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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바울에게 용기를 주었는가?” 행28:11-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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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9,391회 작성일 11-07-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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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대단히 필요합니다. 의욕이 있어야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곧 용기입니다. 결단력도 용기이고 모험도 용기입니다. 그 많은 발견과 발명도 용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이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곳 성도들이 우리의 소식을 듣고 밥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세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15절)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도하다 죄인 아닌 죄수로 압송되어 드디어 로마에 도착하려 합니다. 그가 배에서 내렸을 때 로마교회  교인들이 압비오 광장과 트레스 마을까지 마중 나와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로마까지는 50마일(2백리)이나 떨어진 곳입니다. 당시 기독교 박해시대에 기독교의 최고의 괴수로 지목받고 있는 바울에게 많은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마중 나온 것은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 바울은 아직도 자기가 사랑할 사람들이 있음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군대에 의해 죄수로서 압송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은 로마 여행이 바울의 마지막 길로서 거기서 순교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울도 이미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가질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주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그는 감사하고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사랑을 줄 상대를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랑을 줄 대상을 많이 가지면 그만큼 더 만족하고 일할 의욕이 넘치는 것입니다.

의사이면사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은 병이 나서 영국에 잠시 귀국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를 걱정한 사람들이 “당신의 몸이 약한데도 그 불편한 미개지에 다시 가시렵니까?” 묻자 리빙스턴은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많습니다. 사랑할 수 있고 사랑 할 기회가 있는 곳에 왜 가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은 괴로움을 기뻐 한다”(골1:24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감옥에 앉아 있으면서도 기쁨이 솟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생각만 해도 기쁘고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고후7:4절)고 하였습니다. 환난 중에도 사랑하는 교인들을 생각하면 위로가 되고 기쁨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 위로가 있습니다.

그런 상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쁨과 용기는 더해갑니다. 바울은 박해의 중심지 로마로 들어가며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그곳에도 자기가 사랑할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2. 바울은 로마에도 믿음의 동지들, 마음의 친구들이 있음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당시 바울을 마중 나온 사람들은 생명을 내 놓고 바울의 친구가 되려는 크리스챤들이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고난을 받고, 바울과 함께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잇는 순교의 동무들이었습니다. 역사상 소위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자기의 생애를 바칠만한 큰 꿈, 비전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그들의 앞길을 가르쳐 줄 좋은 스승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친구가 없이 훌륭하게 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의 뛰어난 신학자 슐라이엘마하(schleirmaher)교수는 신학생에게 “교회에 대한 정의를 한 마디로 말씀해 주십시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교회란 전적인 의지의 느낌을 서로 소유한 공동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교회란 서로가 신뢰하고 마음을 주고 서로가 의지하여 힘이 될 수 있는 집단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신뢰와 의지 속에서 바울처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미국 매릴랜드 대학의 린치(James Linch) 박사는 의학자로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뜻이 맞는 가까운 친구들이 있는 사람들이 병도 덜 나고 비교적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의 주장은 생물학적 근거를 두고 하는 말이다.”그는 과학자로서 인간의 건강과 장수의 문제가 마음을 같이하고 서로 돕는 동지 속에서 살 때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전도서 4:9-10절에 행복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한 사람이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면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지금은 여름이라 예화가 적절하지 않을 지 모르겠습니다만 2차 대전때 영웅 마살 원수의 유명한 유머가 있습니다. 부인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것을 보고 불쑥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남편이란 연과 같고 아내는 연 꼬리와 같은거야, 연 꼬리는 연에 꼭 알맞은 크기여야 꼬리의 구실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자 마샬 부인도 지지 않고 “우리의 경우 연 꼬리는 날씬한데 연이 너무 둔해서 잘 날지 못해요”라고 농담을 했답니다. 누가 연이고 꼬리이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연에 어울리고 연에 협조하여 날개의 역할을 해 줄 때 연과 꼬리가 함께 더 높은 창공으로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연과 꼬리가 조화가 되지 못할 때 함께 떨어져 땅에 뒹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정, 사회, 교회에서 모두가 연의 몸통이 되려고 하고 연 꼬리가 되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스페어타이어처럼 때가 오면 보충의 역할을 담당할 사람, 자원 봉사 소방관처럼 불이 났을 때 그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이 시대에 필요한 진국 크리스찬입니다. 바울은 박해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로마에 목숨을 나눌 친구, 동지들이 있음을 알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3. 바울은 지금까지 진리와 함께 걸어온 보람이 있음을 느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죄수로서 호송되는 중이지만 오래전부터 로마 전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 말해지던 세계의 중심지에서 복음을 증거 할 막중한 일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용기를 솟게 하였습니다. 의미 있는 일을 계획한 사람은 용기를 얻습니다. 보람찬 일을 발견한 사람은 신이 납니다. 삶이 지루하고 권태를 느끼는 것은 밥벌이는 하고 있지만 정말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세상을 살아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날마다 하는 직업생활을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일이다”고 깨닫기 전에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일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의무감으로 하는 자에게는 행복은 없습니다.

일 중독(workaholic)에 걸려 기계처럼 뛰고 멈추지 못하는 자에게 행복은 없습니다. 수입, 액수에 턱걸이하고 욕심을 추종하는 자에게 행복은 없습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일하면서도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사람은 일하면서 만족하며 감사합니다. 그런 사람은 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신념을 갖습니다. 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을 일로 표현하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영생을 이런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한다”(요일2:17절)고 했습니다.

누가 영원히 남습니까?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유산은 무엇입니까? 주어진 일을 감사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하루 하루의 작업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로마 교인들이 200 리나 되는 압비온 광장까지 늙은 죄수를 목숨을 걸고 마중 나온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바울은 첫째 여기에도 내가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둘째 위험하고 황무지 같은 새 선교지에 왔지만 여기에도 나와 뜻을 함께 하고 협조할 복음의 친구들이 있음을 알고 감사했으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기적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보람찬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용기를 얻었던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의 삶속에도 바울사도 처럼 이러한 감사와 용기가 솟아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서로가 의욕과 용기를 불러 일으켜 줄 수 있는 그러한 신앙의 동지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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