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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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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410회 작성일 13-02-2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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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0장


하나님의 약속을 참으로 오랫동안 지키고 살다가 마지막에 도로 나무아비타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도 그런 경우입니다.

아들 이삭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거의다 이루어지기 직전에 최대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당시 헷(히타이트) 족속이 북쪽에서부터 강성하여져서 가나안의 여러 부족들을 쳐부수며 남하하였습

니다.

위기를 느낀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떠나서 남쪽 네게브 땅으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 뿐만이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족속들을 더욱 두려워한 아브라함의 행동으로 그의 인생 행로가 더욱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은 하나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두려움의 원인과 결과와 그에 대한 해답을 본문에서 찾고자 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헷 족속, 세계사 시간에 배운 히타이트 족속은 잔인하고 포악했으며 세력이 강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브라함에게만은 더할나위 없이 친절했습니다.

23장에 사라의 장례할 땅을 찾을 때, 헷 족속은 기꺼이 적합한 명당을 아브라함에게 공짜로 주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마귀 사탄이 우리들을 두렵게 하는데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과장" 과 "속임수" 입니다.

실제 마귀 사탄이 강하긴 강합니다. 지상의 공중 권세를 잡은 자이므로 얼마다 강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 같은 먼지도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강한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시는데 우리가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합시다. 그러면 세상 모든 것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두려워하면, 세상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두번째 마귀 사탄은 두려움을 이용합니다.

:11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바로에게 똑같은 잔꾀를 부렸습니다.

20 장에서도 생소한 그랄 땅의 왕 아비멜렉에게 자기의 아내인 사라를 자신의 누이라 소개하고 바쳤

습니다. 

사람이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사라를 아내라고 말한다해도 어차피 사라도 빼앗길 것이요, 자신도 죽임을 당할 터인데,

차라리 사라는 빼앗겨도 자신은 살고보자는 마음이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이 아내를 빼앗기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8장에서 사라의 태에서 낳은 아이를 통해 큰 나라를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이 아이의 후손 중에서 세상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마귀 사탄은 아브라함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아브라함이 사라를 아비멜렉왕의 첩으로 보내버리면 세상

을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 의 약속은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기발한 마귀 사탄의 계획은 거의 다 이루어질뻔 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두려움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마귀 사탄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만 두려워 합시다. 


세번째, 두려움은 우리에게 수치를 줍니다.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

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물론, 우리는 교만해서는 안되며 낮아지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 같이 낮아져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두려워해서 나를 낮추면 세상은 나를 더욱 짓밟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서 나를 낮추는 것이 진짜 겸손입니다. 

하나님 없는 낮아짐은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보이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때문에 낮아짐은 약한 자 강한 자 모두에게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높여 주십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합시다. 

하나님으로 인해 겸손합시다. 


네번째, 하나님은 단순한 위로자가 아니라 확실한 해결사이십니다.

아브라함의 두려움으로 인한 죄악된 행동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데려간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가 죽으리니 그는 남편이 있는 여자임이라"

아브라함이 스스로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나 사상은 우리 스스로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 조차 하나님의 개입을 몰랐듯이 우리도 깨닫지 못할 뿐,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지시는 하나

님의 개입은 동일하게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위로하시는데 멈추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지금 이순간에도 저와 여러분의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서 적극적

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다섯번째, 하나님은 수치당한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출산하게 하

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일로 아비멜렉의 집의 모든 태를 닫으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 수치당한 우리를 높여주시는 방법은 우리의 권위를 세워주시는 것인데, 특히 우리의 영적

인 권위를 세워주십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아비멜렉왕을 제압하려면 아비멜렉보다 더 많은 군사와 힘을 가지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영적인 권위를 주심으로써 아비멜렉에게 실추된 명예를 확실하게 회복시켜 주

셨습니다.

우리는 돈과 힘으로 상징되는 세상적인 권위를 구해서는 안됩니다. 

돈과 힘을 초월한 하나님의 영적인 권위를 구해야 합니다.

돈과 힘이라는 세상적인 권위와 하나님의 영적인 권위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돈이 아무리 많고, 힘이 아무리 세다한들 생명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권위는 생명을 얻게 합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

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나라 교회들의 명예가 많이 실추되었습니다.

힐링이 주된 화두로 떠오르면서 불교와 천주교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명" 이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권위를 회복하도록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이러
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도록 우리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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