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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의 학습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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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207회 작성일 21-06-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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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5:1-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
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삼분의 일 힌을 섞어 준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삼분의 일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
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사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반 힌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
전제로 포도주 반 힌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향후 그들이 차지할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민수기 1-14장은 출애굽 2년까지의 사건이며 15-19는 광야에서의 38년간의 사건입니다.

그리고 20-26장은 가나안 땅에 진출한 시기입니다.

시기적으로는 가장 긴 38년 동안의 사건들이 단지 5장에 걸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 조금 예상 밖입니다.

출애굽 초반 2년 동안은 이집트와의 갈등과 내부적 문제들이 많은  사건들을 낳았으며 출애굽 40년 가나안 땅 진출부터는 타민족과의 충돌들로 인해 기록의 분량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 15-19 장까지는 타민족들과의 전면전이 없이 38년 동안 광야를 떠돌았다는 것 외에 특별히 기술할 것도 없었겠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38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단지 5장의 기록만을 남긴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시기는 이런 면에서 허무하고 초라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초반의 놀라운 기적들과 가나안 진출 시기의 드라마틱한 승전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길고도 지루했던 38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체질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고 정신이 변하고 마음이 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내적인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된다는 면에서 그 어떤 기적보다 가장 근본적인 전환기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기나긴 38년 동안의 일상의 대부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앞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드려질 제사에 대해 38년 동안 배우고 또 배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전체 성경은 아니지만 구약성경을 가장 중요한 학습과목으로 삼고 있으며 대학 입시와 졸업에도 반드시 요구되는 필수 과목입니다.

많은 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오경을 통째로 외울 정도 입니다.

노예근성으로 찌든 이스라엘 민족은 욕심많고 원망하고 고집불통의 수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일한 장점은 바로 성경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처럼 66권 전체 성경을 받지 못하고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세 권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분량은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의 사항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대부분 레위기에서 똑같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정확과 단일' 라는 것입니다.

계절에 따라, 장소에 따라, 형편에 따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분량을 정확히 측정하여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 '힌' 이라는 단위가 있습니다.

오늘 날 3.8리터로 미국의 갤런과 같은 액체의 무게를 뜻합니다.

9절에 '에바' 는 가루의 양을 말하며 대략 22kg 입니다.

거기다 이것을 또 사분의 일로, 십분의 삼으로 나누는 것은 상당히 정밀한 측정이 동원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눈대중으로 대충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저울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정확히 재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사항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데 있어서 '정확성'을 염두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내 짐작으로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과 분량대로 드려야 합니다.

정확한 기준이 없으면 사람들마다 자기 생각대로 예배를 드리고 결국 예배는 중구난방이 되고 말터입니다.

다만 오늘 날 우리는 본문에 제시된 제사 방법에 해당하지 않고 더 완벽한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 예배의 방법은 본문처럼 복잡하지 않으며 한 가지로 통합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힌' 이나 '에바' 와 같은 어려운 도량형을 익힐 필요도 없습니다.

예배의 단 한가지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합되었습니다.

히브리서 9:11-14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더 이상 염소와 송아지가 필요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번에 그리고 완벽히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여전히 정확성을 요구합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각종 제사물들의 양과 무게를 측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만을 측정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예배의 정확성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목욕재계에 정장을 갖추어야 하며

오직 찬송가 공회에서 발행된 찬양에 피아노 반주 하나만 있어야 제대로 된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세전 기준으로 해야하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본교회에서만 예배 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다시 핵심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배의 정확성의 기준은 단 하나,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앞에서 말한 예배의 기준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인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는지 설명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물론이요 성경 어디에서도 위의 사항들을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기준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정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측정하면 됩니다.

예수님처럼 예배 드리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정확한 예배는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비싼 양복을 입고, 멋진 찬양을 하고, 많은 헌금을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살지 않는다면 정확한 예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예배는 집단적 회개를 요구합니다.

:22-24
"너희가 그릇 범죄하여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명령을 지키지 못하되
곧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명령한 날 이후부터 너희 대대에 지키지 못하여
회중이 부지중에 범죄하였거든 온 회중은 수송아지 한 마리를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로 드리고 규례대로 소제와 전제를 드리고 숫염소 한 마리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라"

한 개인이 뉘우치고 반성하는 일은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집단이 뉘우치고 반성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세계 역사를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한 국가가 사죄하는 경우는 너무나 드뭅니다.

