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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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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66회 작성일 20-08-16 06:21

본문

창세기 19:24-29

본문의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명령에 할아버지 데라와 삼촌 나홀은 가나안 땅 직전인 하란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삼촌은 과감하게 유프라테스강을 건넜으며 이 때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왔지만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해 고생만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아브라함과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며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은 좋은 것만 나누는 것보다 어려움을 함께 겪으면 더욱 관계가 깊어집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삼촌과 조카의 관계를 뛰어넘는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그런 사이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에게는 아들도 없으니 롯을 더욱 각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창세기 13장에서 결별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어려웠을 때는 오히려 좋았던 사이였지만 가축과 종들이 너무 많아지니 그게 문제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떠나 요단강지역 평지에 자리를 튼 롯은 이 후 소돔시에 정착하게 됩니다.
문제는 소돔시와 고모라시의 사람들이 너무나 흉악하고 타락하여서 하나님께서 멸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보내시어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을 소돔시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중간에 롯의 아내는 소돔시를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습니다.
후에 산으로 겨우 도망친 롯과 두 딸은 재산하나 없이 몸만 겨우 구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삼촌 아브라함은 나름대로 자리잡고 살았지만 롯은 무일푼 빈털털이로 그 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롯과 같이 살지는 말아야겠다. 아브라함처럼 살아서 복받아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봅시다.
롯이 과연 얼마나 잘못살았습니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성경을 읽어보면 롯은 나름대로 괜찬은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떠나 삼촌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왔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돔시에 온 두 천사를 맞이하고 식탁을 베풀었던 영적감각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고대 근동에서 성문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 지역 유지의 신분이어야 합니다.
롯은 소돔시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롯은 고대에 만연하였던 일부다처를 저지르지 않고 한 아내와 두 딸의 충실한 가장이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볼 때 롯은 훌륭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충분히 괜챦은 사람이었습니다. 
롯 정도의 괜챦은 사람이라면 부귀영화는 그렇다치더라도 오늘 본문처럼 가정이 깨지고 무일푼으로 전락하게 되는 사연이 마음 편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보다 신앙이 조금 없다는 정도이지 롯도 솔직히 믿기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너무 가혹하시다고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와동시에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 롯의 인생을 돌아보아야 할 이유또한 분명합니다.
무엇이 롯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우리가 따라가고 싶지 않은 인생이 되었는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합법적으로 이기적인 사람
.롯은 창세기 13장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 동편땅과 서편땅을 선택하라고 했을 때 물이 풍부한 평지 동편땅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이러한 롯을 탓할 수 없습니다.
롯의 선택은 기회는 균등하며 과정은 공정하다는 모토에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세상 정부는 롯과 같은 사람들을 원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에 충실한 사람들입니다.
내야할 세금을 온전히 납부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각종 복지 혜택들을 인터넷이나 각종 매체를 통해 법이 정한 범위안에서 최대한 누리는 가장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시민입니다.
이러한 롯과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세상은 행복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법은 우리의 생각만큼 완전하지 못합니다.
합법이라는 이유로 내야할 세금보다 턱없이 부족한 금액으로 공제받거나 빠져나올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방법들이 세무사나 회계사등 그들만의 리그에서 존재합니다.
합법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타인의 노동력을 취하는 수법들 또한 노무사와 같은 그들만의 리그에 존재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합법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노동의 댓가보다 훨씬 더 많은 부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복잡다양한 고용노동법 뒤틀리기 수법들이 각종 노동 및 쟁의 단체들과 같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난무합니다.
이 과정에서 합법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착취를 하는 사람과 착취를 당하는 사람이 존재하게 되지만 여전히 합법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문제삼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당함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면 그 사회와 국가는 병들고 부패하게 됩니다.
롯과 같이 법의 테두리 않에서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권리에 철저한 사람, 지극히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사람들로만 구성된 사회는 결국 소돔과 고모라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권리에 철저한 사람 그 이상을 원하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초를 겪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조차 예수님은 법적으로 사형당할 이유를 조금도 찾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법대로 하였다면 예수님은 당연히 합법을 이유로 십자가를 피하실 수 있었으며 자신을 해하려 한자들을 무고로 고발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셨다면 여전히 세상은 죽음이 왕노릇하는 어둠의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시민들을 양성하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합법적인 바보들을 만드는 곳입니다.
자신의 의무가 아니라 타인의 의무를 대신 감당하는 바보들을 기르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비로소 의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도시, 우리가 사는 나라를 유지하고 지탱할 수 있는 이유는 수천만의 일반적인 시민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합법적인 바보 열명 또는 백명 때문에 한 도시와 한 나라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팔순을 맞이하신 김영수 목사님과 김봉기 장로님의 인생을 통해 우리는 본문의 깨달음을 얻기 원합니다.
법대로 하자, 힘으로 밀어부치자면서 부추기고 조언하며 심지어 원망하던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손해보고 참고 감당하며 덮어주셨던 두 분의 인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큰 나무 그늘아래 햇볕과 비바람을 피하는 새들처럼 깃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 두분께 하나님께서 천국의 복과 함께 이 땅에서도 건강장수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합법적인 의인으로는 충분치않습니다.
합법적인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합법과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영혼을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한번더 참고 한번더 안아주고 한번 더 수고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축복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2. 세상의 풍족과 안전을 구함

