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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아버지와 벨렉의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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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575회 작성일 12-12-19 23:07

본문

창세기 9:18-29

본문의 함은 아버지 노아에게 크나큰 수치를 끼쳤습니다.

그 결과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렸습니다.

어찌보면 이해하기 힘든 구절입니다.

술에 취해 벌거벗은 아버지를 발견하고 다른 두 형제들에게 알린 것이 그렇게나 큰 잘못인가?

그리고 그것이 그토록 큰 잘못일진데 왜 함이 아닌 그의 아들이 저주를 받아야 했는가?

오늘 본문에서 함에게는 다른 두 형제와는 다른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18 에 다른 두 형제와는 달리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22 에도 가나안의 아버지 함라고 별도의 수식어를 붙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함의 아들 가나안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가나안에 여러가지 억측과 무모한 상상들을 대입하는데 이는 성경에 대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창세기 본문이 쓰여지고 읽혀지던 시점은 시간이 훨씬 지난 모세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모세 시대의 관점에서 볼 때, 가나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창세기 17: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출애굽기 13: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상과제는 바로 가나안 땅의 회복이었고, 당시 가나안 사람들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전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지상과제가 있음을 동의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회복하고 정복해야할 가나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막내 야벳의 족보가 가장 먼저 나오는데 간략합니다.

둘째 함의 족보는 상당한 분량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3대 고대문명을 아우르는 주요한 인물들과 지명들이 나옵니다.

특히 10:8-12 을 보십시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구스는 이디오피아사람 즉 아프리카 사람들의 기원인데 그의 아들 니므롯은 희대의 용사로  큰 도시들을 세운 강력한 권력의 소유자였습니다.

특히 그의 거점지역을 바벨론, 즉 "신의 문" 이라고 칭한 것을 볼 때, 니므롯은 그의 세력이 강대해지면서  스스로를 신격화시켰음을 보게됩니다.

이어서 21절부터 셈의 후손들이 나열되는데 특히 중요한 부분은 25절입니다.

:25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에벨의 시대에 세상이 나뉘었다는 말은 사람들이 뿔뿔히 흩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에벨은 그의 큰 아들의 이름을 벨렉 즉 나뉨이라고 지었습니다.

이 때 당시 세상이 나뉘는 사건은 바로 다음 장인 창세기 11 장 바벨의 탑 사건입니다.

창세기 11: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그리하여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는데 

야벳의 후손들은 주로 북쪽 해안지역으로 가서 그리스 유럽 문명을 형성하였고, 

함의 아들 미스라임은 이집트 문명,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함의 아들 가나안은 지금의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셈의 후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아라비아 지역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 에벨의 첫째 아들 벨렉의 후손에 대한 언급이 10장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의문은 다음 11장에서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11:10 절부터 셈의 후손 중에서도 에벨의 첫째 아들 벨렉 계열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10장의 족보들과는 차별점이 있는데 바로 인물들의 나이와 자녀를 낳을 당시의 나이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러한 연령이 나타난 족보는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벨렉의 후손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바벨론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8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벨렉의 4대손 데라의 아들 하란은 갈대아 우르 즉 바벨론 땅에서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본문은 정확한 사인을 밝히지 않았지만,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노아의 홍수 이래로 계속 살아온 바벨론 땅을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는 심경의 변화를 볼 때 데라가 그의 아들 하란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라의 식구들은 목표하던 가나안 땅에 닿지 못하고 바벨론 영토인 하란 땅에서 멈추게 되었고 데라는 거기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주 계획은 여기서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은 벨렉의 자손들이 바벨론 영토의 하란땅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가나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나안 땅은 무엇입니까?

먼저 바로 이 곳 교회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님 모르고 살다가 죄로 멸망당할 인생 중에서 특별히 택하셔서 인도해 내신 곳이 이 곳입니다.

그리고 이 곳 교회는 더이상 가나안 땅으로 불리지 않게되었습니다.

창세기 12:7-8 에 아브라함은 이 곳을 벧엘,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불리게 됩니다.

가나안 땅이 어떤 곳입니까? 낮은 땅, 버려진 땅입니다.

이 지극히 낮은 땅이 이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되었습니다.

두번째 가나안 땅은 전쟁터입니다.

창세기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가족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 내시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지상낙원이 아니라 그 당시 가장 흉악하고 포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습니다.

12: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더구나 기근과 가뭄이 극심한 땅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험하고 힘든 곳으로 인도하셨을까요?

참된 가나안 땅은 어떤 특별한 장소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상낙원이라도 바벨론에서 죄악된 삶 속에 젖어있던 아브라함의 가족들은 그 곳도 또 다른 바벨론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이는 노아의 가족들에게서, 아니 아담의 가족들에게서 이미 보고 배운 것입니다.

참된 가나안 땅은 물리적 장소가 아닌 마음의 상태의 문제입니다.

강력한 적들과 척박한 땅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므로 바벨론적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정화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곳 교회에 오셨습니까?

지상낙원을 찾아서 오셨습니까? 어쩌면 이 곳이 가장 처절하고도 힘든 곳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오셨습니다.

이 곳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땅 벧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있었던 멸망당할 바벨론은 쾌락을 제공해주지만 영생을 줄 수 없습니다.

외롭고 힘든 곳이지만 이 곳 벧엘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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