이스라엘에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독일은 국민적 사죄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독일말고도 타민족들을 향한 집단적인 살인과 착취는 다른 여러나라들에의해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로 국가적인 사죄를 한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폭을 좁혀 국내에서도 광주항쟁을 비롯한 여러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주체들이 자신의 잘못을 사죄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세상 보다도 더 척을 집니다.

나는 잘못했다고 뉘우칠 수는 있지만 내가 속한 집단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집단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 빼고는 다 죄인이며 다 틀리고 다 잘못입니다.

내가 속한 집단이 절대로 항상 옳을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칠 여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내가 속한 교회가 언제나 옳을 수 없습니다.

물론 더 옳은 교회를 찾아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상 어디에도 예수님처럼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가장 완벽한 교회는 바로 뉘우칠 자세를 가진 교회입니다. 

본문에서 집단의 죄를 수송아지를 통해 속죄하였던 것처럼 교회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담임목사부터 내가 틀렸고 예수님이 옳다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전 성도들이 기존의 가치를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할 열린 마음이 있어야 완벽한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예수님 빼고는 다 바꿀 수 있는 낮고도 유연한 풍토가 조성된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에 가진 것이 많고 돈이 많고 부동산이 많고 사업이 많으면 얼마나 바뀌기 어렵겠습니까?

교회는 언제나 벤처기업처럼 오늘 하루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도전정신과 과감함, 그리고 담대함과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세번째 정확한 예배의 가치는 우리의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31-36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안식일날 땔감 좀 했다고 사람을 돌로 쳐 죽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믿음에 시험을 겪으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돌에 맞아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광야 방황시기의 때로 가서 생각해봅시다.

무려 200만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에 관한 규례를 배우고 실천하던 때의 서릿발 같은 기강을 머리에 그려봅시다.

38년동안 얼마나 많이 반복하여 배우고 또 배운 사항입니까?

귀에 닳토록 듣고 듣고 또 들은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말씀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는 겁니다.

이백만명 중에 단 한명이 불순종했으므로 그냥 눈감고 넘어가주면 안되느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4절에서 당장 죽이지 않고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이 단 한명의 불순종이 허용되면 불순종은 파급되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결국 이스라엘 전체를 패역하게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러한 불순종에 대한 엄정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변함없이 적용됩니다.

다행히 우리는 안식일에 땔감을 해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한 자는 반드시 끊어지리라는 31절의 말씀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무관심한채 사는 사람은 겉으로는 산 사람이지만 속으로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는 말은 권면의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존이 달린 유일한 수단이며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살고 싶으시면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삽시다.

 
마지막으로 성경말씀 중심의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37-4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인간은 눈에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무엇을 볼지 선택하지만 결국 눈으로 보이는 것이 자신을 지배합니다.

우리들의 하루를 분석해봅시다.

과연 얼만큼의 시간동안 우리의 눈과 귀는 하나님의 말씀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주식이다, 부동산이다, 코인이다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 보는데 쏟고 있습니다.

1분이면 수천 수백만원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주식장을 보면 밥먹는 시간도 아쉽습니다.

장이 마감되더라도 수많은 기업들의 정보들을 모으고 분석하자면 일분 일초가 아쉽습니다. 

과연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시간이 있을지 걱정입니다.

39절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에 따라 음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왜 우리의 생존의 문제인가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38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겨입던 사각형 외투의 네 모서리에 청색 끈을 각각 매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고대에는 청색 염료는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청색 실 네 가닥이 외투 모서리에 달렸으니 언제든 눈에 띌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술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이나 카톡 프사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리고 성경 싸이트와 교회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더럽고 음란한 것들을 없애야 합니다.

특히 목포는 100.5 무안 함평 나주 광주는 93.1 MHz 의 라디오 주파수를 1,2번에 기억시키고 텔레비젼은 CTS 를 비롯한 기독교방송으로 고정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요구됩니다.


결론)

정확한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사는 삶입니다.

내가 속한 집단의 회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생존 수단임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환경을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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