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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냐 복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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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7-08-06 09:06 조회 9,7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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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18-23
최근 우리나라의 한 군대 사령관과 그의 아내가 공관병들을 부당하게 대우한 것이 큰 뉴스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 둘은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 봉사하는 장로와 권사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하였습니다.
더욱이 기독교인의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지적하며 기독 신앙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사령관과 아내의 입장에서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공관병들은 가만히 있는데 뺀질뺀질 일 안하는 게으른 공관병들이 엄살부리고 고발했다고 억울해 할 수 있습니다.
확실히 요즘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는 고소고발 및 모함과 조작이 너무나 판을 치고 있어 살벌하기 짝이 없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 사령관과 그의 아내의 행동이 결코 이 사회에서 용납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근무 시간외에도 부당한 노동을 강요하고 10개나 되는 냉장고의 음식들을 버리지 못하고 썩어가는 과일을 공관병에게 던진 그 아내의 모습은 어떤 이유로든 설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보게됩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15장의 총회에서 사도로 정식 임명된 자입니다.
사도로 임명된 자는 따로 직업을 갖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하며 생활비는 성도들의 헌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8절에 바울은 사도로서의 권한을 전혀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18장에 바울은 천막을 짓는 직업으로 의식주를 해결했다고 나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모습은 칭찬만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가 위치한 곳은 그리스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스의 종교지도자들은 따로 돈버는 직업을 갖지 않고 오직 종교활동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문화 또한 영향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하나씩 직업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따로 직업을 가지면서 사도의 직분을 행하는 것이 그들의 눈에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종교지도자라면 뭔가 구별이 되고 뭔가 일반인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생각이 좀더 열리고 넓어지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동시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유인이냐 종이냐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 크리스쳔들은 복음으로 살고 복음 때문에 살고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을 통해 어떻게 사는 것이 껍데기 종교인이 아닌 알맹이 복음전도자의 삶인가 살펴봅시다. 
20절에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에게 바울도 또한 그들처럼 율법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만 율법을 숭상해서가 아니라 율법을 중시해온 유대인들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복음 전도자는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구원하는 생명줄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한다, 아니면 율법을 타파해야한다라는 해묵은 논쟁보다도 율법을 지키든 지키지 않든 그 사람의 영혼이 먼저다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얻기 위해서 당장 그사람의 율법관을 존중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받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에 역사하시면 그가 율법이나 문화보다 복음이 더 우선임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22 절에 바울은 약한 자에게는 자신도 약한 자가 되어 준다고 합니다. 
바로 복음을 위하여 사람의 약점을 감당하는 자가 복음 전도자인 것입니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이론과 지식과 배움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론과 지식과 배움은 어느 정도 깨달음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질적인 변화는 이끌 수 없습니다. 
사람의 본질적인 변화는 타인의 희생에 의해서만 생길 수 있습니다.
나의 약함을 용납해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비록 내가 당장은 깨닫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나의 약함을 용납해주는 사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약한 나를 용납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인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면서 자신의 기준을 버리지 못하고 사람을 판단하고 구분하며 정죄한다면 이미 복음은 그 출발선상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바로 복음은 설득이 아니라 감동인 것입니다. 
22절에 바울은 여러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지 여러 모습이면 안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은 복음에 대해 한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전도라는 일관된 한가지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외것은 다 도구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복음전도자는 복음을 가장 앞세우는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도라고 여기든 안여기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복음 보다 복음 아닌 것을 더 앞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령관이든 사령관 부인이든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관병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정체성이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의 소중함을 모르면 자꾸만 복음 아닌 것에 목숨을 걸려고 하게 됩니다. 
복음을 믿으려면 복음 이외의 것을 필요한 상황이라면 모두다 포기할 수 있어야 복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의 한 부자청년이 어떻게 해야 영생얻고 구원받을까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모든 재산을 다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 부자청년은 겉으로는 영생구원에 대해 고민하며 사모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으로는 그가 가진 재산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음을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궤뚫은 것입니다. 
결론
수많은 상담가들과 종교지도자들과 철학자들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가 수많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죄의 종인 인간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어하며 영생을 얻어야 행복이든 뭐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행복은 영생을 주는 복음에 달려있고 인간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복음 없는 인생은 앙꼬없는 찐빵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다시 복음 앞에 돌아옵시다. 
우리가 하루하루 일상의 노예가 되어 허무하게 죽는 의미없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눠주는 복음 전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위해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하며 사람의 약함을 용납하며 복음을 가장 앞세우는 진정한 복음 전도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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