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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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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414회 작성일 21-04-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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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모세오경에는 얼마나 많은 계명이 나오고 있는가? 이에 대해 아무도 정확하게 답할 수가 없습니다.

분류하기에 따라서 천차만별이 될 것입니다.

유대 전승에 따르면, 구약 성서 중에서도 율법서라 불리는 토라(오경)에는 613개의 계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최초로 분류한 사람은 중세 시대의 유대의 저명한 랍비이며 사상가로 알려져 있는 마이모니데스(Maimonides)입니다.

그 가운데서 "하라"는 긍정적인 형태로 된 계명은 248개이며,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인 형태로 된 금지 계명은 365개입니다.

248이라고 하는 숫자는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 부분의 총합이라고 하며 365라고 하는 숫자는 1년을 뜻한다고 합니다.

창세기(1-3), 출애굽기(4-114), 레위기(115-361), 민수기(362-413), 신명기(414-613) 까지 613개의 계명을 10개로 압축한 것이 바로 본문의 십계명입니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상은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입니다.

당연히 10개의 조항으로 되어있습니다.

8개의 하지말라는 금지조항과 2개의 하라는 강제조항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상 네번째 '안식일을 지키라' 는 조항의 핵심도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은 안식일마다 우리처럼 매주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네 번째 안식일 조항도 결국엔 금지조항입니다.

다섯 번째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조항만은 예외적이어서 강제로 행해야만 하는 조항입니다.

히브리어 원 뜻은 네 부모를 무겁게 여겨라, 즉 존경하고 두려워하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인간으로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본성적으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금지조항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실상 십계명을 가장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식물인간들입니다.

어떤 것을 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하지말라는 명령들이므로 가장 완벽하게 십계명을 지키는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음주운전하지말라, 과속하지 말라, 신호 위반하지 말라, 차선위반 하지말라 등등 우리가 잘아는 교통법의 대표적인 핵심조항들은 금지조항입니다.

교통법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운전면허와 차가 없는 사람일 것이고 더욱 잘 지키는 사람은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교통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 모두가 차를 가질 권리, 운전할 수 있는 권리, 이동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로교통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운전할 수 있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듯, 오늘 본문의 십계명 또한 존재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 입니다.

십계명을 주시고 이것들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열가지 빼고 모든 것이 다 허락된다는 엄청난 혜택이 담겨있습니다.

죄를 짓기 좋아하는 저로서는 엄청난 기회였습니다.

합법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여기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죄이면서 십계명에 해당하지 않는 죄라면 얼마든지 죄 지을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십계명에 해당되지 않는 죄가 어떤 것일까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까지는 아니어도 무방하다고 하신 죄는 어떤 것일까요?

요즘 저에게 가장 큰 스트레이인 "식탐" 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야식과 군것질이 만약 십계명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저는 더이상 아내의 잔소리를 묵인할 이유가 없어지는 획기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대충 보니 없습니다. 

이게 웬 떡입니까?

이제 저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몫을 훔쳐먹거나 욕심내면 제 8계명과 제 10 계명에 위반되지만 내 돈으로 내가 산 것을 내 마음대로 먹는다는데 십계명에는 이를 금지하는 조항이 없어보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저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제가 마음대로 먹는다면 과체중과 더불어 몸이 무거워지니 운동이 더 하기 싫어져 각종 성인병과 대사질환의 위험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6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라는 조항을 보니 다른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물론이요 나 자신도 죽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합법적인 야식과 폭식의 기회는 십계명에 막혀 있다는 실망스러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제가 아니지요.

머리에 떠오르는 한가지 죄가 있습니다.

여기엔 수많은 학생들의 염원을 담겨 있습니다.

바로 '게임' 입니다.

십계명에는 분명히 '게임' 하지 말라는 조항이 없습니다.

마음껏 게임 할 수 있는 분명한 명분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게임의 시간과 종류입니다.

건전한 게임을 적당한 시간 동안 즐기는 것에 대해 십계명은 전혀 문제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행성 게임이나 선정적이고 잔인한 게임은 '도둑질하지 말라' 와 '간음하지 말라'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 등등의 계명에 위배됩니다.

또한 밥도 먹지않고 밤새 내내 게임을 하는 자녀를 보고 속상하지 않을 부모가 없을 것입니다.

이 또한 부모님 보다 게임을 더 존중하는 것이기에 역시 십계명 중 제 5 계명에 위배됩니다.

이 쯤 되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 은 굳이 설명할 것도 없겠습니다.



