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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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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10-20 10:41 조회 13,1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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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2:24-30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명화를 통해 어느 정도 익숙한 그림이 떠올려집니다. 
최후 또는 마지막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특별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함께 하시고 싶으셨던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어느때처럼 함께 식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는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거기에 마지막이라는 말이 붙으니 아주 특별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 최후의 만찬에 많은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지상사역의 마지막 총정리를 해주신 것입니다. 
본문에는 없지만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마지막 만찬자라에서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을 4장에 걸쳐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만찬자리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속도 모르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해달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3년동안 열두명의 제자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던 오래 묵은 문제였습니다. 
바로 서열정리였습니다. 
제자들은 우리가 질서가 없이 중구난방이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펼치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서열을 정리해보자로 했습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나이 순서대로 하자고하고 마태는 나이는 숫자일 뿐 제대로 배운 사람 우선으로 책가방 끈을 내세웠습니다. 
요한과 안드레는 예수님을 먼저 만난 순서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으며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그래도 피붙이인 내가 나서야 하지 않겠냐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25절을 다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임금들을 예로 들었습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사람들을 주관한다고 했습니다. 
즉, 힘으로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감화시켜 설득하려하지 않고 법이나 무력으로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그런 세상의 임금들을 은인이라고 칭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임금들과 지도자들은 그러므로 더욱 더 강한 힘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자기와 반대되는 주장과 세력을 힘과 여론으로 굴복시키려고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는 모두가 죽지않는 한 결코 평화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다툼이 끊임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하나님 나라의 큰자는 어린 사람과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자 즉 낮은 자와 같다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13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과 함께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손님들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들 중에서 가장 낮은 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더 크냐는 제자들의 헤묵은 논쟁에 아예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된다는 것은 이렇듯 다른 사람들의 발바닥의 때를 닦는 자의 몫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임금이 되기가 쉽지않지만 하나님 나라의 큰 자가 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이 선을 행하고 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정도로 좀 막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을 베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의 희생도 요구하게 됩니다. 
16:29-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타인을 위해 선을 베푼다는 것은 단지 금전의 희생뿐만 아니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 친지들의 원망과 불평도 감수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압제하면서도 그들에게 은인이라 칭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의를 구하고 선을 베푼 자들에게는 대부분 칭찬은 커녕 배신을 당하기가 일쑤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을 위해 산다는 것은 칭찬을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핍박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철없는 제자들에게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본문의 원어표현은 그동안 함께 한 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자들을 포함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셔서 고난과 멸시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셨습니다. 
우리를 죽음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받으셨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런 예수님을 오히려 욕하고 비난하였고 배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산다는 것은 이렇듯 모든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기에 칭찬보다는 비난을, 댓가보다는 배신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러한 십자가의 모든 시험을 함께 한 자들에게 큰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29-30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진정한 강함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요즘입니다. 
많이 배워서 판검사가 되거나 인기를 쌓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돈을 많이 벌어 대기업주가 되거나 힘을 키워 폭력배 두목이 되는 등 세상에는 여러 종류들의 강함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고도 비난을 받고 호의를 베풀어도 배신을 당하면서 그러고도 참고 견뎌야 하는 예수님의 강함이 진정한 강함일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힘과 논리에 의해 변화되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받은 상처와 결함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을 변화시키려면 더 강한 힘과 논리가 필요할까요?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사랑은 예수님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맡겨주시고 예수님처럼 피와 땀과 눈물로 세상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는 자가 이기는 자다라는 말을 젊었을 때는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니 정말 참는 자가 이기는 자요 큰 자임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은 결코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합니다.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피흘려주신 예수님을 봐야 가능한 것입니다. 
기왕 사람으로 태어나 좁쌀같은 인생이 아닌 큰 사람이 되어봅시다.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지 말고 사람들의 댓가를 바라지 말고 저들의 마음의 때를 닦아주는 하나님 나라의 리더가 됩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고 호의를 베풀때 인간이기에 느낄 수 밖에없는 좌절과 배신감에 굴복하지 맙시다. 
지금 이 괴로움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시험에 함께 하고 있음을 무엇보다도 확실히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다스리는 자, 진짜 강함을 소유하는 자 선을 행하고 호의를 베푸는 댓가를 감당할 용기있는 자들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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