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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난국(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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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4,197회 작성일 22-05-22 10:25

본문

룻기 1:1-5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는 대략 350년 동안 초대 사사 웃니엘부터 마지막 사사 사무엘 선지자까지를 말합니다.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4장에 나오는 다윗의 족보를 근거로 하여 대략 사무엘 시대 직전인 사사시대 후기때로 봅니다.

사사기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배웠듯이 이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도 없고 법도 없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집안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흉년이 들자 유다 베들레헴 자신들의 땅을 팔아버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면서 땅의 매매를 금지하셨습니다.

레위기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열 두 조각으로 나누어 각 지파가 차지하게 하였습니다.

땅을 차지한 열 두 지파들은 거기서 정복 전쟁의 공헌도에 따라 각 가문들에게 땅을 분배하였으며 한 번 분배 받은 땅을 절대로 팔 수 없도록 정하였습니다.

구약율법에서 땅은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사용을 허락받아 쓰는 사용물입니다.
땅의 소유자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일단 제비뽑기로 하나님께서 분배해주시는 땅의 사용허가를 받았으면 오직 그 땅에서 갈고 일구어 사는 것이 법도입니다.

그러나 유다 베들레헴 엘리멜렉은 흉년이 들자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팔고 모압땅으로 이사를 가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땅 모압으로 이사 온 엘레멜렉의 집안이 잘 될리 없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죽음의 원인을 본문은 밝히지 않았지만 '말론'의 이름이 '병약한' 이라는 점에 미루어 가문의 유전병이나 풍토병으로 사망했다는데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부가 된 나오미에게 남은 것은 모압에서 얻은 며느리 오르바와 룻 뿐이었습니다.
 
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최악의 상황에 처한 나오미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권리는 두 며느리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의 마지막 권리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두 며느리들이 아직 젊기에 얼마든지 새출발의 기회가 있으므로 나오미는 두 며느리들에게 족쇄를 풀어주려고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두 며느리들이 나오미에게 떠나지 않겠노라고 울고 불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평소 나오미의 인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첫째 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울고 떠났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끝까지 떠나지 않았습니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쫓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나오미에게 있어서 본문 현재의 상황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남편을 잃고 두 아들들을 잃고 모압에서 10년만에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나오미는 자신의 이름의 뜻인 '기쁨' 대신 '마라' '쓰디 쓴' 이라고 자신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일한 위안은 모압에서 얻은 며느리 룻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크나 큰 고통을 주시는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나오미가 모압에 있던 10년 동안 남편과 두 아들들 모두를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기가막힌 일입니다.

나오미가 이러한 고통을 받은 이유가 이스라엘을 떠나 모압으로 갔기 때문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일입니다.

나오미보다 더한 잘못을 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던 사사시대 말기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책임은 반드시 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댓가를 생전에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죄 많이 짓고도 멀쩡히 잘 먹고 잘 살다가는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나오미의 고통이 오직 나오미의 죄 때문만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재수가 없어서 팔자가 사나워 고통을 받는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지금이야 괜찮지만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도 내가 지은 죄가 많은데 언젠간 당하는 날이 오겠지라며 걱정이 태산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고통의 화살이 언제 내게 날아올지 모르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고통이 무섭습니까?

건강히 잘 먹고 잘 살 때는 고통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고통은 대게 죽기 전에 찾아옵니다.

고통은 죽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죽음의 전령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고통이 찾아오면 두려운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세상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죽음이 끝이라면 고통은 정말 두려운 것입니다.

나오미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다 '나오미는 이제 끝났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나오미 자신조차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앞에서 '끝'은 없습니다.

항상 영원한 시작만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던 나오미였지만 이방 며느리 룻을 통해 자손을 얻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팔아먹었던 땅을 보아스가 되찾아 주었습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나오미의 일생에 남편과 두 아들이 급사하는 고통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요.

그러나 '마라' 쓰디 쓴 고통이 되었던 나오미의 인생에 행복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나오미 한 사람만의 행복이 아닙니다.

나오미와 같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같은 행복과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게 되고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고통은 죽음의 신호이겠지만 믿는 사람들에게 고통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룻기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쁨 '나오미'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너무나 기구하고 불운했던 나오미, 최악의 경우에서 어떻게 반전의 기적이 펼쳐지는지 알게 하십니다.

지금 나의 고통의 원인은 물론 나 자신 때문이지만 단순히 한 가지 원인만이 아님을 확인하였습니다.

고통은 무조건 나의 죄때문이라고 착각해서도 않되고 무조건 자책해서도 안됩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으로 인정하고 돌아서면 됩니다.

큰 죄 지은 것도 아닌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내게 찾아온 고통의 원인을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설령 고통의 원인을 알았더라도 그 원인이 고통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고통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를 죽이지 못한다.

고통은 결코 엔딩이 될 수 없다.

나의 엔딩은 오직 예수님뿐이다라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이 고통은 반드시 나에게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말씀을 붙잡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겪는 고통이지만 이 고통을 이기고 극복할 때 나를 포함한 여러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십시오.

우리는 어쩌면 모두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나오미처럼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고통의 시간 속에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선을 행하였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자신이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고통에 시달리고 고통과 싸우느라 오직 고통 자체에만 모든 시선이 갇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비록 고통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행하는 것이 최선이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고통에 시달려 짜증을 내고 성을 내고 홧김에 죄를 짓고 고통때문에 이런다고 변명하는 것은 고통의 노예가 되버린 것입니다.

고통 중이라면 더욱 선을 행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은혜를 끼치도록 스스로를 붙잡아야 합니다.

고통 중의 나오미에게 룻을 주셨던 것을 기억합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은혜를 베풀기를 원합니다.

나오미의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처음부터 나오미를 좋아하고 존경했을리 없습니다.

그들은 세대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국적도 달랐기에 나오미가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해야 했을 지 모릅니다.

더구나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 두 며느리들의 진심을 얻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지켜냈던 나오미의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고통 중에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고 불평하지 맙시다.

지금 나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의 고통이 기쁨이 되는 반전의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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