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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뭐길래” 막7:24-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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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9,334회 작성일 11-05-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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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나는 어버이 주일을 맞이할 때 마다 씁쓸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국가에서 어린이 주일이나 스승의 날을 제정한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나 구태여 어버이 주일을 정하여 지키자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평상시 어버이에 대한 효도가 얼마나 소홀했는가를 스스로 자인(自認)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찌 365일중 특별히 하루만 어버이날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루만이라도 어버이 은혜를 되돌아보며 못다 한 효성심을 가져보고 또 특별한 효도 행위를 해 보자는 것은 그 나마라도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1. 사실 효도는 의무가 아니라 자식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은혜를 갚아야 할 일이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 마는 내 육신의 생명을 낳아주시고, 키워주시고, 돌보아주신 부모님의 은혜와 사랑보다 더 큰 은혜가 인간 세상에 어디에 있겠습니까? T. V 프로그램에 동물 농장에서 어떤 사람이 개를 밤에도 껴안고 자고, 외출할 때도 데리고 가며, 개밥도 정성껏 준비하여 먹여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강아지 한 마리에게 그처럼 지극 정성을 다 쏟았을까요? 이유인 즉 자기 가족이 잠잘 때 화재가 나서 다 죽게 되었는데 그 개가 마구 짖어대고 창문을 긁어 잠을 깨워서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각 해 보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 개가 아니었으면 가족 모두 죽었을 것이니 아무리 짐승이지만 고마움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면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어떤 분들입니까? 우리의 생명을 몇 번이나 구해 주셨습니까? 배고파 죽겠을 때 누가 먹여 주었을까요? 병들어 고통당할 때 누가 돌보아 주었을까요? 부모님 아니면 사고 당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한 두 번은 다 있었을 것입니다. 한번 화재 속에서 구해 준 개에게는 그처럼 지극 정성인데 우리 부모님들에게는 얼마나 효도하고 있습니까? 일 년에 한번 제정해 놓고 지키라는 이 어버이날마저 관심 없이 넘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부모님들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한다면 효도에는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효도는 의무가 아니라 자식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나를 도와주었고 사랑했느냐? 는 효도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나를 낳아 주셨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부모님들께 무조건 효도해야 하고 또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부모님들에게 자식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폼페이가 화산 폭발로 매몰된 것은 AD 70년의 일이었습니다. 그 후 1,600년이 훨씬 지나서 1738년 남 이탈리아 캄파니아에 있는 폼페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발굴 단원들이 발굴 작업 도중 눈물겨운 화석(化石)을 발견하고 잠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그것은 화산 폭발로 이글거리는 불덩이 속에서도 자식이 뭐 길래 오른팔에 아기를 꼭 껴안고 죽은 어머니와 아이의 화석 때문이었답니다. 도시 전체가 용암으로 덮여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을 때 그 어머니의 마지막 관심사는 오직 아이였음을 증명하여 주고 있는 화석(化石)이었습니다. 이 화석을 보고 어느 누군가가 그 밑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 떨어지지 아니하고”(고전13:8) 여러분, 화재 속에서 생명을 구해 준 강아지도 고맙겠지만 우리의 부모님들은 화석이 되어버린 그 어머니처럼 우리를 그 이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생각 해 봅시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이방지역인 두로 지방에 가셔서 아무도 모르게 좀 쉬려고 했을 때 어떻게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한 여인이 갑자기 찾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귀신들린 자기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절) 고 냉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모욕(侮辱)스런 말입니까? 서양에서는 사람을 개 취급하는 것이 가장 수치스런 모욕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가장 고약한 욕이 “son of bitch"(암캐 자식, 음란한 개자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모욕스런 언사를 들은 이 여인은 얼마나 불쾌하고 분노가 치밀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여인은 자식이 뭐 길래…….! 오직 자식의 병을 고칠 욕심에 예수님의 말에 조금도 불쾌해 하지 않고“주여 옳소이다 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8절) 더욱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러한 이 어머니의 사랑 앞에 오히려 예수님께서 감동 받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돌아가라 귀신이 내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이 여인은 쏜살같이 “집에 돌아간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30절) 고 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자기 생명처럼 여겼던 어머니의 사랑이 그 아이의 병을 이처럼 깨끗하게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님은  이처럼 자식을 위하여서는 어떠한 모욕도 달게 참을 수 있고 어떤 비굴한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뭐 길래” 이것이 부모님들의 사랑입니다. 부모님들의 자식 사랑은 눈을 감아도 자식을 가슴에 끌어안고 가는 것입니다. 폼페이의 화석처럼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 사랑”이 부모님들의 자식 사랑입니다.


3. 불효는 하나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열 계명을 주시면서 사람과 사람이 지켜야 할 첫째 번 계명은 부모 공경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십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절) 또 신약성경 에베소서 6:2-3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서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도 좋으셔서 땅에서 우리가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내가 복 받고 행복해 지는 비결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인데 그 도리를 행하면 복은 바로 내가 받습니다. 위로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고, 부모님은 효도하는 자식들을 더욱 사랑해서 기도해 줄 것이고,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배운 대로 내 자식들이 또 그처럼 나에게 효도한 것이니 부모님들을 공경하면 나는 몇 갑절로 축복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해야 부모님들도 좋고, 나도 좋고, 후손들도 좋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효도하므로 넘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경에 효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을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7절) 아비를 조롱한다는 것은 앞에서는 하는 체 하고 뒤에서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부모를 업수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식에게는 좋은 일 보다는 마귀에게 당하는 고약한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 잠언서 1:7-9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자식의 근본이거늘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 자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뺀질거리고 제 잘난 멋에 사는 사람은 실상은 미련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훈계를 바로 듣고 ,어머니의 법을 따르면 영광을 얻고 (머리에 아름다운 관) 마음에 보람과 기쁨(목에 금 사슬)이 넘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불효는 하나님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질서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세상이 되려면 먼저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윗사람들을 공경하고 순종할 리 없습니다. 더욱 눈에 보이는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불순종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부모가 잘났건 못 났건 부모님을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권위를 무시하고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을 대단히 미워합니다.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절) 고 하셨습니다. 가정의 권위나 국가의 권위나 교회에서의 권위나 다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순리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질서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4. 그러면 부모님들에게 어떻게 효도해야 합니까?

“마음의 근심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절) 고 했습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니라”(잠23:25-26절) 부모님은 어떻게든지 즐겁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비싼 별미 음식 한번 대접하고, 고가의 의복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언제나 부모님들이 진정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서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가장 귀한 효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걱정하고 계십니다.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잠30:11절) 행여 돌아가셨거나 살아계신 부모님들에게 불만이나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까?

그 생각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지 않기를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런 무리가 있다고 분명히 걱정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을 사랑하시되 영혼까지 사랑하시여 꼭 예수 믿고 돌아가게 하십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제대로 효도하지 못해 가슴 아프십니까? 최선을 다하여 공경하되 마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부모님들을 즐겁고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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