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 욥기 27:2-11 > 주일오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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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욥기 2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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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2-04 03:17 조회 11,10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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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선을 행하고 의를 지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이며 의무입니다.
씨를 뿌리고 가꾸면 열매를 맺듯 내가 행한 선과 의로 인해 결실을 맺어야 할 것 같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행한 선과 의와 정직함이 내가 받을 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선행을 하고 의롭게 살았지만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이상룡, 허위, 이회영 같은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 자신들의 전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하였으나 그들의 자손들 상당수가 그로인해 아직도 경제적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완용을 비롯한 여러 친일파들의 후손들은 광복 후 미군정 하에서 행정경험과 능력을 인정받아 미군의 보호와 지원하에 승승장구하여 아직도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정의를 찾다가는 정말 얼어죽을 시대입니다. 
선을 추구하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존경은 몰라도 인정은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남이 가지 않는 길, 다수가 택하지 않는 길을 걸었지만 내 선과 의를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속상한 일입니다. 물론 애시당초 댓가를 바라며 선과 정의를 택한다는 그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선과 정의는 그 자체로서만 숭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만은 알아주셔야 하나님이 전부인 우리 신앙인들에겐 그나마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가 행하는 선과 우리가 지킨 정의가 하나님께는 별로 안먹히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예 내치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욥이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선을 행하고 항상 절제하며 언제나 긴장의 끈을 놓지않고 죄짓지않으려고 노심초사 힘들게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얼마나 호되게 고통을 받았는지 지금까지 내가 행한 선과 지켜온 의를 하나님께서 물리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선과 정의를 하나님마저도 이렇게 무시하시는데 왜 우리가 하나뿐인 짧은 인생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살아야 합니까?
마음껏 하고싶은대로 화내고 복수하고 음란하고 방탕하며 원없이 사는 게 덜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인생을 선하게 살고 착하게 산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우리가 생각한만큼 댓가도 보장해주지 않음을 억울하지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착한 사람편이라는 생각도 틀렸다는 것을 우리는 억울하지만 성경말씀을 통해 인정해야 합니다.
착하게 살려고 교회 나왔는데 그럼 이젠 죄짓고 살아야 하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과 의를 귀하게 보시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시집도 장가도 가지않고 밥먹는 날보다 금식하는때가 더 많은 완벽한 신자, 잠자는 시간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더 많은 일생을 바쳐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혼도 안하고 금식하고 기도하고 고행하는 그들의 행동 자체를 귀하게 여기시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선을 행하고 내가 정의를 지켰는데 왜 하나님은 알아주시기는 커녕 나의 공의를 내치시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나의 선과 나의 정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엄마 몰래 꿀단지를 건들다 온 몸에 꿀을 뒤집어쓰고 놀라서 애타게 엄마를 찾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말잘듣는 형과는 달리 아버지에게 반항하여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방탕하게 살다가 거지꼴이 되어 아버지 집의 종이라도 되고파 찾아온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시험장의 감독관 법원의 재판장처럼 우리가 선을 행하면 상주시고 죄를 지으면 벌을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하나님은 전혀 우리의 생각과 같은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꿀을 뒤집어 쓰고 놀라서 우는 아이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어 다친데가 없는지 살피는 눈이 뒤집어진 어머니와 같은 분입니다.
거지꼴을 하고온 아들을 보고 맨발로 달려가 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쪽쪽 입으로 빨고 핥아주는 간절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 하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선을 행하고 정의를 지키는 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어린 아이와 같은 간절함입니다.
 
로마서 3장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과 정의를 기준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과 의를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지구상 가장 선하고 의로운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악 투성이인 범죄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심만 의지하여 구원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을 은혜-선물로 받은 구원 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6장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우리의 선과 정의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의로 구원받았으므로 우리는 죄짓고 막살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로마서 6장은 이에 대해 명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선을 행하고 정의를 지키는 것과 죄를 짓고 방탕하게 사는 것의 선택과 결단은 더이상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위한 결정적인 요인이 나의 정신력이나 도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내 옆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니 말씀과 기도에 소홀히 하다보면 말과 행동으로 죄짓는 일이 생깁니다.
남들도 다 짓는 죄이겠거니 별의미를 두려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루에 두번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연달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안좋은 일이 연달아 두번 생겼습니다.
남들은 징크스니 우연이니 치부하겠지만 저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명한 의미였습니다.
선과 죄악의 문제는 나 개인의 자격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내가 다른 여인을 탐하느냐 정절을 지키느냐의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기쁘게 하느냐의 문제인 것처럼 선악의 문제는 나와 하나님의 관계의 문제인 것입니다.
나의 행동의 결과가 누군가에게 점수로 평가 받는 차원이 아니라
나의 행동의 결과로 인해 누군가가 한없는 기쁨과 최악의 고통을 준다면 
그에따른 동기부여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5.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본문의 욥의 결단처럼 우리도 후회없는 인생,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결단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성령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가 관계의 문제요 소속의 문제입니다.
정의란 무엇일까요? 수많은 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엔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구하였는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듯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바로 정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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