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고후2:12-16) > 주일오전예배

본문 바로가기


그리스도인의 삶(고후2:12-16)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200회 작성일 10-08-28 13:50

본문

 

예수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얼굴 모습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몸매를 보면 압니까? 말소리로 구별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평상시 생활 모습을 보아 구별할 수 있습니까? 성경책 끼고 교회 가는 것으로 구별됩니까? 그것만 가지고도 알 수 없습니다. 교인 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까?


1. 도전 정신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에서 바울사도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내 힘, 내 능력으로가 아니라 마귀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은 그리스도의 도움으로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의 구주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은 원어인 헬라어로 파라크레토스(παλακλήΤος)로 곁에서 항상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의 보증자란 뜻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란 그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능력의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고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경찰관하고 소방관이 싸우면 누가 이긴다고 했지요? 소방관 소경이 싸우면 누가 이깁니까? 그러면 소경과 노인이 싸우면 이기겠습니까? 노인이 이깁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죽을 것 붙어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노인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믿는 언덕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시므로 두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신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일성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제일 무서워했답니다. 그래서 남한에 기독교가 더 확산될수록 무력통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쟁준비에만 몰두하다 오늘날 세계에서 극빈국도가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좌절과 절망이 없습니다. 그 어느 것도 무서 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있는 것입니다.

옛 동양속담에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배 팔아 말을 산다면 바다를 누가 정복하겠습니까? 나중에 말을 타다 발을 다치면 그 다음에 말을 팔아 무엇을 사겠습니까? 풍파를 만날수록 더 큰 배를 만들어 바다에 도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왜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까?

쳐다보아야 방법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아무리 높은 곳도 올라갑니다. 사다리도 있고, 복음 스카이도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도전정신이 없다면 달나라에 어떻게 갈 수 있었겠습니까? 어려움과 실패 앞에서 계속 도전하는 사람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일찍이 기독교 사상이 들어간 서구 사람들의 적극적 사고와 보수적인 동양 사람들의 사고의 차이가 오늘날 동서양의 문명 차이를 가져왔음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서양의 문학작품을 보세요. “로빈슨 크루소”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표류와 온갖 고통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고향에 돌아와 하는 말이 “나는 뱃사람이니 다시 배를 타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도전정신입니다. 성경도 잠언서에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잠24:16)고 했지 않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성공을 그리며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항해에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배가 풍랑에 파선되면 더 큰 배를 만들면 됩니다. 삼호 조선소에 가서 큰 배를 보았습니다. 폭이 50m, 길이가 150m 되는 유조선은 태평양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도 끄떡없답니다. 우리는 교인으로 멈추지 말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지더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 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7:8)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의연하여 흔들리지 말고 당당 합시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또 범사에 도전합시다.

2. 그리스도인의 삶은 냄새가 다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한다고 했습니다.(14절) 사람은 모두 겉모양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가까이 하고 싶고 함께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에게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기거나 포근하고 훈훈한 인간미가 맛있는 음식 맛처럼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외모는 꾸미지만 제 잘난 맛에 살며 남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헤어지고 나면 씁쓸한 뒷맛을 남게 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남이 하지 않으려고 기피하는 일도  서슴치 않고 앞장서서 묵묵히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게서 풍겨나는 땀 냄새는 고급화장품 냄새보다 향기롭습니다. 외모만 꾸미는 여자의 화장품 냄새보다 땀 냄새가 더 향기로운 것입니다. 장미꽃은 장미 향기를 풍기고, 국화꽃은 국화 향기를 풍기듯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 사람은 자연히 예수 향기를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장식해도 된장을 먹은 사람에게 된장냄새가 나고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어도 마늘을 먹은 사람은 마늘 냄새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서 좋은 냄새를 기대할 수 없고, 담배 골초에게 향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화가 아름다워도 벌 나비가 찾아오지 않습니다. 주의 일을 하다 약간 지치고 피곤하여 시들은 꽃같이 되었어도 그래도 그곳에 성령님은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조화 같은 크리스챤이 되지 말고 생화 같은 크리스챤이 됩시다. 우리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크리스챤의 삶은 그래서 항상 생동감이 있고 예수의 향기를 풍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자가 됩니다.

14절에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그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천국이요, 다른 한 곳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아이작 윌튼) 또 죤 헨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라고 했습니다. 칼 휠티는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했습니다. 일본의 후지다는 “하루에 일만 번씩만 감사하면 못 고칠 병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26,000개라고 하는데 그 중에 다른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단어가 “감사합니다” 라는 단어랍니다.

여러분! 곁에 사람이 꼬라지 내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 사람이 기뻐하면 여러분도 덩달아 기뻐지지요. 남을 기쁘게 해 주는 “감사합니다”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저절로 기뻐지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에 계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에너지가 발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역사 창조자들은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감사의 에너지만 잘 활용하면 어떤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 항상 젊어지고 행복을 창조하면서 삽니다. 여러분은 그토록 강한 힘을 발휘하는 에너지를 소유한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 박집사님은 전화수리공인데 교회 일에 헌신하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분으로 소문났습니다. 그런데 비 오는 날 전화 수리를 하다 전선주에서 떨어져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은근히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셨다면 왜 그때 하필 번갯불에 감전되게 하셨단 말인가? 그런데 병원에서 치료 받던 중 갑자기 지난 주 목사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설교가 생각나서 벌떡 일어나 “하나님 전류가 몸을 통과하지 않고 다리로 빠져 나간 것을 감사합니다”하고 감사의 기도를 했답니다.

그때 간호사가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환자가 일어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병이 나은 후에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비 올 때 다른 요원이 꺼려하는 일에도 자진하여 전선주에 올라갔고 더 열심히 일했더니 어느 날 “모범공무원”에 추천되어 표창 받고 집이 없었는데 금융혜택을 주어 집까지 장만했다는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의 에너지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끌어내리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감사의 에너지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펭귄은 날개를 사용하지 않아서 날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입니다. 감사의 에너지를 가지고도 사용하지 않으면 이처럼 능력 없는 크리스챤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의 에너지를 충분히 사용하여 새 역사 창조의 주역들이 됩니다. 이러한 생활이 크리스챤의 삶입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이기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게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47건 26 페이지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