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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체에 나타난 성령님의 역사(시139: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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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9,464회 작성일 10-06-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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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령강림주일을 보내면서 3차에 걸쳐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공부 해 왔습니다. 이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기독교 교리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가 된 줄 믿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은 따로따로 계시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십니다. 또 각각 맡아서 일하는 사역(事役)의 역할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으로 오셨고, 또 예수님의 영이 오순절에 임하셔서 지금도 구원 역사를 하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님이며 예수님이 성령님이고, 성령님이 하나님이십니다. 육을 가진 우리의 사고방식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혼란스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 영이신 하나님은 우주에 편만하시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자유자제로 나타나실 수 있는 것이며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감지(感知)하기 쉽게 접근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굳이 자기에게 나타나고 느껴진 대로 별개의 이름을 짓고 구분하려고 하기 때문에 같은 하나님을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별칭을 하며 어떻게 세 분이 한 하나님이 될 수 있느냐고 산술학적으로 생각하는데서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에디슨 산술학으로 풀면 이해가 빠를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몇이냐?”고 물었더니 끝까지 하나라고 우겼습니다. 선생님은 그러한 에디슨을 바보라고 생각했지만 에디슨도 선생님이 이해가 안됐습니다. 막대기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길이에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이지 왜 둘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능면으로 구분하거나, 양태론적(모양)으로 구분하여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어떤 일을 하셨던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던지 모두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의 역사요, 때로는 말씀으로 때로는 주의 사자(使者)의 모습으로, 때로는 예수님으로, 때로는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성경전체에 나타난 성령님의 역사에 대하여 생각 해 보며 성령론을 총정리 해 봅시다.


1. 성경전체에 나타난 성령님

태초에 누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하나님, 창1:1절) 그때 세상은 어떤 상태였습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 하더라”(2절)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했는데 성경 뉴 아메리칸 스탠다드 (Ne American standard)에 보면 “The spirit of God Was Moving over the surface of waters"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요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무질서의 상태를 질서의 세상으로, 빈곳을 채우시고 어두움을 빛으로 밝히셨습니다. 오늘도 기독교는 이런 역사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 땅은 formless 형체가 없었고, Void emptey waste,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 있고, darkness 어두웠습니다. 그리고 waters, 안개만 자욱했습니다. 그때 무엇이 그 가운데 활동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영(Holy spirit)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보면 이미 성령님은 천지창조의 주역으로 일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창세기 1: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in His ownoimage)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을 절대자로, 어떤 때는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실 예수님, 영(spirit)으로 역사하실 자신을 복수로 표현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성품은 비분리적(非分離的)(sparation)이요, 불가 불리적(不可 不離的)이라는 것입니다. 신명기서 6: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시라”(막12:29절 참조) 하나님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으시고 부분으로 분리되지도 않으십니다. 인간은 물질적 부분과 비물질적 부분을 가졌기에 나누어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시 바랍니다. 고대(古代)에 널리 사용되었고 하나님이란 El(엘)은 (power or might)란 능력 또는 힘을 의미했는데 그 후 Elohim이란 용어로 파생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Elohim은 복수형이지만 단수 개념을 지닌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의 저자들도 하나님은 무한한 능력과 절대적 힘을 소유하고 있으시며 변화무쌍한 다양성을 내포하고 계신 유일신인 것을 고백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이름을 통해 실존성과 절대성을 오해하거나 오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플라톤처럼 “하나님은 영원한 정신(the eteral mind)이요, 자연에 있어서 선(善)의 원인”이라든지,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만물의 제일 근원”이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절대적 실존자입니다. 그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가 이 우주를 창조하셨으며 정확무오하게 질서 있는 자연법칙대로 다스리겠습니까?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령님은 중간에 튀어나온 엉뚱한 신이 아닙니다. 이미 천지창조 시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영이었으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영이신 분이십니다. 그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롬8:22) 또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마땅히 우리가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롬8:26)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살피시고 생각을 아신다고 했습니다.(롬8:27절)

