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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저주와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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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957회 작성일 20-12-20 09:27

본문

창세기 49:1-2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오늘 본문은 야곱이 나이 147세에 죽기 직전 자신의 열 두 아들들의 후손, 열 두 지파에 대한 유언이자 예언입니다.

본 장의 유언에 대한 놀라운 점이 많습니다.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본 유언의 놀라운 점을 짚어 보고자 합니다.

첫번째 방대한 분량입니다.

본장의 야곱의 예언은 창세기서의 여러 예언적 메세지 중에서 가장 분량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당시 147세인 야곱의 건강 상태와 인지능력에 대한 논란을 일으킵니다.

노령의 야곱이 열 두 아들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외우는 것도 쉽지 않을 터인데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본 문의 야곱이 침상에 누워서 한마디씩 간신히 전달하는 것으로 상상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와상환자의 모습과 달랐습니다.

: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은 침상에 누워서 말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또렷하게 아들들에게 명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차분함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치고는 너무나 평온합니다.

거기다 예언을 마치자마자 바로 침상에 발을 모으고 숨을 거두는 모습 속에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유언의 마지막 부분인 자신의 매장지에 관한 부분을 언급할 때 그 매장지의 구입 배경과 안치자의 명단, 그리고 현재 소유권 상황 등을 조목조목 정확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147세에 이렇게 또렷하고 깔끔하게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마지막 예언의 정확성입니다.

장남 르우벤부터 막내 베냐민까지 열 두 지파의 미래를 예언하였는데 이 예언들이 후에 정확하게 드러맞았다는 것입니다.

열 두 예언들 중 절반만 맞아도 대단하거늘 무려 열 두개 백퍼센트 정확하게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본문의 유언이 실제 야곱이 남긴 말이 아니라 후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본문의 축복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다지파 사람들에 의해 꾸며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본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성령으로 감동시키셔서 기록하게 하신 것으로 기록자 모세의 시기는 당시 열 두 지파의 확장이 시작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절대로 모세가 주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유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많은 분량의 정확한 예언을 차분하고 강건한 모습으로 나열했기에 사람들은 이게 진짜 147세의 야곱이 한 것이냐고 의문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 의문의 답은 바로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힘을 주시고 복을 주신 것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믿음이요 믿지 못하면 죽어도 믿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은 특히 저주와 축복이 담겨있는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유다의 예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5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첫째 부인 레아의 둘째 셋째로 창세기 34장에서 자신의 누이를 겁탈한 세겜족을 상대로 복수하여 그들 모두를 몰살하는 끔찍한 살인극을 벌렸습니다.

:7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예언대로 시므온 지파는 40년 광야 생활 중에 모압족속과 연합하여 모세에 반항하고 우상을 숭배하다가 많은 수를 잃고 그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로부터 가나안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유다 지파에게 편입이 되고 맙니다.

레위지파 또한 독자적인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나머지 열 한지파 가운데로 흩어져서 레위인의 직분인 제사와 종교의식을 담당하게 됩니다.

레위지파는 그래도 하나님의 일을 전담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었지만 시므온 지파는 그냥 공중 분해되버렸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회개와 반성이었습니다.

민수기 25장 바알브올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 생활 중 싯딤에 머무르다가 모압 족속 여인들과 음행하는 사건이 벌여졌습니다.

특히 시므온 지파가 이에 중심적으로 연루되었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전염병으로 남자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레위지파는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회개를 통해 이스라엘의 더러움을 씻는데 앞장 섰습니다.

얼마전 유명 연애인들의 부모가 타인의 빚을 떼어먹고 비난을 받은 빚투운동이 광풍을 일으켰습니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릇된 행동을 한 부모의 책임을 떠앉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한 번 잘못한 것으로 용서가 없습니다.

잘못한 죄인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련 가족들조차 낙인이 찍힙니다.

이렇게 한번 낙인이 박히면 저주는 끝날 줄 모르게 됩니다.

물론 시므온과 레위는 한 민족을 살해하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본문의 저주의 예언대로 시므온지파와 레위지파는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주 받은 자들에게도 기회를 주십니다.

반성하지 않고 끝까지 반항한 시므온 지파는 그냥 공중분해되어버렸지만 회개하고 반성한 레위지파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하는 은혜를 얻게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끝없는 용서와 자비를 은혜라고 합니다.

은혜하면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넷째 유다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축복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원래 형제들의 절을 받는 자는 요셉이었으며 요셉의 꿈대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가 형제들의 절을 받는다는 야곱의 예언이 선포되었습니다.

예언대로 유다의 후손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을 응징하였습니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사자는 강함을 상징합니다.

유다의 강성함을 예언함과 동시에 요한계시록 5:5에서 이스라엘의 사자,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를 통해 나타나신다는 것을 비유합니다.

지상왕국 이스라엘의 왕 다윗을 배출하는 것에 머무르지않고 천국왕권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출하는 영광이 유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큐와 통치자의 지팡이는 왕권을 뜻합니다.

실제 다윗으로 시작되는 왕권은 20대 시드기야까지 다른 지파에게 왕권을 빼앗기지 않고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통치를 의미합니다.

본문의 '실로가 오시기까지' 라는 대목에서 실로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다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상징합니다.

실로는 지명으로서 여호수아와 사무엘을 비롯한 여러 사사들의 중심거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실로는 지명을 뜻하지 않고 사람을 뜻하므로 '오시기까지' 라는 3인칭 남성 단수의 극존칭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 모든 민족들이 굴복하고 복종하게 된다는 의미로 장차 오실 재림의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이 구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요한복음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으로 유다지파를 통해 약속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됨을 의미합니다.

:12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이는 유다 지파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이스라엘이자 유다지파은 성도들이 얻게될 풍성함과 부유함, 그리고 성결하고 깨끗한 거룩한 백성의 품위를 말합니다.

이렇게 지상왕국 이스라엘의 왕권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의 왕권을 배출하는 유다지파의 영광은 너무나 압도적일 뿐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유다 대신 요셉에 돌아가야할 예언을 노쇠한 야곱이 착각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요셉과는 비할 수 없는 유다였습니다.

자기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냉혈한이었습니다.

전통을 핑계로 며느리 다말을 냉대하였던 자였습니다.

이방 친구들에게 물들어 바알 신전의 창녀와 성매매한 자였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이 모든 좋은 것들을 차지할 수 있었는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대로 창세기 38장의 며느리 다말에게 준 담보물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비록 냉혈한이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유다였지만 며느리 다말이 내민 자신의 담보물, 도장과 끈과 지팡이 앞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도장과 끈과 지팡이는 귀중품이 아닌 흔하디 흔한 일상의 소품일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는 모르는 일이라면서 발뺌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며느리 다말이 불에 타죽으면 그걸로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도장과 끈과 지팡이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담보물 속에 담긴 자신의 냉혈함, 이기심, 그리고 더러운 정욕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담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며느리 다말이 나보다 옳도다라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망신을 당하고 아버지 야곱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 때부터 유다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받았습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담보로 내놓습니다.

요셉의 계획에 의해 베냐민이 노예가 될 상황에서 자신이 베냐민의 담보임을 주장하며 대신 노예가 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이니 무슨 죄를 저질렀든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회개와 반성입니다.

자신의 담보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을 위해 자신을 담보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입니다.

우리의 생명의 담보가 되어주시고 우리 대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담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세 사람의 죄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시므온과 레위, 유다 셋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하나는 반항하다가 공중분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둘은 반성하고 회개하였기에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고 지상과 하늘의 왕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가 이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창세기의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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