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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봇을 입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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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작성일 22-12-11 07:04 조회 3,52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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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3장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우리는 더 이상 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는 내 뜻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 뜻대로 살았을 때의 우리 인생은 살아있는 지옥이었습니다.

내 뜻대로 결정하고 내 뜻대로 살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굳게 결심했다고해도 우리는 습관과 버릇과 교만과 정욕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 서로가 단 한 사람의 뜻도 못 맞추는데 어찌 하나님의 뜻을 맞추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추지 못한다고 여러분을 비난하지는 않겠습니다.

저 또한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되지 말아야 될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명은 다윗이며 또 하나는 사울왕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 명은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갔던 사람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자기 뜻대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본문 1절에 다윗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국경지역에 있었습니다.

국경지역 그일라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수철이 되어 타작하는 곳에 블레셋이 쳐들어 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그일라를 구원하라는 답을 얻습니다.

그러나 다윗 주변의 사람들은 이러한 다윗의 행동에 펄쩍 뛰었습니다.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사울왕에게 쫓기는 것도 모자라 블레셋의 군대를 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이 지점에서 다윗과 사울의 차이가 나옵니다.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사울이라면 자신의 측근들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과 달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다시 물었습니다.

확신이 들지 안거든 사람에게 다시 물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재차 확답을 들은 다윗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그 결과는 당연한 것입니다.

다윗은 승리했으며 기대하지 않았던 블레셋의 가축들을 전리품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의 승리가 간략히 1-5절을 통해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과연 내가 다윗이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보다 머리 좋고 경험 많은 거기다 숫자까지 다수인 측근들의 의견보다 하나님의 응답을 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안되서 수많은 군왕들과 리더들이 하나님의 뜻대신 사람의 뜻대로 행하다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른 사람들 말은 전혀 안듣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다윗이 그일라 백성들을 도와 블레셋을 물리쳤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셨다고 여겼습니다.

쫓기는 신세에도 자기 백성들을 도왔던 다윗을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사울은 그 대신 다윗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다윗을 죽일 생각에만 몰두하던 사울은 어느새 다윗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기자신을 쇄뇌시켰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모든 뜻을 다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어린 아이의 모든 뜻을 다 받아주어 결국 아이를 망치게하는 심약한 부모와 하나님은 엄연히 다릅니다.

죄와 정욕에 물든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다윗이 십 광야에 숨었을 때 그 곳 사람들의 일부가 사울에게 다윗을 잡아 바치겠다고 아부를 떨었습니다. 

:21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이미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떠나셨지만 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은 자기 편이라고 착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이다' 라는 철없는 생각의 대표가 바로 사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주시라고 기도하는 대신 나는 지금 하나님 편인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링컨 대통령은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에게 계속 지고 있었습니다.

곤경에 처한 링컨 대통령에게 한 교회 대표가 다가와 말했습니다.

“각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북군의 편이 되셔서 북군이 승리하게 해달라고 날마다 눈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서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다.” 

우리는 다윗처럼 링컨 대통령처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합니다.

다윗이 내 뜻과 사람들의 뜻 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6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8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9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10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에봇은 제사장의 예복입니다.

에봇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보석 또는 돌맹이가 들어있는 상자가 매달려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에 "예" "아니오" 둘 중 하나, 가부를 결정하는 질문으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이라는 일종의 주사위나 제비뽑기와 같은 방식으로 "예" "아니오" 의 여부를 응답받았습니다.

어찌보면 미신적인 행동으로보이지만 엄연히 하나님께서 제사장과 정하신 질문에 대한 답의 소통방식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중요한 장치인 것입니다.

에봇의 우림과 둠밈이 있었기에 다윗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었고 사람들의 뜻보다 앞세울 수 있었습니다.

당초 다윗에게 그일라는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위기에 처했던 그일라 사람들을 구해줌으로 그일라 사람들과 그 국경 인근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모여 들었습니다.

22장 2절에 400명이었던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본문 13절에는 육백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이 곳에서 세를 불리면 사울왕도 자신을 함부로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숫자 싸움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봇의 우림과 둠밈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바램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의 은혜를 갚아 다윗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에게 다윗을 넘기며 배신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그일라 사람들의 배신을 미리 알게 된 다윗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그일라를 빠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에봇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일종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에봇이 없으면 사울왕처럼 자기 뜻대로 해놓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기게 됩니다.

그리고 에봇을 통해 하나님께 먼저 묻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1절에서 블레셋의 그일라 침략 소식을 듣고 사람들의 의견을 묻기전에 가장 먼저 에봇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에봇이 있어야 내 느낌이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게됩니다.

우리에게 우림과 둠밈은 바로 기도와 말씀입니다.

오늘날 복잡다양한 현대에 사는 우리는 다양한 기도제목으로 하나님께 묻습니다.

우림과 둠밈처럼 "예" "아니오" 오엑스 퀴즈 형식의 질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과 설명으로 하나님께 질문하고 답을 구합니다.

세상의 인구 수 만큼이나 많은 기도제목들이 있겠지만 결국에는 이 둘로 압축됩니다.

'사람의 뜻' 이냐 '하나님의 뜻' 이냐 둘 중하나 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입니다.

'영생' 이냐 '멸망' 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천국' 이냐 '지옥' 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에봇을 가져다 놓고 장식품처럼 걸어만 놓아서는 안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먼저 에봇을 통해 하나님께 묻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이라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나의 뜻, 사람들의 뜻, 인간적인 정욕과 이기심들을 걸러내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행하기위해 기도와 말씀의 에봇을 더욱 단단히 입읍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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