오늘날 십계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방종과 방탕입니다.

십계명이야 사막의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오래되고 사문화된 자치법인데 굳이 지킬 이유가 없으므로 마음껏 자유를 누리자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나 하고 싶은대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자유라고 하지만 실상 자유가 아닌 방종이며 방탕입니다.

방종과 방탕의 끝은 멸망이요 죽음 뿐입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대하는 두 번째 반응은 완벽주의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포기하고 죄 지을 가능성을 최소화하자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모든 계명들을 구체화하고 확장하여 조목조목 여러 항목들을 만든 뒤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무조건 지키게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만 포기하면야 뭐라하겠습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의 자유도 포기하게 하고 통제하려고 든다는 것입니다.

위의 방종과 방탕의 사람들은 그에 대한 댓가로 고통 받을 때 그나마 뉘우칠 확률이 조금이나마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완벽한 사람이므로 뉘우칠 기회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혼자 있을 때 은밀하게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위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십계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십계명을 지킬 수 없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십계명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하지말라는 딱 열 가지 계명만 빼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자유라고는 하지만 실상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실상 에덴동산의 아담에게도 '선악과를 먹지 말라' 는 단 하나의 금지조항 말고는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끝내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십계명이 아니라 일계명이어도 우리는 끝내 단 하나의 계명조차 지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돈신을 섬김으로 첫 번째 계명부터 박살내었습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우리의 육신의 눈에 보기에 크고 많고 아름다운 것에 도취되어 영적인 본질을 볼 수 없게되었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말라는 부분은 우리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물질문명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신 주관자 하나님이시기보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를 위로하는 도구 쯤으로 여기지 않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시며 주제이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이를 뒤바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려지니 사람과의 관계도 어긋나고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살면 살 수록 사람이 제일 무섭고 지긋지긋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살인하며 간음하며 도둑질하며 거짓말하며 남의 것을 탐합니다.

분업화 전문화 다양화 세밀화 사회에서 내가 지금 누굴 죽이는지 모른 채 업무상의 이유로, 회사 규정상의 이유로, 각종 규제와 관례의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착취하며 음란을 채우고 탐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어차피 지킬 수도 없는 십계명인데 지킨다고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반응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니 십계명을 그냥 무시해도 될까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렇게하고 싶지만 십계명에 대한 남녀노소 누구나 가지는 공통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많이 배웠든 못배웠든, 가난하든 부하든, 나라와 국적과 종교와 문화에 상관없이 십계명 앞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반박 불가라는 것입니다.

일부다처제 문화의 이슬람 중동 국가에서도 돈 많은 남자가 어린 처녀를 후처로 들이는 것에 대해 본인도 떳떳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수군대며 무엇보다도 전처는 분노하며 후처는 비참해 합니다.

왕자와 공주가 만나 악당들을 물리치고 난관을 헤쳐나와 둘이서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은 전세계 모든 어린 아이들의 환상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중에 왕자가 후궁을 들였다는 해피 엔딩 이 후의 스토리가 있다면 이야기하는 부모나 듣는 아이 모두 불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와 문화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감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양심' 이라고 합니다.

십계명은 인류 보편의 '양심'을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마저도 우리가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되고 최선을 다해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9-20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결론)

그렇다면 우리는 십계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해답은 '사랑' 입니다.

마태복음 :35-40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은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을 한 문장으로 줄여서 하나님과 이읏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키는데 가장 완벽한 방법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근본 취지인 '자유' 를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에 '사랑'을 대입하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습니다.

사랑이 목적이 되고 동기가 되니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고 저절로 십계명이 지켜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인지라 나는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잘못이 되고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죄인 줄 알면서도 습관이 되어 아직 끊지 못한 죄도 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에의해서라면 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로 인해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십계명은 내가 누리는 자유의 기준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습니다.

설령 십계명을 어겼다면 다른 것 생각말고 무조건 '사랑' 을 점검해야 합니다.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십계명은 타이어고 사랑은 운전대입니다.

십계명을 어겼다고 십계명만 붙잡고 괴로워 할 것이 아니라 타이어를 움직이는 운전대인 '사랑' 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십계명과 씨름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사랑' 이라는 운전대를 조종해야 '십계명' 인 타이어가 움직입니다.

우리가 십계명 앞에서 힘써야 할 것은 10개의 계명들이 아니라 '사랑'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껏 사랑의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러나 항상 십계명 안에서 십계명을 기준으로 자신의 자유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십계명에서 벗어난다면 자신의 자유의 동기가 사랑인가 아닌가를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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