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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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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792회 작성일 19-02-03 04:29

본문


예레미야 22:13-23
본문의 여호야김왕은 남유다왕국의 말기에 하나님을 거역하였던 악한 자였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에스겔서에도 나옵니다.
에스겔 19:6-7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본문의 여호와김의 평가 또한 동일합니다. 
:17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먼저 본문은 여호와김의 두 눈과 마음에 탐욕이 가득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건전한 욕심이 있는 것은 좋지만 이게 조절이 안돼서 탐욕의 노예가 되버리면 여호아김 같은 괴물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먼저 본문의 여호아김의 아버지 요시야왕에 대해서 알아봐야 합니다.
요시야왕은 남유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아들들을 산채로 불태워 바알에게 바치던 아버지 므낫세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아 왕이 된 후 유다왕국의 모든 이방 산당을 제거하고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복구하고 예배를 회복시킨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궁전은 외적의 침입으로 손상되고 누추하였지만 자신의 집을 세우고 꾸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백성들이 요시야왕을 존경하고 지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아김은 아버지 요시야왕과는 달리 탐욕과 허영 덩어리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나라 사정과는 상관없이 백향목 같은 비싼 재료로 사치스러운 궁궐을 짓는 대공사를 시작했습니다. 
:13-14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
어려운 나라 사정은 생각하지않고 무리한 공사를 하는 것도 괘씸한데 백성들을 동원하고 임금을 주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아김은 크고 사치러운 궁궐을 지으면 백성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우러러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문 15절에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라고 여호와김에게 묻습니다.
탐욕으로 크고 사치스러운 궁궐을 지었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그를 싫어하고 요시야왕처럼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크고 웅장한 백향목 궁궐을 지었어도 여호아김은 아버지 요시아왕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15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본문은 요시아왕이 형통하였다고 표현합니다.
진정한 왕의 자격은 백향목 궁궐이 아니라 형통에 달렸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형통함의 원어의 표현으로 기쁨 또는 잘됨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형통함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형통한 삶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먹거나 마시지 않았는가?"
먼저 요시야는 잘먹고 잘 마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요 행복입니다. 
초라한 궁궐이었지만 산해진미는 없었지만 요시야는 비록 없는 반찬에도 잘먹고 잘마셨습니다. 
먹을 것이 하늘높이 쌓여도 속병이 있으면 쳐다보기도 싫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시야에게 건강의 복을 주셔서 잘먹고 잘 마시게 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요시야의 형통함입니다.
여호아김의 번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지만 요시야의 잘먹고 잘마시는 소소한 행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할수록 의롭고 거룩하게 여기신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지나친 게으름이나 자기파괴적인 습관과 중독들로 인해 가난한 경우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잠언 30장의 아굴의 기도인 나를 너무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하게도 마옵소서라는 구절을 기억합니다.
성경은 가난하다고 다 의롭고 부하다고해서 다 불의하다는 이분법적 논리를 가지지 않습니다. 
요시야에게 주셨던 잘먹고 잘 마시는 형통함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성도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를 통해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잘먹고 잘마시는 형통함을 구하되 거기에 멈춰서는 안됩니다. 
잘먹고 잘마시기 전에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15절 "정의와 공의를 행함"입니다.
잘먹고 잘마시기 위해 형통함을 구하되 정의와 공의를 지키는 선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조금더 잘먹고 좀더 비싼 거 마시기위해 정의와 공의를 어긴다면 그것은 바로 탐욕입니다.
본문의 여호와김이 나라 형편에 맞는 적당한 궁궐을 자기돈으로 짓는다면 그것은 형통함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수에 넘는 궁궐을 백성들의 임금을 착취하며 지었기에 탐욕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와 공의를 구하며 그 선안에서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와 행복을 추구합시다. 
순서가 바뀌면 안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 다음 우리의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잘먹고 잘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첫번째 형통함입니다.  

두번째 형통함은 나눔이었습니다.
:16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변호하고" 는 그들의 편이 되어 돕는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돕는 사람을 형통한자라고 합니다. 
요시야왕은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인해 어려운 나라재정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복지에 힘을 썼습니다. 
요시야왕은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실 것을 믿었기에 이러한 과감한 복지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요시야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요시야를 형통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요시야의 믿음을 본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돈이 차고 넘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오히려 빠듯하고 없는 사람들이 더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느정도 벌어 여유생기면 나눠야지 마음먹으면 평생 마음으로만 끝나고 거기에는 형통함이 없습니다.
지금 콩 반쪽이 남는다면 지금 나눠야 형통한 사람입니다.
나눔은 돈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즉 하나님을 앎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본문은 나누면 나눌 수록 하나님께서 형통케해주신다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이 없지만 있는 것을 믿음으로 나눌 때, 바로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번째 형통함입니다. 
결론입니다. 
:21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본문의 "평안" 이라는 말은 물질적인 번영이라는 원어적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구하는 물질의 복을 뜻합니다. 
그러나 여호아김은 이미 물질의 복을 받았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여호아김은 물질의 번영을 있었지만 형통함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요시야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형통하게 됩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여호아김처럼 듣지 않는 것도 쌓이고 쌓여 습관이 되면 더욱 듣기 힘들게 됩니다. 
반대로 요시야처럼 듣는 것이 습관이 되면 더욱 듣게 됩니다. 
다른 것이 형통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형통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형통함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습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받아 의롭다하심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직도 죄의 습관은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그 습관들 중에 가장 악한 습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습관입니다.
이 습관의 특징이 다른 나쁜 습관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습관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나쁜 습관들이 없어지고 좋은 습관들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얻어 구원을 받았지만 이제는 형통함을 얻어야 합니다. 
형통함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습관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습관 자체가 가장 큰 형통함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하루 한장 아니 어렵다면 하루 한절이라도 성경말씀을 읽는 습관을 만드십시오. 
여러분 인생의 작은 변화는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형통함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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