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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잘 되자(고전12:12-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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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9,554회 작성일 10-07-1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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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린도전서는 A. D 55-57년 사이에 바울사도가 에베소에 머물면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에베소와 고린도는 약50km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과 악행에 관한 소식을 듣고 여러 번 책망했습니다.(고전1:11-13, 5:5,13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아 직접 방문하여 책망했으나 성과가 없어 근심하며 돌아왔습니다.(고후2:1,5) 그 후 마케도냐로 갔고(고후2:12-13) 그 후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인들이 악행을 회개하고 다시 바울을 사모한다는 고무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고후7:6-16절) 우리도 우리 교회가 잘 나간다는 소문이 나게 합시다. 그러나 바울을 불안하게 한 것은 지도자들이 헛소문을 퍼트려 교인들을 유혹하는 거짓교사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하여 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봉독한 12장 말씀은 구원 받은 우리는 이제 마귀가 끄는 대로 끌려 다니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전12:2-3절) 그러므로 각 사람이 받은 은사는 다르나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니(고전12:11절) 너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며 각 사람이 그의 지체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라고 해도 너희는 한 몸의 지체이니 서로 분리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만일 발이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서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15절)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해서 어찌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겠느냐? 고 힐책하면서 자기의 역할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며 떨어져 나가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며 또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은연 중 역설(力說)했습니다. 또 어떤 지체도 쓸모없는 지체는 없고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더 요긴하다고 했습니다.(22절) 그렇습니다. 어떤 지체도, 어떤 역할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1. 교회 내에서 자신의 소중함을 아시기 바랍니다.

심방하다 보면 연노하신 분들이 우리는 교회에서 별 쓸모가 없고 짐만 되는 것 같아 죄송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교역자들은 마음이 너무도 아픕니다. 백발노인이라도 예배에 참석하여 앉아 있기만 해도 얼마나 뿌듯하고 힘이 나는 지 여러분은 모르십니다. 또 그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교회가 있다는 것도 젊은 분들은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백발 앞에서 머리를 숙이라”고 했고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잠16:31) 교역자들은 다리가 아파도 절룩거리며 교회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을 보면 너무나 고맙고 기뻐서 가슴이 울렁인답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분들이 어떻게 비올 때나 눈이 올 때 예배당까지 오시겠습니까?

오셔서 자리에 앉아 계시는 그 자체가 교회라는 몸의 눈이나 귀 같은 역할이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시키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까지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남에게 상처를 주지 마시고, 또 상처도 받지 마세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어제 오셨던, 오늘 오셨던 모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자녀들이십니다.

또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몸 깨뜨려 세우신 이 교회에 절대 필요한 지체이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손 역할, 눈 역할을 한다고 해서 행세하려고 하지 말고 나는 발톱이나 콧털 같은 존재도 못된다고 생각하여 어리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와 신학을 같이 했던 윤병렬 목사는 콧털이 귀찮다고 다 뽑아 버렸는데 그 코로 균이 들어가 뇌 손상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콧털 역할도 이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 분 한분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믿으시기고 항상 자신 있게, 기쁘게,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기쁘게 사는 것이 모두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여러분 한 사람이 잘 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잘 됩시다. 서로 서로 사랑합시다.


2. 여러분 지금 나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옛날 중국 한 나라 때 일입니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연못에 큰 메기 한 마리가 침입했습니다.

그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쫓아 왔습니다. 잉어는 기겁을 하여 헤엄쳐 피하려 했으나 역 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으로 뛰어 올라 지느러미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없이 뛰다보니  십리(4km)가 조금 못 되는 9리 정도까지 도망쳤습니다. 그때 잉어가 뛰는 것을 보기 시작한 한 농부가 달려가 잉어를 잡으면서 “어주구리”(魚走九里:고기가 9리를 달렸다는 뜻) 했답니다. 결국 그 잉어는 농부의 식탁에 찜이 되어 올려졌고 그 잉어의 일생은 그렇게 끝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어주구리”는 하나의 고사성어가 되어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센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어린아이가 자기보다 큰 것을 들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면 “어쭈구리”하고 웃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어쭈구리”라고 말할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저도 지금 그런 일을 하려고 생각하며 속으로 “어쭈구리” 해 봅니다. 설교 때마다 우리 교회는 “요람에서 천국까지” 함께 가는 교회가 되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목회자의 말은 거의 성경말씀 다음으로 믿을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요즈음은 은퇴를 앞두고 그 약속이 생각나서 친구에게 사정 하여 돈을 빌려서 그런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 양노원은 무료 양노원으로 우리 교인 누구나 오셔서 계시거나 쉬어 가는 집으로 사용할 마음을 굳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산수를 몰라 계산은 못합니다. 그러나 저 위엣 분을 믿습니다. 나는 이제는 목회자들까지 “어쭈구리”하는 생각으로 당신도 노인이여 “미친 짓 하지 말라” 충고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도 나는 하루를 하더라도 하다가 죽으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도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은 내 입술을 열어 왜 그 말을 하게 하셨을까?” 하는 의미가 분명히 있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 주위에 안 믿는 사람들까지 저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 자신들이 나는 믿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는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13:5)고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로 따로 살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모여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고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로 기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보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롬8:28) 모두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하고 또 그 힘을 서로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관리인 일뿐입니다. 지체의 원리를 모르면 나도 불행하고 남도 불행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 교회는 건강해야 합니다. 내가 입의 역할을 하던, 눈의 역할을 하던, 발톱의 역할을 하던, 저 유치원생들부터 백발노인들까지 모두 한 지체입니다. 발톱 밑에 비접이 들면 온 몸이 아프듯이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잘못되면 교회 전체에 통증이 옵니다. 우리 모두 함께 기뻐하며 함께 행복하게 삽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신신당부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속을 어떻게 다 압니까? 내 마음에 좀 안 들어도 이해 해보려고 노력합시다. 나와 대적하려고 하여도 내게 무슨 허물이 있지 않나 먼저 자신을 살피고 서로 아끼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그럴 때 나도 편하고 남도 편합니다. 더불어 우리 모두가 행복해 집니다. 그런 사람이 모인 곳을 보시면 하나님은 심히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적극 후원해 주십니다. 옛 성현들께서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려고 노력할 때 어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여러분을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제발 목회자들의 심경을 헤라여 속상하게 하지 마세요. 속이 상하면 속상한 기운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한마디만 책망하면 목사님이 변했다느니, 나쁘다느니 이러쿵저러쿵 해도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고 목회자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은 좋은 마음은 아닙니다. 물론 목회자는 여러분보다 나아야 하고 조심해야 하겠지만 책망도 하고 가르쳐야 하는 사명도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부모와 같다 가도, 어떤 때는 야단치는 교사의 역할도 하고, 아픈 곳을 수술하는 의사의 역할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잘 했다고 토닥거려만 주는 부모는 알고 보면 참 사랑을 하는 부모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도약을 할 때입니다. 등경위에 켜진 등불같이 성장했으니 더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개척교회 때 일한 것보다 더 일을 안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주먹을 불끈 쥐고 이제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일을 만들고 찾아 행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계는 날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단 세력들은 시간마다 왕성해 지고 있는데 교회들은 무엇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고민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크냐?”고 기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어린아이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고전13:11절) 이제 어른다운 교회로 당당히 일합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눈 역할이던, 귀 역할이던, 코털 역할이던, 발톱역할이던 모두가 한 지체이며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 지체 하나도 병들면 모두가 고통스럽습니다. 모두 건강 합시다. 모두 잘 됩시다. 서로 인사합시다. <당신이 잘 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행복이 나의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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