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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십자가 눅23: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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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111회 작성일 10-03-25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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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몇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까?(3개) 못 박히신 장소는 어디였습니까? (해골이라는 곳) 해골은 “The place of skull" 이란 곳으로 “해골 곳”인데 바위로 된 지형이 사람의 두개골 모양으로 생겼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golgotha란 말도 같은 뜻으로 히브리어입니다. 물론 갈보리도 같은 뜻으로 라틴어이며 헬라어로는 krarion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대신하여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마치 지형이 해골처럼 생긴 그 골고다 언덕에서 양쪽의 두 강도 사이에서 인류의 모든 죄 짐을 홀로 지시고  모진 고통을 참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갈보리 산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는 높이가 똑같았습니까? 분명히 달랐습니다. 양쪽 두 개의 십자가보다 가운데 십자가는 더 우뚝이 높았습니다. 대적자들은 예수님을 보란 듯이 더 높이 매달아 광고하려고 했지만 사실은 영적인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양쪽의 두 강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윤리와 법도에 미달해서 죽은 사람들이요, 가운데 예수님이 못 박히신 높은 십자가는 보통 인간의 윤리나 법도보다 더 높아서 인간들이 시기하여 죽인 십자가입니다. 이번 주일은 주님께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신 고난주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복음적인 의미에서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1. 한 개의 십자가는 가장 불쌍한 사람의 십자가입니다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세상의 윤리와 사회질서를 무시한 채 자신의 양심과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온갖 죄악을 자행하다가 국법에 의하여 사형집행을 당했는데 죽으면서도 마음이 완악하여 뉘우치거나 회개 할 생각을 하지 않고 끝까지 발악하며 공연한 예수님까지 비방, 조롱하다 죽었습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조롱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자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친 사람이 왜 불쌍합니까?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미친 줄 아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또 누가 바보입니까?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암병으로 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식 걱정, 마누라 걱정, 고추농사 걱정만 하고 있으니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부인이 오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생각 없이 내 뱉는 말 한마디가 남의 심장을 아프게 쑤시고, 자신이 무심코 저지른 잘못된 행실이 사회에 무서운 파문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각없이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잘난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문제의 인물인 것입니다. 더욱 문제인 점은 자신의 과오와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그러한 과오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다른 사람이 회피하고 상대 해 주지 않으니 더욱 기고만장하여 휘젓고 다니면서 점점 더 주위를 혼란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십자가에 달리면서도 끝까지 깨닫지 못한 그 강도는 육신의 생명만 비참하게 죽은 것이 아니라 영혼 멸망 받아 지옥의 안방손님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다른 한 강도는 죄를 회개하여 구원 받았습니다.

다른 한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강도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며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요나는 풍랑을 만났을 때 “이  풍랑은 나 때문이니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며 회개할 때 풍랑이 잔잔해졌습니다. 그 결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구원했던 것입니다. 자기 죄를 뉘우친 이 강도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 받았습니다. 그는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의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흔쾌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분명히 이 행악 자는 구원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거짓말 하실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민수기서 23: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로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강도가 구원받은 사건을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생각하며 구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공로만 얻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강도는 부끄러운 구원이나마 지옥행은 면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용서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시간도 예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하시려고 안타깝게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가운데 높이 세워진 십자가는 남의 죄를 위하여 죽은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가운데 우뚝 세워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남의 죄를 대신 지고 죽임을 당하신 십자가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십자가이며, 기독교의 영원한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한 몸에 지고 가신 구세주입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대속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숭고하신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던 순간 인류 역사이래 죄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속량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앞에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왜 죄가 없습니까?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타락한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원죄와 원죄로 말미암아 파생된 자범죄나 고범죄가 전혀 없는 순결한 신(神)이며 또한 사람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게 하셨고 죄 없으신 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결코 신화가 아니라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이셨고 죄 없는 예수님을 속량의 제물로 죽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4: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분명히 못 박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 다원주의를 배격합니다. 오직 우리들의  속죄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는 어떤 종교도 구원은 없습니다. 또 이러한 사상을 적당히 희석시키는 어정쩡한 교리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편승한 인본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도 교제하되 구원 교리만은 확고해야 합니다. 적당히 사람을 끌어 모으고 사적(私的)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달콤한 이단사상에 솔깃하지 마세요. 그들의 혀는 달콤하지만 감추어진 무서운 발톱을 조심하세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유여(有餘)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죄 없으신 예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어 지금도 우리사이에서 역사(役事)하시며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성령님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했습니다.(요16:8)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신도 흉내 낼 수 없기에 유독 기독교만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뜻 이해 못한다고 부정(不定)하지 마세요. 이것을 부정하는 이단세력에 솔깃하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분명히 강조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갈보리  산언덕에 유난히 우뚝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끝까지  거절하다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십자가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과 멸망은 벽지 한 장 차이입니다. 구원은 고개를 아래위로 쳐들기보다 쉽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한강로처럼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고집하면 지옥이고, 다른 강도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고난주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보다 깊은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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