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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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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173회 작성일 20-07-19 04:59

본문

창세기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앞장 창세기 11장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의 실패한 인생이 나옵니다.

그는 갈데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떠난 아브람보다 더 먼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라는 그 이름부터 머무르다 지체하다라는 뜻으로 가나안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지 않고 하란에 머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데라 대신 그의 아들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가게됩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그 이름의 뜻대로 '큰 아버지' 나아가 '열국의 아버지'로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데라와 아브람에게 똑같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명은 가질 못하고 머무르고 다른 한 명은 강을 건너 갔습니다.

그 원인은 악명높은 가나안 땅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이 좋은 곳이라면 데라가 지체하며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가나안 땅이 도대체 얼마나 살벌하고 열악하였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9:20-27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심판 후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잠든 것을 아들 함이 보고 흉보고 비난하였으나 야벳과 샘은 얼른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질쳐 노아를 덮어주었습니다.

한가지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아는 함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습니다.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샘과 야벳의 종이 되리라 저주합니다.

잘못은 함이 했는데 난데없이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해석이 존재합니다.

잘못을 한 함 한 사람만 저주를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으로 대표되는 모든 함의 자손이 두고두고 대를 이어 저주를 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본문이 쉽게 와닿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도 연좌법, 노륙법이라는 것을 두어서 죄인의 가족이나 스승등을 동반 처벌하는 조항들이 있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 때에야 비로소 폐지되었습니다.

물론 최근까지도 군부독재정권의 정권안정 및 국민 통제의 수단으로 사상범들의 가족들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였던 것이 우리의 역사가 감추고 싶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사람만 그 죄의 댓가를 치루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자, 잠시 생각의 폭을 넓혀봅시다.

죄는 선택의 잘못이나 개인적인 실수의 차원이 아닙니다.

악한 범죄자가 저지른 악한 행위의 원인이 백프로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범죄자가 그렇게 되어진 환경, 가족관계, 사건 사고등 복합적인 원인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죄든지 죄를 저지른 당사자에게만 백프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가족, 집단에 또한 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잘못이 없는 사람에겐 무척이나 억울한 일입니다.

가령 전라도에서 중범죄자가 악한 죄를 저질렀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전라도는 원래 그래 하면서 모든 전라도 사람들을 싸잡아 매도합니다.

전라도 사람이라면 많이들 느껴봤을 억한 심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게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지역사회나 공동체를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묶어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연좌제는 교육과 계몽으로 점점 줄어들고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오히려 갈수록 더 심각해 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인종 갈등은 갈수록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백인들은 흑인이라고 하면 일단 잠재적인 범죄자들로 여깁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은 무조건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깁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함의 자손 가나안 사람들은 함의 잘못때문에 노아로부터 싸그리 종으로 저주받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연좌제를 시행한 노아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그 빌미를 만든 함의 잘못입니까?

아니면 함의 자손으로 태어난 가나안 사람들의 잘못입니까?

답은 누구의 잘못인가라는 질문이 틀렸다입니다.

바로 모두의 잘못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사람의 죄를 말미암아 온 인류가 죄의 영향아래 죽음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억울하지만 이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 인간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것 같지만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죄는 바로 모든 사람의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억울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억울한 사람은 노아도 함도 아닌 바로 함의 자손 가나안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노아의 저주로 인해 종으로 전락하여 받는 무시와 푸대접과 차별을 피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강 서쪽으로 이동하여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가장 억울해 하는 사람들의 땅이 되었습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내가 피해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의 분위기는 침체되고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모든 방면에서 퇴보되고 말것입니다.

가나안 땅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가나안 땅은 3부로 표현되는 곳입니다.

부유해서 3부가 아닙니다.

1) 부정적
가나안 사람들은 셈의 종이 되라는 저주 때문에라도 셈의 후손들을 자동적으로 적대시하였습니다.

날로 악화되는 한일관계를 생각해보면 일본사람이라면 먼저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비슷 아니 훨씬 더 적대적일 것입니다.

2) 부도덕
차별받고 좌절에 부딛힐 수록 타인에 대한 비판은 커져가고 정작 자신의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는 불법이 횡횡하여 갈수록 험악해 집니다. 

3) 부족
불안정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적인 신뢰를 기대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경제적 안전장치 구축에 몰두합니다.
그로 인해 생산은 줄고 물류는 감소되어 사회적 취약층과 빈곤층들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모든 문제의 답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리고 아브람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죽음의 저주를 받고

함의 죄로 인해 함의 자손 가나안 사람들이 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브람 한 사람이 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자, 본문을 전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서 거기서 잘먹고 잘살게 되었다는 내용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 함의 죄로 인해 부정적이고 부도덕하며 부족한 가나안 사람들이 복 받은 아브람 때문에 모두 복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고 다 남탓 조상탓 부모탓 나라탓만 하는 가나안 땅에 필요한 것은 훌륭한 정치가나 성공한 경제인, 강남 아파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단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저와 우리 모두가 그런 복을 받은 단 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복은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나안 땅은 저주의 땅이요 부정적, 부도덕, 부족의 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을 받은 우리가 있을 곳은 바로 가나안 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을 가지고 가면

가나안 땅은 저주 받은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데라는 자신의 안락과 안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끝내 하란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우리의 가나안 땅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가나안 땅은 물리적 지리적 차원이 아닙니다. 

유독 나에게만 차갑게 대하는 직장 동료나

준 것없이 미운 이웃,

꿈에서도 보기 싫은 직장 상사나 거래처 사장,

밑빠진 독처럼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는 게임 중독자들,

눈만 마주치기도 부담되는 취업 재수 청년들,

괜히 친해지면 도움 줄 일만 생길 것 같은 독거 노인들,

바로 이들이, 전혀 가까이 다가가기 싫은 사람들이 우리의 가나안 땅입니다.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은 축복의 땅이기에

우리에게 이러한 사람들은 바로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을 받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늘 보좌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구원 받아 영생을 얻고 천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은 가나안 땅으로 가야 진짜 나의 복이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마시고 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나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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