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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가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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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2,240회 작성일 23-06-1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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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4:1-3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2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3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

암논을 죽인 압살롬이 그술로 쫓겨난지 3년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3년 동안 죽은 아들 암논 때문에 슬퍼했고 동시에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그저 그런 듯하고 나쁜 일이 생겨도 덤덤한 평소와는 다른 다윗의 상태를 보고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왕으로서 다윗은 자신의 최측근인 요압을 통해 압살롬의 근황을 몰래 물어보곤 했을 것입니다.

요압은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윗과 압살롬에게 큰 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현재의 권력인 다윗과 차세대 권력인 압살롬의 사이를 이어주면 자신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부로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타인들에게는 자비롭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다윗에게 압살롬의 사면을 건의했다가 오히려 본전도 못찾을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다윗의 군대의 수장인 요압은 뛰어난 전략가였습니다.

다음 절을 읽어보면 각본을 짠 요압의 수완이 얼마나 대단한가 알 수 있습니다.

4  드고아 여인이 왕께 아뢸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이르되 왕이여 도우소서 하니
5  왕이 그에게 이르되 무슨 일이냐 하니라 대답하되 나는 진정으로 과부니이다 남편은 죽고
6  이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더니 그들이 들에서 싸우나 그들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쳐죽인지라
7  온 족속이 일어나서 당신의 여종 나를 핍박하여 말하기를 그의 동생을 쳐죽인 자를 내놓으라 우리가 그의 동생 죽인 죄를 갚아 그를 죽여 상속자 될 것까지 끊겠노라 하오니 그러한즉 그들이 내게 남아 있는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의 이름과 씨를 세상에 남겨두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
8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가라 내가 너를 위하여 명령을 내리리라 하는지라

다윗의 아들 암논과 압살롬을 과부의 두 아들로 빗댄 요압의 창의적 두뇌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요압의 천재적인 지략으로 다윗은 압살롬의 사면을 허락했지만 조건부 사면이었습니다.

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다윗과 압살롬 모두 요압에게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더 큰 신임을 얻게 되었고 압살롬에게도 큰 공을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마움은 2년 밖에 가질 않았습니다.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압살롬에게 있어서 요압은 인생의 은인이었습니다.

형 암논을 죽인 살인자 압살롬은 당연히 사형이 마땅했지만 요압의 지략으로 부분적인 사면이나마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아버지 다윗이 불러주질 않자 그 화풀이를 요압에게 했습니다.

요압의 밭에 불을 질러 요압을 격동시키고 마침내 다윗에게로 인도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은인이었던 요압은 압살롬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으며 압살롬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셨으며 우리에게도 중재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압도 다윗과 압살롬 사이를 회복시켜준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끝은 은혜롭지 못했고 오히려 철천지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자들 중에서도 요압처럼 어설픈 중재자가 많습니다.

중재자로서 예수님과 요압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자기 희생' 입니다.

요압은 드고아 여인을 내세워 다윗이 자비를 베풀지 아니하고 엄격한 모습을 보인다면 자신의 중재계획을 멈출 심산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리스크가 있었지만 그에 대한 빠져나올 장치도 마련해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두 번째 차이점은 '조건없는 사랑' 입니다.

요압은 현재의 권력인 다윗과 미래의 권력인 압살롬 모두에게 큰 공을 세워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과 동일하신 근본 본체이시기에 굳이 죄로 인해 죽을 우리를 구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하늘 보좌를 버리고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끝없는 갈등이라는 불 속에 뛰어드는 나방같이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습니다.

좌와 우, 빈과 부, 여와 남, 노와 소, 기업과 노조, 수도권과 지방, 의사와 간호사, 시부모와 며느리, 처가와 사위, 그리고 남과 북 등등 모든 것들이 대결구도 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신냉전시대로 접어들어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고 있습니다.

원인이야 여러가지일 것이지만 해결책을 점점 더 요원해 보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극과 극의 갈등 구조를 더 심화시키고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회 각처에서 중재자의 사명에 소홀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예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니 세상은 의인 열명이 없는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해가는 것입니다.

중재자로서 나서지만 '사랑과 희생' 없이 요압처럼 이익을 바라는 어설픈 중재자들로 인해 갈등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희생의 중재자가 되려면 하나님과 진정한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참된 중재를 받은 자만이 참된 중재를 할 수 있습니다.

압살롬은 중재자인 요압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윽박질렀습니다.

자신이 다윗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다윗과 요압을 압박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중재하심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압살롬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살인죄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한 암논 때문이라는 변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살인한 자신도 죄인이지만 암논은 자신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여겼습니다.

압살롬은 내 죄는 남의 탓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교만한 사람은 용서받지 못합니다.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자신은 왕족이며 거기다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기에 다윗에게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자신이 완전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압살롬처럼 특별한 신분이거나, 출중한 외모로 인해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만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방해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인정 받고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열심 자체가 오히려 교만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신분의 고하와 죄의 경중을 따질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똑같은 죄인들이며 그 댓가로 똑같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나의 신분이나 공로와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완전한 죄인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에너지를 총동원하여 '나는 완전한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인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아보이지만 사실 불가능합니다.

상대적으로 더 모범적이고 더 능력있고 더 훌륭한 비교우위의 사람들에게 특히 더 어려운 일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과 표정으로는 진정 뉘우치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속 중심의 중심 그 끝자락에서는 여전히 비교우위의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시적으로 찰나적으로는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지만 얼마안가 도로 원위치되고 맙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중재자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참된 중재를 받아야 합니다.

요압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느라 참된 중재자가 되지 못하고

압살롬처럼 비교우위에 빠져 참된 중재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를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중재하심을 온전히 누려야 합니다.

내 죄로 인해 내 삶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후회와 원망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대로 받아들이고 이 상황마저도 하나님의 선처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지은 죄이지만 너무 자신을 탓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원죄아래 인간이라는 존재적 한계를 가졌기에 모든 인간이 다 죄인입니다.

또한 내가 지은 죄를 다른 사람 탓해서는 안됩니다.

원인을 따지자고 들면 아직도 고개가 뻣뻣하다는 증거입니다.

원인이 어쩌든 저쩌든 일단 용서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고 거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책감을 덜기 위한 노력 또한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해내야하고 탁월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의 반복을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지껏 큰 죄 안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고생하고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용서받는 과정입니다.

참된 중재자로서 그리고 참된 중재를 받은 사람으로서 더 많이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사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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