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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9-02-24 09:56 조회 12,7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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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3:1-9
오늘 본문 3절은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자신의 소원과 바램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아예 기도조차 하지않는 이 세대에 부르짖는 기도는 너무나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르짖는 것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본문의 부르짖다라는 우리말 번역은 히브리 원어적으로 무리한 번역이며 다음에 따르는 문맥과도 맞지 않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응답하라 또는 대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고 소통해 주시고 소통을 넘어 감추어진 비밀을 계시해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민원인이 각자의 민원을 가지고 애타게 탄원하는 부르짖음과는 별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의 소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는 관심없고 일단 우리 자신의 당면한 문제 해결이 더 우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하기보다 자신의 기도제목이 더 중요합니다. 
무조건 부르짖다보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직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부르짖는 것이 충분치 않아서이다 라고 오해합니다. 
열왕기상 18장에 이스라엘에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은 그들의 기도에 반응이 없자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할 정도로 피토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단 한번 하나님께 구하였더니 바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간절함은 부르짖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크게 기도하는지, 얼마나 오래 기도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해결해주시는 민원창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민원해결을 위한 신문고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기도가 아닙니다. 
결론은 부르짖으라가 아닙니다. 
본문의 주제는 하나님과의 소통이며 소통을 넘어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계시해 주신 크고 은밀한 일이 무엇인가 구하는 것이 진짜 주제입니다.
본문의 1절이 말하는 첫번째 주제는 눈에 보이는 상황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확실함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레미야는 억울하게 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있는 그대로 전하였다는 죄로 말입니다. 
권력자들은 예레미야를 독방에 가두고 그의 입을 막았습니다. 
암울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확실한 존재하심을 알려주십니다. 
2절을 통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신다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본문에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부분에서 일은 원어성경에는 생략된 목적어 입니다. 
창조신학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원론적 관점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적어가 무엇이든 하나님은 일을 벌려놓고 얼렁뚱땅 흐지부지하시는 분이 아니라 확실히 매듭지으시고 확실히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죽으면 영화도 허무하게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겐 허무함이 없습니다. 완전히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두번째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죄를 용납하거나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4-5
예레미야는 바벨론제국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앞일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권력자들은 그의 예언이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하고 자신들의 정권유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때리고 고문하고 가두었습니다.
권력자들에겐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정권유지가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해주실 것이라고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였습니다.
가장 선해야 할 종교지도자들마저도 죄에 빠져 쾌락에 빠져 마귀의 종노릇하며 권력을 쫓고 돈을 탐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세상을 택하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바벨론에 대항하였으며 결국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얼굴을 가리우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우시고 이스라엘을 돌아보지 않으시자 바벨론의 침략과 각종 재해와 전염병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순간부터 죄의 오염에 노출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이 선택하였지만 죄는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죄를 짓도록 유도하시거나 상황을 만드셨다고 오해할 근거를 싹둑 잘라놓았습니다. 
하나님때문에 우리가 죄를 짓는다거나 하나님이 죄의 유발자라는 억지 주장은 본문을 통해 확실히 틀린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어두움은 빛의 반대가 아니라 빛의 부재, 즉 빛이 없음을 말하듯 죄는 하나님의 반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가리워지자 그 즉시 죄는 우리의 왕노릇을 하며 우리를 처절한 나락으로 빠뜨렸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유혹에 노출되어있으며 사단은 우리의 약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얼굴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야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단절 타락 상실 회복이라는 반복된 패턴을 인생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통해 보여줍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과 단절되니 더욱 죄를 지어 타락하게 됩니다. 
타락하다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상실하게 되어 비참하게 됩니다. 
그런 우리들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성경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에서 보게됩니다. 
본문 6절은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를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7절은 우리의 잃어버렸던 소유를 다시 찾아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8절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깨끗히 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본문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구원의 은혜를 보여주시는 계시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그 계시의 성취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대속하신 놀라운 비밀을 말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죄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회복되고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상황보다 그 어떠한 죄보다 하나님은 더 크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까지도 바쳐서라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성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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