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그 힘과 능력(사사기 16:18-22절) > 주일오전예배

본문 바로가기


아까운 그 힘과 능력(사사기 16:18-22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254회 작성일 12-02-18 11:11

본문

 

어느 유머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두 남녀가 서로 멀리서 보고 반한 끝에 러브레터(love letter)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면서 결혼약속까지 주고 받았습니다. 드디어 처음 만나는 날, 여자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남자가 애꾸눈이었던 것입니다. 여자는 “당신이 나를 속였군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했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를 끌어 앉히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속인  적 없습니다. 편지에 분명히 내가 당신을 본 순간 두 눈에 반한 것이 아니라 한눈에 반했다고 하지 않았소!”라고 했답니다. 그 남자의 재치와 지혜를 생각하면 아마 두 사람은 결혼했으리라 추측됩니다. 결혼은 겉 궁합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속궁합이라고 봅니다. 곧 진실이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 궁합이란 서로가 서로를 이해 해 주고 위하고 감싸주는 사랑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삼손은 성별되어 태어난 나실 인이었지만 지혜와 포옹이라는 사랑의 기술이 없어 그저 감정에만 치우쳐 여자를 좋아했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조건 여자만을 사랑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이성적인 사랑에 빠졌습니다. 삼손은 여자들도 자기 마음 같은 줄 알고 일방적으로 사랑하다 세 여인과 연거푸 사랑에 빠졌다가 실패한 후 상처받은 만큼 복수하다 인생을 종친 사람입니다.


1. 세 여인에게 실패한 삼손

삼손은 처음에 딤나 여인을 사랑했습니다. “어디 여자가 없어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이방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느냐”고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처음에는 그 결혼을 말렸습니다.(삿14:3) 그러나 아버지 마노아는 애걸하는 아들을 이기지 못하고 억지로 결혼을 허락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아내의 돈 욕심 때문에 비극만 남겨놓고 삼손의 복수극으로 사랑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여자의 배신에 화가 난 삼손은 여우 300마리의 꼬리에 불을 붙여 블레셋 사람들의 밭을 불태우고(삿15:4절), 나귀 뼈로 1,000명을 죽이고 말았으니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힘을 사사로운 감정으로 엉뚱한 데 사용해 버렸던 것입니다.(삿15:16절) 그 다음에는 가사에서 한 기생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그 사랑은 지속되지 못했고 결국 가사의 성 문짝을 뜯어가지고 어깨에 메고 와 언덕에 팽개치는 복수극을 하므로 두 번째 사랑도 끝냈습니다.(삿16:3절) 그리고 또 다시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고 하는 여인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삿16:4절) “들릴라”라는 이름은 “약한 여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힘세기로 유명한 삼손이 약한 여자에게 허점을 보여 당하고 만 것입니다. 어리석은 삼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삼손이 들릴라에게 눈이 멀었듯 세상에 눈이 멀게 되면 나실 인이란 신분도 망각하게 되고, 영적 자존심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을 비난 할 것만 아닙니다. 우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삼손이 딤나 여인을 사랑한 것이나, 가사의 기생을 사랑한 것이나, 그리고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를 사랑한 것이 하나같이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잘못된 방식의 사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자신의 약점을 돌아볼 줄 아는 신앙적 안목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사의 사명보다 여자 때문에 시간과 열정을 다 낭비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삼손이 사랑했던 그 여인들은 무엇의 대명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쾌락일 수 있습니다.  또 돈일수도, 명예일수도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잘못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단순한 감정 대문에 비극적인 복수극을 벌렸던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만 믿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돌아봄으로서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우리가 해야 할 더 좋은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힘과 능력을 헛된데 낭비하지 맙시다. 보다 더 귀한 곳에 사용하기 위하여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2. 한심스러운 삼손

