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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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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033회 작성일 18-06-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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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1편 1-8절
 
오늘 본문인 시편 101편은 다윗이 기록한 것으로 그 기록 시기가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다윗은 이 시를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있을 때, 혹은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 온 후에 기록했다고 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은 후 처음에는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만의 왕이 되었습니다(삼하2:4). 칠 년 반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삼하5:1~4). 그러고 나서 다윗은 당시 여부스 족이 점령하고 있던 시온 산성을 정복하여 예루살렘, 즉 다윗 성이 되게 했습니다. 그곳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가 된 것이죠(삼하5:6~10).
그러고 나서 곧바로 다윗이 착수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알레유다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일이었습니다(삼하6:1~5). 그런데 운반하는 과정에서 언약궤가 떨어지려고하자 그것을 손으로 잡은 웃샤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운반의 동기와 과정 모두에서 깊은 주의와 두려움없이 대충과 건성으로 이루어진 참사였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말했지요.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삼하 6:8)” 그래서 다윗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지 않고, 오벧에돔의 집에 두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 세 달이 지났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언약궤로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역대상 13장 14절에 “여호와께서 오벧에돔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기쁜 마음으로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다윗을 이번엔 두번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저번에 대충 짐꾼들만 보냈다가 큰 화를 당하였기에 제사장들을 필두로 수많은 인원들이 깨끗이 목욕재계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긴장하며 운반에 임하였습니다.
다윗의 언약궤 사건과 오늘 본문을 보면서 하나님은 도통 알 수 없는 분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인을 한 모세나 다윗을 용서하셨던 한없이 자비로운 분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손으로 막았던 웃샤를 그 자리에서 죽이셨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구원과 은혜의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동시에 두려움과 긴장을 요구하시는 걸까요?
각박한 세상이 날이 갈수록 더욱 각박해져가는 요즈음 근심걱정 없이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좀 살았으면 너무나 좋겠습니다.
한달에 백오십만원만 꼬박꼬박 나오면 다른 욕심없이 하나님만 섬기고 좋은 일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요? 
한달에 몇천 몇억씩 버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게 큰 욕심일까요?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소소한 행복을 왜 몰라주시고 살면서 끊임없이 긴장하게하시고 걱정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시는 걸까요?
우리는 도대체 언제서야 돈 걱정 건강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요?
:1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인자와 정의는 서로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같은 것입니다.
인자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요 정의는 옳지않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자와 정의를 노래할 수 있을까요?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된 아기를 낙태하는 것이 죄일까요? 아닐까요?
강간범의 아기를 평생 껴안고 살아야 하는 피해자의 마음을 생각하면 인자요,
그래도 한 생명인데 아기의 목숨을 지우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 정의입니다.
인간세상 수많은 문제들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지만 결국엔 이 모든 문제들은 인자와 정의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해해야 인자이고 어디까지 엄격해야 정의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해야하는 존재들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가장 큰 문제는 갈등과 고민을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갈등과 고민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갈등과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쾌락을 쫓고 일에 몰두해보지만 그런 것들은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목표가 행복이라면 이것은 인간의 가치를 너무나 짓밟는 처사입니다.
물론 일부러 불행하게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행복이 갈등과 고민이 없는 상태라는 비인간적인 방정식으로부터 벗어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갈등과 고민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의 것이라는 겁니다.
:2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깊은 산에서 방향을 잃은 사람들은 대체로 한 장소를 뱅뱅 맴돌다가 지쳐서 쓰러지고 맙니다.
우리 인간들은 가는 길을 알지 못하면서 물으려고 하지도 않고 구하려하지 않고 계속 걷다가 그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마는 존재들입니다..
왜 날마다 수고로이 일하고 땀흘리지만 왜 우리는 풍족하지 못하고 날마다 돈에 시달려야하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욕심없이 소소하게 살려하지만 왜 이젠 덜컥 몸뚱아리가 말썽을 일으키는가?
행복을 찾아 길을 헤메었지만 아직 행복하지 못하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요 여지껏 왔던 그리고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제 길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뭔가 새로운 길을 찾지 않는 한 나는 지금껏 해왔던대로 계속 제자리를 뱅뱅 맴돌 확률이 백퍼센트 일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근심걱정 없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라는 목표에서 이제는 완전한 길, 완전한 마음이라는 새로운 목표로 방향타를 수정해야 합니다.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이는 틀려도 한참 틀린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사람한테 행복하라고 말하면 뺨부터 맞습니다.
행복이 목표라면 이미 그 인생은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며 뭔가 잘못된 인생입니다.
행복을 찾는 한 결코 행복이라는 곳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3-5 나는 비천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교자들의 행위를 내가 미워하오리니 나는 그 어느 것도 붙들지 아니하리이다
사악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자기의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수많은 악들과 싸워야하는 존재들입니다.
세상은 악과 타협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악과 타협하는 한 행복은 결코 오지않으며 오더라도 결코 머물지 않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자신의 안위와 행복이 목표라는 거대한 악과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이 세상의 수많은 왕들중 하나로 세우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곳, 하나님의 도성의 책임자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고 보호하는 거룩한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 다윗이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고 잠시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법궤를 백성들의 지지도 상승과 여론몰이의 도구로 삼았다가 하나님께 호되게 혼이 났습니다.
:6-8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하나님께 혼이 난 다윗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 나라가 내 것이 아니구나. 이 왕권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셨구나. 
하나님께서 분명한 뜻과 목적을 내게 두셨구나. 이러한 현실 감각이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는 악한 정치꾼들과 비루한 아첨꾼들이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의 공작과 협박을 이겨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많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왕위까지도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악한자들의 힘과 도움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왕위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거룩하심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해 우리의 행복들을 포기해야 하고 심지어 우리의 안위를 포기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유일한 길이요 올바른 방향입니다.
수많은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보다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더 큰 하나님으로 섬기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쫓는 삶은 꼭 다윗처럼 왕이 되어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위해 이웃에게 베풀며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미운 이웃 때문에 손해를 보기도 하고,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하나님의 인자와 정의를 실천하기위해 참고 끝까지 인내하면 이보다 더 큰 왕노릇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가장 얄미운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마음으로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면 그것이 가장 거룩한 일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세상의 진귀한 산해진미와 부귀영화가 가져다 주지 못하는 행복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내가 오늘 한 번 더 참고, 내가 오는 한 번 더 수고하고, 내가 오는 한 번 더 용서하는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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