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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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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2,446회 작성일 23-03-19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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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고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앉으니 이는 못 이쪽이요 그는 못 저쪽이라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청년들에게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 요압이 이르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15 그들이 일어나 그 수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두 명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두 명이라
16 각기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헬갓 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헤브론에 머무는 동안 넬의 아들 아브넬은 사촌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옹립하여 다윗과 대치하였습니다.

이스보셋은 직함만 왕일뿐 삼촌 아브넬이 실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브넬이란 사람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아브넬은 우리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악인입니다.

잔인하고 이기적인데 머리도 좋고 언변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아브넬의 첫 번째 특징, 타인의 선처에대해 완전 무식한 사람입니다.

12 넬의 아들 아브넬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신복들은 마하나임에서 나와 기브온에 이르고

본문은 분명히 아브넬 세력들이 먼저 도발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블레셋과 국경을 접한 유다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군대인 반면 아브넬의 군대는 유다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열 한 지파 출신들끼리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실전 경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윗이 힘이 없어 아브넬 세력을 응징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헤브론에 머물며 내전없이 평화롭게 이스라엘을 통일하고자 잠잠히 있었습니다.

선처를 베풀어보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선처에 철저히 무감각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처를 베풀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입니다.

아브넬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느라 잠잠히 있는 다윗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브넬은 다윗에게 무엇인가 내부적인 문제가 있거나, 자신의 세력이 다윗의 세력보다 더 강하다고 착각했습니다.

다윗에게 먼저 도발한 아브넬은 이렇게 철저히 자신이 받는 선처에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선처를 받은 적도 없고 베푼 적도 없어서 선처에 무감각해졌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이유가 여기 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달으면 놀랍게도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 동안 몰랐던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선처들도 깨닫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데도 사는 것이 짜증나고 주변 사람들이 보기 싫다면 거의 백프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선처에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베푼 선처에 생색을 내지 않다보니 이 선처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 그것이 선처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면 더욱더 자신이 받고 있는 선처에대해 더욱 깊이 생각해야할 이유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조금만 더 생각해보고 더 기도해보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내가 선처를 받고 있구나 느껴야 정상입니다.

그 때까지 더 회개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입니다.

13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다윗의 신복들도 나와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을 만나 함께 앉으니 이는 못 이쪽이요 그는 못 저쪽이라

다윗 세력이 아브넬 세력을 응징하지 않고 대치하는 이유는 바로 다윗의 철저한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청년들에게 일어나서 우리 앞에서 겨루게 하자 요압이 이르되 일어나게 하자 하매

히브리어 원어에는 '겨루게 하자'가 아니라 '장난치자' 라고 나옵니다.

결투가 아니라 심심풀이 장난입니다.

의기양양하게 기브온까지 내려온 아브넬은 막상 다윗의 군대를 보자 한 풀 꺽였습니다.

그래서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자라는 교활한 도발을 합니다.

이런 잔인한 사람들은 자존심을 건드는 치사한 방법으로 도발을 하는데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다윗의 심복 요압은 여기서 그만 아브넬과 똑같은 수준으로 대응하고 맙니다.

애꿎은 24명의 젊은 청년들이 아브넬의 장난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그의 가족들은 남은 인생을 통해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사람들은 아무 어려움없이 타인을 희생시킵니다.

타인을 희생시키는데 수많은 논리와 이유를 갖다 붙입니다.

논리와 이유를 불문하고 타인의 희생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특히 교회일이나 봉사에 있어서 자신의 숭고한 목표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가볍게 여기거나 영광스러운 것으로 치환하는 태도는 지극히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영광 받으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희생을 통해 영광받으시기를 너무나 싫어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희생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깊어진다는 것은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보다 나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받는 사람들이 없는지 돌아보기 때문입니다.

더욱 깊이 있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자신에게는 한 없이 자비롭고 타인에게는 원칙을 내세우는 사람입니다.

26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이르되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

너무나 허망한 해프닝으로 시작된 전쟁은 유다의 압도적인 전력만 드러내고 아브넬 세력은 도망하여 작은 산에 갇혔습니다.

궁지에 몰린 아브넬은 요압에게 '참혹' 과 '형제' 라는 용어를 내세우기 시작합니다.

타인의 고통과 희생을 가볍게 여기던 그가 '참혹' 을 말하고 타인의 선처에 무감각한 그가 '형제' 를 말하고 있습니다.

27 요압이 이르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각각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의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8 요압이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싸움을 크게 벌리지 말라는 다윗의 명령을 받은 요압은 그제서야 추격을 멈추고 이 상황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먼저 도발한 아브넬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네 번째, 육적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3: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3: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3:8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아브넬이 사울의 첩과 통간하는 무도한 일을 행하자 이스보셋은 자신의 아버지 사울의 첩과 통간한 아브넬을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아브넬은 사과나 변명은 커녕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역정을 내고 다윗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선포합니다.

다섯 번째, 감정이 메마른 사람입니다.

3:12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하니
3:13 다윗이 이르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을 맺거니와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3:14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3:15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아브넬은 자신의 목표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철저히 메말라버린 자였습니다.

여섯 번째, 거짓에 양심이 마비된 사람입니다.

3:20 아브넬이 부하 이십 명과 더불어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 한 사람을 위하여 잔치를 배설하였더라
3:21 아브넬이 다윗에게 말하되 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 무리를 내 주 왕의 앞에 모아 더불어 언약을 맺게 하고 마음에 원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시게 하리이다 하니 이에 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아브넬은 자신의 통간을 비난한 이스보셋에게 불 같이 화를 내고 홧김에 다윗에게 와서 크나큰  숭고한 결단으로 평화로운 통일의 주역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3:17 아브넬이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러 번 다윗을 너희의 임금으로 세우기를 구하였으니

이스라엘 지파들은 이미 여러 번 아브넬에게 찾아와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자고 건의하였으나 막상 그들을 막은 자는 아브넬이었습니다.

조국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자 방해물이었던 존재가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한 순간에 평화통일의 주역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는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아브넬과 같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조금 나은 요압 같은 사람들도 더 나아보이진 않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헤브론에서 7년 반을 기다리면서 이런 사람들을 상대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이렇게 역겨운 사람들을 참고 견디며 선처를 베푼 역대급 인내력 소유자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7년 반 동안 아브넬이나 요압보다도 더 다윗을 힘들게 했던 사람은 실상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다윗 그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만 아니면 똑같이 갚아주고 싶고, 본때를 보여주고 싶고, 뜨거운 맛 좀 보여주고 싶은 욕망과의 싸움이야말로 다윗을 가장 힘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소원의 성취나 인격의 수양 같은 수준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옛 사람인 나를 매일매일 죽이는 것입니다.

아브넬과 요압과 싸우는 것도 버거운데 나라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보다 무모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가능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매일매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역겨운 아브넬이란 인간을 분석하면서 '나 자신' 속에서 아브넬을 발견하지 못하신 분들은 정말 더욱 분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 자신 속에서 아브넬을 발견하신 분들은 축하드리지만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됩니다.

힘든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로 이기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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