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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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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191회 작성일 21-05-16 08:19

본문

민수기 11:1-3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만에 시내광야를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광야를 떠나 바란 광야 입구에서부터 길은 너무나 험악하였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도 없이 끝도 없이 반복되니 지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불평의 정도가 대열의 끝에서 더욱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착 할 때와 행군할 때 배치와 순서를 정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례에 의하면 납달리 지파가 가장 후미에서 행진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짐때문에, 그리고 친이집트파들은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고자하는 아쉬움에 조금씩 뒤쳐져서 가장 후미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위치한 가장 후미에서 불평의 목소리가 가장 컸을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불평불만세력들을 불로 벌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기도로 다행히 불은 더이상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지명을 '불에 타다' 라는 뜻의 다베라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만에 재개된 행진이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목격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행진 순서에 맞추어 뒤쳐지지 않도록 굳이 필요없는 물건들을 다 버리고 몸을 가볍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경각심은 또 얼마 가지 않아 옅어졌습니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이스라엘 무리 중에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인종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아님에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합류시켜 주셨기에 더욱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을 불평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리기는 커녕 그들과 합세하여 더욱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얼마전 다베라에서 원망하다가 불에 타죽은 엇그제의 사건을 잊어버리고 '다시' 울었습니다.


성경은 여기서 모세의 반응을 자세히 기술합니다.

:10-15
"백성의 온 종족들이 각기 자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모세에게 한계 상황이 왔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백성들을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죽여달라고 토로합니다.

지난 출애굽기 32장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난잡한 행위를 하던 이스라엘을 멸하시고자하시던 하나님께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더라도 용서해 달라던 모세였습니다.

그런 모세가 오늘은 그냥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니 도대체 무엇이 모세를 이렇게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출애굽기 32장때와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시내광야에서 10개월 이상 머무르며 레위기를 통해 각종 율례와 법도를 배웠습니다.

배운게 있으니 뭔가 달라지겠지 기대했지만 이게 웬걸 오히려 불평불만을 더욱 반복하는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현재 이스라엘의 주요 쟁점인 '고기문제' 해결에 앞서 보다 근본적인 영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셨습니다.

:1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24-25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백성에게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그리고 그 이튼 날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바람으로 모시고 땅에서 90센티가 되도록 쌓이게 하셨습니다.

: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한 호멜은 240리터인데 이게 열 호멜이디 2,400 리더입니다.

막상 잘 그려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흔히 보는 기름보일러 기름탱크가 대략 400에서 500 리터이니

기름탱크 5개 분량의 메추라기를 그것도 적게 모은 자가 그러하니 얼마나 방대한 양인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33-34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그러나 불평불만을 주도하였던 세력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고생고생해서 몇 트럭분량의 메추라기를 거두어 맛있게 요리해서 막 한 입 베어먹으려던 찰나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심으로 먹어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흐린 날씨에 걸맞게 이스라엘의 반복된 원망과 하나님의 진노가 반복된 음울한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따가운 햇볕아래 메마르고 험악한 바란 광야를 오르내리며 가느데 행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행복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신명기 8:1~4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만나 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여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구름기둥으로 자외선을 차단하시어 백성들의 의복과 피부를 보호하셨음을 신명기 8장은 언급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여정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줄기차게 물과 양식으로 원망하였지만 정작 200만 백성들 중 목이 말라 죽은 사람과 굶어 죽은 케이스는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스라엘은 행복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그들의 죄를 벌하려 하심이 아니라 그들을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낮추심은 벌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오직 낮추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낮추심이 너무 가혹하여 당장 죽을 것 같지만 단 한사람도 하나님의 낮추심 자체 때문에 죽은 자는 없었습니다.

때로는 목말라 죽을 것 같고 배고파 죽을 것 같지만 매일 공급되는 만나와 불기둥 구름기둥 같은 하나님의 안전장치는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낮추심은 불행의 원인이 아니라 행복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행복하지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탐욕' 이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낮추심이 있는 행복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기브롯 핫다아' 탐욕의 무덤이 되어버렸습니다.

탐욕이 있는 한 광야가 아닌 천국에서도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물이 없다고 우니까 물을 주셨습니다.

배가 고파 우니까 만나를 주셨습니다.

이젠 만나가 질렸다고 우니까 고기를 주셨습니다.

울면 다 해결되는구나 착각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우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땅에서 행복한 사람들 찾기가 너무 힘듭니다.

취업때문에 결혼 때문에 집장만 때문에 웁니다.

취업하면 일이 힘들어 울고 결혼하면 다 물리고 싶어서 울고 집 장만하면 집이 낡아서 웁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웁니다.

울어도 별다를 것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속이라도 후련하자고 웁니다.

여러분, 울어서 해결되는 인생은 앞으로도 계속 울어야하는 인생입니다.

진짜 행복해지는 방법이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셨으니 그냥 낮아지면 됩니다.

내가 별 거 아니구나.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탐욕때문에 눈이 멀어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씩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한 늦게나마 깨달은 은혜로 행복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를 둘러쌓은 환경, 내 주변의 사람들, 나의 소소한 취미와 일상들이 과거 내가 꿈꿔왔던 것에 비하면 형편없기 짝이 없겠지만 낮은 마음으로 돌아보니 나같은 인간에겐 이것들마저도 과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렇게 낮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행복하게 여긴다면 문제의식과 발전의 동기가 없어져서 무능력한 인간이 되고 무능력한 국가와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질문합니다.

참고로 불평불만과 원망은 개인과 집단 발전의 도움이 되기는 커녕 무기력과 나태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우리는 원망과 소망을 구분해야 합니다.

원망은 나 중심의 탐욕에서 나오며 소망은 하나님 중심의 사랑에서 나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기비움은 탐욕 뿐만 아니라 모든 소망마저 비운 완전한 무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낮추심으로 모든 것을 행복으로 여기라는 말은 모든 소망을 체념하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탐욕은 광야에 묻어버리되 소망은 더욱 붙잡아야 합니다.

나의 이익과 자존심을 위해 울며 기도했다면 이제는 나의 영혼과 나의 이웃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소망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21-23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우리의 행복의 근거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낮추심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나로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시려는 기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옛날 부터 지금까지 앞으로도 우리는 광야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낯추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고통의 광야길을 걸어오면서 어떠한 위기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말고는 설명이 안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는 없지만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행복할 것입니다. 아니, 행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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