째에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자신이 살기위해 예수님을 저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초식동물 영양은 약하게 태어난 개체를 일부러 먹이를 못 먹게 괴롭히고 더욱 약하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사자와 같은 포식자들이 약한 개체를 사냥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 위험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나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위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희생시키는 이기심이 바로 생존본능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기적인 생존본능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가장 약한 자인 예수님을 저주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가장 연약한 어린 양인 줄 알았던 예수님께서 실은 죽음마저 이기신 가장 강한 자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죽이는 포식자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살기 위해 강한 자의 편에 설 필요가 없고 약한 자를 죽일 필요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옛 사람일때 따르고 추구하였던 인간의 강함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본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7:5  압살롬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도 부르라 우리가 이제 그의 말도 듣자 하니라
6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러이러하게 말하니 우리가 그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니
7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번에는 아히도벨이 베푼 계략이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8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지 아니하고

다윗의 친구 후새는 먼저 압살롬의 열등감을 자극하였습니다.

전쟁의 경험이 없는 압살롬에게 베테랑인 다윗과 그의 신복들을 비교하면서 압살롬을 도발하였습니다.

17:9  지금 그가 어느 굴에나 어느 곳에 숨어 있으리니 혹 무리 중에 몇이 먼저 엎드러지면 그 소문을 듣는 자가 말하기를 압살롬을 따르는 자 가운데에서 패함을 당하였다 할지라
10  비록 그가 사자 같은 마음을 가진 용사의 아들일지라도 낙심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무리가 왕의 아버지는 영웅이요 그의 추종자들도 용사인 줄 앎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과 여론을 언급하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압살롬을 자극하였습니다.

11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

아히도벨에게 군사 만 이천명을 맡겨 그가 공을 세우게 하는 대신 압살롬 자신이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은 군사를 친히 이끄는 그림을 그려주면서 압살롬의 영웅심리를 자극하였습니다. 

12  우리가 그 만날 만한 곳에서 그를 기습하기를 이슬이 땅에 내림 같이 우리가 그의 위에 덮여 그와 그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할 것이요

그리고 이슬이 땅에 내림 같다는 허세와 과장으로 압살롬 자신이 보유한 벙력에 대한 과시욕을 부추겼습니다. 

13  또 만일 그가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 곳에 작은 돌 하나도 보이지 아니하게 할 것이니이다 하매

그리고 다윗이 숨은 성을 통째로 밧줄로 묶어 강으로 끌어내린다는 말로 다윗에게 열등감이 있는 압살롬에게 우월감을 선사하였습니다.

14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그 결과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아히도벨의 계략 대신 영웅심리와 과시욕이 가득한 후새의 계획이 채택되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세력이 강해도 허세와 과시라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을 통해 무너뜨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다윗과 압살롬의 싸움은 병력의 규모에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은 강자가 되기 위해 아들로서의 본분, 인간으로서의 본분도 내버리고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하였습니다.

그런 압살롬을 추종하여 다윗을 배신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사회지도층의 자격이 심히 의문스럽습니다.

대세는 압살롬인 것 같아 보였지만  허세와 과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압살롬을 피해 도망쳤던 다윗은 약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향한 배신과 저주와 모욕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편이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라하였듯, 하나님이 다윗의 편에 서시니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도왔습니다.

다윗의 친구 지략가 후새는 이 소식을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은 우물가의 여종을 통해 그들의 아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에게 소식을 전하고 다윗에게 보냅니다.

그 과정에서 압살롬의 종들이 요나단 과 아히마아스를 찾으려했지만 바후림의 한 여인이 용기있게 우물에 숨겨주고 우물을 덮어 그 위에 곡식을 널어 추격자들을 따돌렸습니다.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의 전갈을 듣고 다윗과 그의 무리들은 요단강을 건너 무사히 피신 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편에 서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우사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자신의 세력을 위해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자,

생존을 위해 강한 자의 편에 서서 신의와 도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자,

이런 사람들도 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 강한 자들을 굴복시키시고 배신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설 때 하나님은 내 편이 되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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