:15-16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천사 한명만 보내셨어도 되는데 왜 천사 둘을 보내셨을까하는 의문이 본문에서 풀립니다.
롯과 그의 아내, 그의 두 딸들은 소돔시와 고모라시의 멸망의 경고에도 지체하며 떠나기를 주저하였습니다.
주저하며 지체하는 롯의 네가족을 이끌려면 한 명으로는 안되고 천사 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예비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길 것을 아셨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천사 셋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소돔시와 고모라시는 죄악이 넘치는 곳이었지만 롯에게는 그래도 가나안 서쪽 땅 산지보다는 훨씬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롯은 소돔시에 아파트와 상가 몇채를 두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 받고 있었습니다.
큰 도시이다보다 각종 문화행사와 볼거리 먹을 거리들이 넘쳐났습니다.
대형 마트의 진열된 물건들만 봐도 내가 문명사회에 살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롯은 오히려 가나안 서쪽 땅 산동네에 살고 있는 삼촌 아브라함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소돔시는 이제 롯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이요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롯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천사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속히 소돔시를 떠나라는 말에 선뜻 응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한달 아니 최소한 일주일이라도 말미를 주셔서 떠날 채비와 마음의 준비라고하게 해주셨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주면 줄수록 우리 인간들은 더욱 주저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멸망 당일에 갑자기 나타나 엉겁결에 이끌고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본문 7절에 롯은 천사들을 강간하려는 소돔시의 흉악한 폭도들에게 '내 형제들아' 라고 부릅니다.
도시가 주는 안전감과 문명이 주는 쾌락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세상의 죄악마저도 형제로 여기는 롯의 영적 타락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세상이 보장해주는 직장과 부동산을 비롯한 수입원은 여러분의 형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이 보장해주는 각종 사회적 안전망과 여러가지 보험들 또한 여러분의 형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각종 유혹과 쾌락들은 더더욱 여러분의 자매들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더라도 소속은 분명히 합시다.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이 될지언정 세상 자체가 되서는 안됩니다.
빛으로 밝혀지는 세상이 아닌 밝히시는 빛 자체이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을 잊지 맙시다.

3.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음
저는 롯의 최대 잘못은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 27절에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조카 롯을 찾으려 소돔시에 왔습니다.
아마도 롯을 찾으러 백방으로 수소문하였을 것입니다.
롯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삼촌 아브라함에게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무슨 자존심이 남았는지 끝까지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롯은 굴에 거주하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에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롯의 두 딸은 자신의 아버지 롯을 술로 정신을 잃게하고 롯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여 자신들의 아들들을 얻게됩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미개한 사건이지만 당시 여성들은 자기의 남편이 아닌 자기의 아들을 의지하는 고대의 사회적 구조를 생각하면 롯의 딸들이 절실하게 아들을 구하는 이유가 납득이됩니다. 
만약 롯이 아브라함에게 되돌아 갔더라면 롯 뿐만 아니라 롯의 딸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도 아브라함의 구원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고집으로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근친상간의 결과물인 모압과 암몬 자손이 출현하게되며 이는 두고두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히고 살육하는 악한 세력으로 형성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죄악을 모르는 소돔과 고모라의 순진한 어린 아이들의 죽음은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놓고 볼 때 소돔시에서 살아남은 롯의 자손들이 당시 멸망당한 소돔 전체 인구보다 훨씬 더 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죽음으로 내몬 모압과 암몬 족속들이라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멸족의 징벌의 당위성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일례로 1945년 히로시마와 나카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21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로인한 일본의 항복 선언이 앞당겨짐으로인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인명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어려운 윤리적 난제는 지금 당장 결론낼 주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로 인해 두 도시들의 인구를 몇 갑절 상회하는 인명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의 일부이며 우리의 이해와 논리를 초월하는 영역이므로 우리가 함부로 평가하거나 분석해서는 안되며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는 것만이 우리의 몫입니다.

롯만 잘못 산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를 누이동생이라고 두 번이나 속이는 등 하나님앞에 흠도 많고 죄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되돌아 오는 것입니다.
무슨 죄를 저질렀든지 일단 하나님께 되돌아 와야 합니다.
죄없는 분들께는 억울한 소리지만 무슨 죄를 지었든 하나님께 되돌아오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의 책임을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롯이 어떤 이유로든 어떤 구실로든 아브라함에게 되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롯이 저지른 최대의 가장 결정적인 죄였습니다.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내 죄가 커서 하나님 뵐 면이 없다고 말하면 아직도 덜 뉘우친 것입니다.
아버지께 잘못했으면 아버지께 돌아가고 하나님께 잘못했으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해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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