삼손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힘인데 전혀 다른 곳에 그 힘을 사용하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것이 심히 안타깝습니다. 평상시 놀면서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과 주님을 위해 값지게 헌신하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우리도 삼손과 같은 약점이 있습니다. 삼손을 유난히 이성에 약했습니다. 여자의 사랑에 굶주린 사람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자에 약했던 또 한 명의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빼앗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에게는 자기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는 영적 혜안이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아들이고 회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정적인 삶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귀하게 쓰임 받는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과 날라리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공부하는 학생은 놀 때와 공부할 때를 구분 할 줄 압니다.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이렇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줄 아는 시각을 완전히 상실했던 것입니다. 삼손을 실패의 나락으로 이끈 들릴라는 그리스도인을 향한 세상의 유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끝임 없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길로 가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이성으로, 때로는 명예로, 때로는 우리 마음을 끌 수 있는 다른 어떤 것들로 도전하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약점이 없거나 실수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때때로 실수하고 범죄를 저지를 지라도 곧바로 잘못을 깨닫고 주님 앞에 돌아와 무릎을 꿇는 그런 사람을 주님은 사용하십니다. 약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약점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하셨습니다. 나실인이란 말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삼손이 좋아했던 여인들을 보십시오. 딤나 여인이나, 가사의 기생이나,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나 믿음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여인들입니다. 나실인이 이런 여자들을 좋아했으니 잘 될 리가 없습니다. 가치관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들릴라는 삼손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어둔한 인간이며 나실인으로 거룩한 자존심도 없었습니다. 한심한 삼손은 여자의 겉모습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두 눈을 뽑히고 맙니다.(삿16:21절) 우리는 땅에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썩어질 것 보다는 영원한 것을, 거짓보다는 진실을 보는 영적 눈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한 감정과 욕정 때문에 영의 눈이 어두워지면 안 됩니다. 끝까지 깨닫지 못했던 한심한 삼손이 되면 안 딥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속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비밀을 털어놓고 말았습니다.(삿16:17절) 여러분은 비록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만은 결코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삼손은 나실인의 신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은 그에게서 떠나가 버리셨습니다.(삿16:20절) 하나님은 삼손이 하나님께서 주신 비밀을 말하기 전에는 그의 잘못된 모든 행위를 참아 주셨으나 이제는 스스로 성별의 표를 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그와 함께 하실 아무런 이유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손은 자신의 용맹을 과시했던 가사에서(16:1-3절) 두 눈을 뽑힌 채 동물처럼 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 각자에게 특별히 주신 그 힘과 능력과 지혜를 삼손처럼 헛되게 사용하지 맙시다. 죽어가면서야 깨달았던 한심한 삼손처럼 인생에 드라마를 연출하는 비극적인 주인공들이 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신신당부 드립니다.


3. 이제 하나님을 위해 웁시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 두 눈을 뽑고 놋줄에 매 블레셋 우상의 신전에서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그때 삼손은 억울해서 울었습니다. 아니 후회의 눈물을 삼키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나실인으로서의 거룩한 삶의 자존심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맡겨지는 일들은 천사도 흠모하는 소중한 직분입니다. 구역장과 인도자의 자리, 각 부서의 임원, 성가대원과 교사의 직분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이 거룩한 직분 감당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울 수 있는 신자가 곧 나실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셨다는 것, 나를 부르시고 나에게 거룩한 직책을 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모르고 산다면 우리도 삼손과 같이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배도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예배 약속을 소홀히 여기지 맙시다. 우리는 삼손의 실패와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삼손은 이방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도 이방 여자 때문에 인생 말로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여자를 이용한 마귀의 끈질긴 유혹은 삼손과 같은 위대한 용사도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전후후무한 지혜의 왕 솔로몬도 무너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자신 없으면 요셉처럼 그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술이나 도박, 오락, 음란한 영상물 등이 난무하는 유혹의 장소에는 처음부터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 그런 유혹은 피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입니다. 무슨 일이나 말씀과 신앙을 바탕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나실인으로 불러 힘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힘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물질로, 어떤 분에게는 지혜로, 어떤 분에게는 건강함으로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힘과 능력을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제발 하나님 영광을 위해 바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삼손처럼 세상에 끌려 다니다 비참한 끝을 맞이하는 인생이 되지 맙시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의 중심에 서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약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돈, 이성, 명예 등에 약합니다. 하지만 약점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의 약점을 돌아볼 줄 모르고 그것에 눈이 어두운데 있습니다. 그 약점 부분 때문에 무릎을 꿇고 더욱 더 겸손해진다면 오히려 나의 약점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냉정해져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재점검해 봅시다. 삼손처럼 자기를 배신한 여인들 때문에 분내고 울지 말고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우는 신자들이 됩시다. 시간이 없습니다. 종말을 고하는 인생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썩어질 것, 세상의 헛된 것을 못 가졌다고 발을 동동 구르지 말고 신자가 신자답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가슴 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울어봅시다. 삼손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도 그 길로 가고 있지 않는지 이제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힘과 능력과 지혜를 제대로 사용하고 계십니까? 제발 삼손처럼 헛된데 낭비하지 말고 꼭 사용해야 할 곳에 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모두 소중한 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49건 21 페이지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