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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건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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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5,480회 작성일 21-09-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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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2:1-21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요단강을 건너기 전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보냈습니다.

40년 전에 민수기 13장에서 이스라엘 열두 정탐꾼을 보냈다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증언으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진출은 중단되고 40년을 광야에서 떠돌아야 했습니다.

정탐꾼이라면 지긋지긋해야할 여호수아인데 또 정탐꾼을 보냈다는 것은 이해가 쉽게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탐꾼은 40년 전 열 두 지파의 대표로 선발되어 가나안 진출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선택하는 책임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여리고성을 공격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으로 이미 결정된 일이었으며 이번 두 명의 정탐꾼들은 최소한의 손실로 최대한 효과적인 공격 루트를 만들기 위해 보내진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만 의지하고 공격하면 되지 무슨 루트를 짜고 작전을 짜야하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실 때 이스라엘을 로보트처럼 조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스스로 결단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작전을 구상하고 스스로 전쟁의 기구들을 정비하고 조직을 짜는데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기도와 믿음에 대한 아주 큰 오해가  있습니다.

믿고 기도하면 공부하지 않아도 시험에 합격하고 일하지 않아도 큰 수확을 거두리라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니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생각은 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는 가만히 있어도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요술지팡이가 아닙니다.

믿음은 나의 최선 그 이상의 노력을 요구하고, 나의 가장 고통스러운 고뇌와 번민을 요구하며, 내가 쌓은 인생의 모든 것 뿐만아니라, 심지어 나의 생명까지도 하나님께 맡겨야하는 절대절명의 투자요 모험입니다.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떠먹여 주신다는 생각에는 내 생명과 인생을 다 건다는 절박함이 없이 나의 필요와 편의를 충족하기를 원하는 차원일 뿐입니다.

오늘 이스라엘이 목전에 둔 여리고 성은 당시 최첨단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지붕에 삼대를 말렸다는 말은 옥상과 난간이 있다는 것으로 그 당시 슬라브 공법이라는 고도의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성벽의 높이가 1층 또는 2층이 아니라 그 이상 최소한 3층이상이었다는 말입니다.

여리고 성의 가나안 사람들이 이러한 엄청난 기술력을 쌓아왔던 이유가 있습니다.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여리고성 사람들에게 아모리 사람 시혼과 바산왕 옥은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거인족 네피림의 후손들로서 키가 거의 4미터에 달하였으며 흉포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거인족들의 침입에 대항하려면 높은 그것도 아주 높은 크고 단단한 성을 건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최첨단 기술력의 집성체인 여리고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그것도 작디작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바위 앞에 계란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공격 명령을 믿고 순종한다는 것은 생명과 인생을 거는 무모한 모험입니다.

생명과 인생을 거는데 기도만 하면 저절로 다 된다는 자세는 실은 생명과 인생을 걸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목숨을 걸고 믿는다면 목숨을 걸고 행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로 했다면 최선을 다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여리고 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공격해야 할 여리고 성은 지난 시간에 배웠듯 실제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죄성, 정욕과 교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상의 필요와 욕구의 해결의 차원보다 훨씬 높은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걸어야 하고 내 생명까지도 내놓아야하는 절체절명의 전쟁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정욕과 죄성은 난공불락 여리고 성보다 훨씬 더 무섭고 강한 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우리 마음의 가나안족속을 멸절해야 합니다.

마음의 양심을 지키고 정직과 공의를 실천하려면 내가 쌓아온 모든 재산을 포기해야 할 순간이 옵니다.

재산 뿐만 아니라 내가 가치를 두던 모든 것, 나의 학식, 지혜, 가족을 포함한 관계 등 내 모든 것을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다 포기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룬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라합입니다.

여리고 왕의 추격대가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찾으러 라합에게 물을 때 라합은 그들을 숨기고 추격대를 성문 밖으로 따돌렸습니다.

굳이 두 정탐꾼들을 숨겨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던대로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 숨겨준 사실이 발각되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정탐꾼들을 찾지 못하고 허탕친 추격대가 돌아와서 심문을 하며 귀찮게 하거나 괴롭힐 위험성도 많습니다.

정탐꾼들을 숨겨준 것은 라합에게는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숨을 건 모험은 그와 그의 일가족을 살릴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히브리서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야고보서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은 가나안 사람들 입장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될 모험을 목숨까지 걸며 감행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지만 과연 목숨까지 걸고 믿는 진짜 믿음은 과연 얼마나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자신의 안전망안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실은 예수를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의 모든 재산과 사업과 미래를 건 모험없이 그에 따른 고민과 번뇌 없이, 그에 따른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행동력이 없다면 실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라합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요?

:9-11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로마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나의 다짐이나 스스로의 의지가 아닙니다.

그 정도로는 생명을 걸 수 없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듣고 내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생각으로 목숨까지도 거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출발은 자발적인 의지가 아니라 인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을 때 외부를 통해 얻어지는 인식으로부터 믿음은 출발합니다.

아, 이거 아니면 살 길이 없구나 라는 인식이 들면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행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대로 못 믿는 것은 노력과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인식의 부재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당장 목숨걸고 믿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위해 애를 쓰십시오.

그러면 살 길을 찾게 되며 살 길이 보이면 하지말라해도 목숨걸고 믿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고 묵상하기를 애쓰십시오.

어디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성령님께서 알게 해주십니다.

그러면 아무리 뜯어말려도 목숨걸고 믿게 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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