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서 4:7-12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 > 주일오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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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서 4:7-12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God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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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054회 작성일 11-01-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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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사도요한을 흔히들 사랑의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랑도 유난히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으니 마지막 성만찬(last supper) 모습을 그린 성화에 예수님 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제자가 바로 사도요한입니다. 사도요한은 성경 요한복음과 요한 Ⅰ, Ⅱ, Ⅲ 서를 기록했는데 그 중에 요한 Ⅰ서는 아름답고 귀한 보석 같은 책입니다. 신약 23번째 책으로 5장, 105절로, 불과 여섯 쪽 남짓한 분량으로 한 20여분이면 거뜬히 얽어 버릴 수 있는 짧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짤막한 내용 속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너무도 확실하게 제시 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강조하는 내용은 그러기에 사랑의 하나님, 사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당연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며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본문 8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저주하고 책벌하고 심판하시는 무서운 분이 아니라 용서하고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신이십니다. 요한복음 3:17절에도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우리를 답답해하시면서 탕자의 비유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는 어떤 아들이었습니까?(11절-17절)

①늙은 아버지를 놓아두고 일하기 싫어서 집을 뛰쳐 나간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②아직 미성년자이면서 억지로 떼를 써서 아버지의 재산 중에서 자기의 분깃을 미리 빼앗다시피 하고 가지고 나갔습니다.

③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게 다 써 버렸습니다.

④나중에 흉년이 들어 거지꼴이 된 그 아들은 남의 돼지를 치며 겨우 연명했습니다. 그나마 밥벌이가 안 되어 돼지 밥으로 배를 채우며 살았습니다.

그 탕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고생하시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객지에 나가면 일하지 않아도 일확천금을 얻을 것 같은 허황된 꿈을 꾸었습니다. 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은 재산을 술집 작부들과 놀아나며 모두 탕진해 버린 꿈이 없는 어리석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된 아들이지만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집을 나간 순간부터 동구 밖에서 그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거지 중에 상거지가 되어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고 케 묻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서 새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기고 자식으로 인정하는 가락지를 끼어주었을 뿐 아니라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까지 베풀어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의로움을 주장하는 맏아들보다 눈물로 회개하는 탕자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영국의 에드워드 Ⅶ세(윈저공)와 심프슨 부인의 사랑 이야기를 아십니까? 당시(1936년) 영국은 세계를 지배하던 대영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윈저공은 그처럼 막강한 대제국의 제왕이 된지 8개월 만에 왕관을 던져 버리고 스페인으로 달려가 이혼녀인 왈리스 심프슨 부인과 결혼했습니다. 심프슨 부인은 회고록에 “나는 슬픔이 있을 때마다 에드워드의 희생과 사랑을 생각했다. 나는 잠시라도 슬픔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세상의 몇 명의 여자가 왕관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요?” 라고 감격케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드워드 Ⅶ세의 사랑과 비교도 안 되는 더 놀라운 희생과 낮아짐과 더 높고 넓은 한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사랑해 주신 분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득했기에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그 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기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더 이상 무슨 말로 묘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곧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고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God is love" 하나님은 한마디로 사랑이십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9-10절을 봉독 해 봅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도록 선뜻 내어 주셨겠습니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제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집에 내려왔는데 어머니가 김치에 다 밥 먹는 제 모습을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시며 “나는 네가 김치도 못 먹고 사는 것이 생각나서 김치 한번 맛있게 입에 넣어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신 모습이 떠 올라서 공부하다 졸리면 찬물에 발을 담그고 책을 읽었었습니다. 바로 어제가 그 어머니 3주기어서 고향에 오고 가면서 속으로 많이 흐느꼈습니다. 그 어머니가 천년 만년 사실 줄 알고 목회 그만두면 껴안고 자면서 실컷 효도하고 싶었는데 어머니의 죽음은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석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고, 잔을 나누어 주면서 이것은 내 몸이요, 피니 이것을 먹고 마실 때 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죽을 죄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낮아져 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만큼 참아본 사람, 예수만큼 빼앗겨 본 사람, 예수님만큼 멸시 받아 본 사람, 예수님만큼 고독해 진 사람, 예수님 만큼 고통 받아본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53:5)고 했습니다. “사람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길로 (죽음)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53:6절)고 애절해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안 사람은 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청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요15:9절)고 하십니다.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에 녹아들면 얼마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질 수 있고, 참을 수 있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처럼 어떠한 경우에도 자족(自足)할 수 있고, 가난해도 슬프지 않고, 병들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어떠한 실패에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죄와 사망의 몸에서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의 어떤 것도 아까워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그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다 안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요15:9-11절)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길 때 가장 행복한 것처럼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최고의 행복 자들이 다 됩시다. 그래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이 증거 되게 합시다.


3. 세 번째 요한 Ⅰ서는 우리에게도 사랑의 실천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난 사람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12절) 했습니다. 요일 4:6절에는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합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어찌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20절)고 꼬집어 훈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지 않는다고 요한 서신은 확실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울 사도를 통하여 “천사의 말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시끄러운 꽹과리 같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말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전13:1-2절) 그러니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강조했습니다.(고전13:13절) 바울사도를 통하여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거된다고 했습니까?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고, 시기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예수님)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절)고 했습니다. 가스통에 가스가 있으면 코크를 열면 가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가스가 새어나옵니다. 그것에 불을 댕기면 화염이 솟구칩니다. 우리 속에 사랑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면 사랑이 넘쳐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불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고 거듭거듭 강조했습니다. 산이 좋은 사람은 산에 가고, 꽃이 좋은 사람은 꽃밭에 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몸 된 교회를 가까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몸에서 사랑의 향기가 풍겨 나옵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향기가 풍겨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그 향기는 남을 기쁘게 하고,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어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죽을 사람이 살아나는 신통력 있는 다이돌핀입니다. 여러 가지 사회 경제 문제로 시들시들한 이 세상에 새 생명의 활력소를 불어 넣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크리스챤의 몫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생명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먹어야 삽니다. 그 사랑을 호흡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사랑의 기운이 가득하게 합시다. 해가 뜨면 어두움이 사라지듯 사랑의 아지랑이가 피어나면 슬픔과 근심과 걱정 등 죽음의 그늘이 걷히고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따뜻한 새 봄이 옵니다. 우리 금년에는 우리로 하여금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고 활력이 넘치는 가정을 만듭시다. 그런 일터와 직장과 사회를 만듭시다. 영적 충전소인 교회가 더 많은 생명의 에너지를 생산해 내게 합시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이신 하나님과 연결만 되면 휠라멘트에 빛이 밝혀지듯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세계만방을 환하고 훈훈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밝히기 위해서 우리 촛농처럼 좀 녹아봅시다. 전등의 휠라멘트처럼 기꺼이 참고 견디고 희생 해 봅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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