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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3:1-11절 이후에는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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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9,796회 작성일 12-06-16 13:51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에 제자들을 앞에 놓고 하신 말씀입니다. 마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중요한 행사를 치루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제자 요한은 뒤늦게 이렇게 묘사 했습니다.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느니라”(요13:1)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의미는 비록 내일 아침에 십자를 질 망정 오늘은 사랑했다.

즉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죽으시는 그 순간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심지어 가룟 유다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은 딱하기만 합니다. 이 결정적인 시간에도 그들은 자리다툼을 하고 허영에 들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철부지, 못난 제자들을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런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1. 먼저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이 사랑과 수고와 봉사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 후에는 알리라”고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을 예수님은 아셨고, 예고하셨습니다.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또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핍박을 받고 순교하게 될 것이다” “그 믿음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처럼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름 석자도 쓸 줄 모르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합니다. “이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단다. 그런 줄 알아라” 그리고 돌아가셨습니다. 훌륭한 어머니입니다. 어떤 여자는 한 남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세상 남자는 다 못 믿겠다.”고 말합니다. 몇 사람이나 경험을 했는데 그런 말을 합니까?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보편화라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한 사람을 보고서 다 보았다고 합니다. 한 가지만 보고 다 나쁘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생각과 잣대로 기준 삼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곧 자기를 세 번이나 부인 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를 믿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오늘 뿌리는 씨가 반드시 결실하게 될 것이라고 가을을 믿었습니다. 또 곁에 있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할 것도 뻔히 알고 계시면서 발을 씻기시고 “모두가 깨끗하니라 그러나 다른 이리니라” 그때 예수님께서 감정 때문에 혼돈하셨다면 가룟 유다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다른 제자들까지도 다 나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유다는 가룟유다요, 베드로는 베드로였습니다. 가룟유다 하나 때문에 열한제자들에게 결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신앙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룟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그들 역시 한심한 상태였습니다. 네가 크냐? 내가 크냐? 하며 서로 시기와 욕심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자기들의 자리 다툼 때문에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에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은 몰랐습니다. 아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고 그들을 믿었습니다.


2. 여기에 신앙이 있습니다.

이 신앙은 현재적인 것이 아니고 미래적인 것이었습니다. 미래 지향적인 믿음입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부모들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후에는 반드시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먼 훗날에 제자들이 당신의 뜻을 알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그들의 발을 씻기고 계신 것입니다. 정확히 이제 아홉시간 후에 십자가에 돌아가십니다. 이런 절박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위해 끝까지 봉사하였습니다.

그가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할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한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래도 수제자인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고 끝까지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고 믿으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신앙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서로 믿어야 합니다. 그 마음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3. 우리 서로 끝까지 믿읍시다.

여러분, 이 세상을 탓하지 맙시다. 그 누구도 탓하지 맙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거나 나무라지 말아야 합니다.

묵묵히 내가 할 일을 지금하면 됩니다. 부모의 위치에 있으면 부모 노릇만 잘하고, 자식의 위치에 있으면 자식 노릇만 잘하면 됩니다. 아내는 아내 역할, 남편은 남편 역할만 제대로 잘하면 그 가정은 평안하고 행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이후에는 알 것을 아시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자기 고민으로 옆 사람의 마음까지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란 큰 고민이 있었지만 제자들을 여전히 사랑하셨으며 지금 해야 할 일만 몰두하셨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부탁하고 주님이 하실 일만 하셨을 뿐입니다. 마치 농부가 씨를 심고 가꾸듯이 열심히 일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의 능력에 완전히 위탁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 것이고, 깨달을 것이고, 보답할 것이며 그리고 위하여 순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썩어지는 밀알은 말이 없습니다. 말없이 썩어지는 밀알이 될 때 언젠가 먼 훗날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후에 알리라고 하신 “이후는” 창조적인 시간, 사건적인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풀이하면 네가 십자가에 죽고, 승천하고, 성령강림하면 그때는 알리라는 뜻입니다. 이 복음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죽어가면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아직 희미한 것은 내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기 때문입니다. 깨끗이 죽어지면 이후에는 알 것입니다. 우리는 피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을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순수한 사랑을 합시다. 욕심과 계산이 끼면 정금의 가치가 없습니다. 사랑도 퇴색된 사랑이 되고 맙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 깨달으면 그때는 서로 끝까지 믿고 사랑합시다. “지금은 모르지만 이후에는 알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십자가 뒤에 있는 능력, 십자가 뒤에 있는 놀라운 주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주님의 길을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다” 그토록 제자들을 사랑하고 믿어주신 그 주님을 이제 우리도 알았으니 순교하기까지 충성했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남은 충성을 제대로 다 바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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