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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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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8-01-21 09:38 조회 13,97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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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고귀한가?
 
욥기 19:25-26
 
1.무조건 내 탓인가?
 
욥의 친구 빌닷은 현재 욥이 겪는 고난은 욥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친구의 주장에 욥은 내가 만약 죄인이라도 왜 이렇게 나만 참혹한 벌을 받는가 묻습니다.
 
:4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
 
6.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
 
욥은 현재 자신의 고난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로써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는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세계관은 별 의미가 없음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인과응보라고 하여 인생은 자신의 행위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너무나 인생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는 죄를 나보다 더 많이 지었는데 왜 저렇게 잘사는가?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억울한가? 
 
라는 등의 수많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입니까?
 
인생의 고난은 그렇다고 우연히 재수없이 다가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욥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고난과 고통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물론 고난과 고통이 없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저주받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가장 아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현재의 고난을 허락하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그러면 남의 탓인가?
 
현재의 고난을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3. ○나의 형제들이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낯선 사람이 되었구나
14. 내 친척은 나를 버렸으며 가까운 친지들은 나를 잊었구나
 
여기서 욥은 자신의 사회적 고립조차 하나님의 역사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욥은 자신을 배신하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원한과 감정을 갖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주권신앙입니다. 
 
모든 것의 원인은 나와 타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생각의 중심이 하나님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할 틈이 없습니다. 
 
 
3. 인생은 복불복인가?
 
17.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그렇다면 욥과 같이 억수로 재수 없는 사람은 고통을 받고 재수 좋은 사람은 평안한가 묻는다면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욥과 같이 똑같이 고통받고 고난받는 사람들입니다.
 
당장 욥처럼 재산을 잃고 가족을 잃고 건강을 잃고 명예와 권력을 잃지는 않았지만 어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외줄타기 광대와 같습니다.
 
두팔엔 세상 모든 부귀와 영화와 명예와 권력을 안고 있지만 두발은 가느다란 외줄에 걸친 천길낭떠러지위에 있는 것이 우리 모든 인간의 똑같은 처지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빈부고저의 다양한 모습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마음은 똑같이 두려워하며 똑같이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4.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대속자는 히브리말로 "가엘"인데 경제적 법적 용어입니다.
 
가엘은 어떤 사람이 빚을 지거나 이로 인해 종살이를 할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토지나 몸값을 주고 건져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25:47~9, 룻2:20, 렘32:6이하)
 
 
 
자유와 생명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을
 
가장 가까운 혈족이 도와주는 속량제도를 일컫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고엘은 반드시 '친족 구속자'(kin~redeemer)의 의미를 가집니다.
 
세상은 다복한 사람과 박복한 사람 두 가지로 나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십니다.
 
욥이 가장 처참하고 비참해졌을 때 비로소 자신의 대속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참으로 인간의 아이러니가 자신의 육신적 정신적 능력이 최저치일 때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더욱 실감하게 되는 영적인 능력이 반등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복은 어느 한순간 무너져내리는 외줄타기 광대의 손에 잡힌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붙잡으시고 절대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강한 손에 있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울고 있습니까?
 
고통 중에 신음하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 인생 최고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바로 대속자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닫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인간이 가지는 가치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영적인 존재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탓하고 타인을 탓하고 자신의 팔자를 탓하는 생각없는 인생에 머물지 맙시다.
 
하나님 중심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다시 해석하고 돌아보는 귀한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자는 많은 것 같지만 너무나 귀하고 소수입니다. 
 
참으로 고귀한 사람이 되기를 멈주치 마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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