이와 같이 성령님은 천지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만 계신분이 아니십니다. 성경전체 내용 중에 역사하셨으며 창조부터 관여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2. 성령님과 은사의 관계

은혜와 은사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은혜는 성령님께서 성도에게 역사하시어 성도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는 일반적 선물이라면, 은사는 사명을 위해 주신 선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인 선물이 사명에 쓰여진다면 그것은 은사일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사도의 은사,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하는 은사, 병 고치는 은사, 각종 방언의 은사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은사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사랑의 은사입니다.(고전12:28-31절 참조) 사명 감당을 위하여 사용하는 은사야말로 가장 큰 은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은사를 주신 목적대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 받아야 깨닫고 말씀을 듣습니다.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Ruwach)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사32:15절) 성령님을 통하여 예언의 은사를 받고 또 성령을 받으면 천국의 소망을 갖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신(성령)을 만민(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행2:17절, 요엘2:28절)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딤전3:6) 이렇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우리가 그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어떤 변화가 옵니까? 물론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등 풍성히 열매가 맺힙니다. 인격에 변화가 옵니다.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내면에 희락과 기쁨이 오기 때문에 병마가 물러가고 육체도 강건해집니다. 삶의 맛이 달라지고, 가정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주위 사람이 변합니다. 어두움이 걷히고 밝아집니다. 가는 곳마다 평화를 이루고 peace maker 가 됩니다. 성령,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세상을 바꾸는 능력과 위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①영적 사역을 위하여 선지자적 은사, 능력의 은사, 신유의 은사, 예언, 영 분별의 은사 등을 줍니다.(고전12:28, 롬12:6) 이러한 은사는 교회에서 주는 직분과는 상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사명 자들에게 주는 영적 은사입니다.

②또 교회에서 직무 수행을 위해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 지식, 믿음, 방언, 통역 등의 은사입니다.(고전12:8-9절) 이런 은사는 교회에서 추천해서 임명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님께서 사명수행을 위하여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중에 특별히 사랑의 은사는 위대합니다.(고전12:31) 그러면 은사를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몸 된 교회를 봉사케 하고 복음전파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잘못하여 사사로이 사용하므로 탈선해서는 안 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사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일단은 우리가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은사는 사모하는 마음에 주어지는 선물입니다.(고전12:31) 은사는 많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고후1:11, 행4:24-31절) 여러분, 세계여행을 맨몸으로 수차례나 했던 한비자는 “구석지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길에서라도 걱정하지 말라 물어보면 될 것 아니냐? 어디에서나 두려워 할 것 없고 낙심할 필요 없다. 아무리 방황해도 목적지만 분명하면 반드시 가고 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많은 돈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교회는 남을 때릴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권투도장이 아닙니다. 기를 쓰고 남보다 빨리 달려서 세상의 면류관을 얻으려는 훈련장이 아닙니다. 미국의 오노는 자기가 앞서가려고 그 미끄러운 빙상에서 남을 밀어 넘어 뜨렸습니다. 넘어진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는 그런 기술을 배우고 그런 방법으로 세상에서 앞서가려는 훈련을 받는 장소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내가 죽어 남을 살리는 마음을 갖고 내가 먼저 낮아지고 깨어져서 봉사하는 덕목을 기르는 영적 훈련소입니다.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을 배우는 장소요, 높아지기보다 낮아지는 것을 습득하는 장소입니다. 주므로 얻고, 섬기기를 받기보다 섬기기 위해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 받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 안에서(예수님) 거저주시는 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엡1:6절)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뜻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 임금이 고백했듯이 주의 영을 떠나 아무데도 피할 수 없습니다.(시139:7) 성령 충만 받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됩시다. 성령받아 은사(恩賜)는 각각 다르나 선한 청지기로서 교회에서 서로 봉사케 하려고 주셨다고 했습니다.(벧전4:10) 일단 성령 충만 받으면 모든 해답이 나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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