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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은 사람(고전15:8-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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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1,266회 작성일 11-04-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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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까지 2회에 걸쳐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에 관하여 함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결론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확신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 번째 단계요, 동시에 마지막 단계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얼마나 사랑하신다고 했습니까?

(1)끝없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2)끝까지 책임져 주신다고 했습니다.

시편 121편의 내용을 통하여 ①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나를 지켜 주시고 ②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를 지켜 주십니다.(민9:21-23절)

③또 영혼까지 지켜주시며 나의 출입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시121:7-8절)

(3)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십니다.(요15:18-19절)

(4) 하나님께서는 모든 싸움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주십니다.(요16:20절)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며 또 앞으로도 영원히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감사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 고향의 나 아는 사람은 애지중지 돌보아 주었던 엘크 사슴에게 받쳐 죽었습니다. 저희 장모님도 소 여물을 주다가 황소에게 허리를 받쳐 큰 고생을 하셨던 일이 기억합니다. 그런 점이 사람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6:1)고 경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 은혜 안에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자발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과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크신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는 거부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선택과 넘치는 사랑으로 죄인을 구속(救贖)하신 하나님의 역사(役事)입니다.


1.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위기를 만나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대 홍수의 위기를 통과하였습니다. 한나는 서원기도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불임녀의 고통을 이기고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병들어 죽게 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죽음의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성경은 대홍수 때의 상황이 어떠했다고 했습니까?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라 하시니라”(창6:5-7절까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노아가 살아 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는 온 세상이 대홍수로 멸망하는 자리에서 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가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노아처럼 언제 어떤 고난과 위험이 닥쳐와도 노아처럼 죽음의 위기를 통과하고 구원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받은 것을 믿으십니까? 어떤 위기를 만나도 승리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바울 사도를 생각 해 봅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에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바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점점 겸손해 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원래 사울이라는 이름은 “큰 자”란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후에 “작은 자”라는 뜻을 가진 바울로 바뀝니다. 그는 삶의 과정 속에서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고백합니다. 그가 고백한 내용을 잘 살펴보면 점점 더 작은 자로, 낮은 자로, 겸손한 자로 성숙해 져 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전15:8-10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라고 고백합니다. 동시에 그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은 수고를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드디어 그는 “사울”이란 이름을 버리고 “바울”이란 이름으로 개명한 것처럼 “큰 자”가 아니라 “작은 자” 로 살아가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다음 에베소서 3:7-9절에 보면 바울은 감히 사도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최상급과 비교급을 동시에 사용하여 자기를 최대한 낮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에게 가장 큰 은혜를 베푸신 목적을 깨닫습니다. 즉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사명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인생의 노년기에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딤전1:12-15절)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감히 자신을 사도와 성도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깨닫습니다.

또한 그는 과거의 자신을 “훼방 자, 핍박 자, 포행 자”로 소개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는 말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그는 세월이 지날수록 “작은 자”를 의미하는 바울이란 이름처럼 더 작은 로, 더 겸손한 자로 영적 성숙이 이루어져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겸손해 지는 바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결과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무언가 달라져야 합니다.

성령의 불을 체험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냉랭하다면 누가 성령 받은 사람이라고 인정하겠습니까? 불은 뜨겁습니다. 열은 운동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성령 받은 사람 곁에 있으면 저절로 뜨거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부지런해집니다. 전도운동이나 봉사활동에 열심이 생깁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이렇게 자신도 변하고 남도 변화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야 합니다.(고전15:10) 바울처럼 변해야 합니다. 성령이 아홉 가지 열매가 맺혀져야 합니다. 혹시 나는 아직 은혜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3.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고후6:1-2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은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합시다. 은혜의 맛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은혜를 받고 저 사모합니다. 사랑의 맛을 아는 사람은 더욱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그래서 사랑 받은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범사에 때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유혹할 때에 “하지 말라”고 제지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에 “내일부터 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결단할 때는 바로 “지금부터, 여기서부터”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고, 또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토록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큰 사랑을 받은 우리는 범사에 더욱 감사하고 계속하여 더 많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받은 은혜가 크다면 앞으로 더 많은 은혜를 받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절대로 이 은혜 받는 일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당연히 실패해야 했지만 역(逆)으로 우리에게 신앙적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임금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밤 당장 다윗 진영을 공격하자는 아히도벨의 계략을 듣지 않은 결과였습니다.(삼하17:1-3절) 압살롬 진영의 장수들은 내일 공격하자는 다윗임금의 친구 후새의 교란 작전에 말려들어 결정적 시기를 놓치고 말았던 것입니다.(삼하17:7-13절) 그런데 압살롬이 지혜로운 아히도벨의 모략을 버리고, 후새의 계략에 기울어진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 하셨음이더라”(삼하17:14절) 하나님은 은혜를 받을 사람에게는 사모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은혜 받지 못할 사람은 사람을 사귀어도 꼭 은혜를 까먹을 사람만 만납니다. 이상하게 은혜를 가로막고 상처받을 말만 귀에 들립니다. 쓴 약이 양약인 것을 모르고 달콤한 말에 홀딱 넘어갑니다. 하나님은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려고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인 아히도벨의 말을 듣지 못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셔야 합니다. 교회를 부흥시키고 사람을 살리자는 말은 성령의 지시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설령 그럴싸해도 교회에 불이익이 되고, 분열을 책동하는 말은 사단의 유혹임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에 서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은혜 받기 전에는 큰 것만 좋아했습니다. 사단의 편에서 기세가 등등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은혜가 깊어지자 스스로 작은 자라고 낮아졌으며 나중에는 자신이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했지 않았습니까? 은혜를 받으면 깨닫게 됩니다. 겸손해 집니다. 여러분, 제발 오늘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은혜를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어떤 사람이 안 무섭다고 했습니까? “내일 보자”는 사람입니다. “내일 잘 하겠다. 내일 주겠다”는 사람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지금이 은혜 받아야 할 때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를 베풀 때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6:1-2절) 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 받는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이 우리의 날이고 내일은 사단의 날입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빚 갚을 사람은 내일 주겠다고 한 답니다. 순진한 채권자는 철석같이 그 말을 믿고 잔뜩 기대하면서 그 다음날 찾아가면 빚 갚을 사람은 언제 약속했느냐는 듯이 “오늘 왜 왔느냐? 내가 내일 준다”고 했지 않느냐? 고 오히려 야단 친 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헌신 봉사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전도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은혜 받은 사람은 은혜의 맛을 압니다. 사랑받은 사람은 사랑의 맛을 압니다. 오늘은 우리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형제들아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깊이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가슴 복판으로 매일 매일 파고 들어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진 여러분들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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