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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제라 (삿16:23-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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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403회 작성일 10-02-20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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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제라! 라는 말은 쓰리고 아프고 절통하다는 자아탄식입니다. 어디서 들어 본 기억이 안 나십니까?  일본에게 나라를 짓밟히고 신음하던 시절에 늦게야 후회하고 절통하여 민족의 해방을 부르짖고 일어섰던 기미년 3월1일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비통한 절규 중 한 토막이었습니다. 다음 주일이 3.1절 기념예배입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 역사의 쓰라림을 반복 당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게 절규하고 아파했어야 했습니까? 그것은 이 민족에 있어서 국치(國恥)요, 실패의 역사(歷史)였습니다. 여러분, 실패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삼손의 기록을 통하여 실패에 대한 진정한 교훈을 깨닫고져 합니다. 농구경기에서 일이점 차이로 아슬아슬한 열전을 벌리다가 타임아웃(time out) 직전에 어느 한편이 졌을 때는 석패(惜敗)요, 입학할 때부터 졸업 시까지 내내 일등만 하던 수재가 상급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하였을 때는 분패(奮敗)요, 국제 시합에 출전한 축구팀이 한 꼴도 못 넣고 3:0으로 지고 말았을 때는 참패(慘敗)입니다. 삼손은 사사로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실패는 석패와 분패와 참패를 모두 합친 대패였습니다. 그래서 삼손은 동정은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존경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왜 그러한 실패자가 되었습니까? 비참하게 그의 인생을 매듭지어야 했습니까?


1. 출발만큼 찬란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수태의 설화가  천사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사람은 특별한 인물들로서 구약에는 삼손의 경우이고, 신약에는 예수그리스도와 세례요한뿐입니다. 삼손은 이처럼 천사까지 등장하는 수태로 화려한 인생을 출발하였지만 그의 생애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처럼 볼품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호 통제라! 참으로 통탄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반드시 기대했던 출발만큼 크고 찬란하게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천사까지 동원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삿13:5절) 으로 태어난 인생이 겨우 이방 블레셋 인들이 섬기는 우상 다곤의 신당에서 두 눈을 뽑히고 쇠사슬에 매어 처참하게 죽고 만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정의의 확립, 사회정화, 민생고의 해결 등 거창한 공약을 내세우고 정권을 인수받은 정당이 집안싸움만 하다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난다면 아무리 변명해도 실패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우리가 비록 겨자씨처럼 출발은 작고 미미할지라도 결과는 크게 이루어 놓아야 성공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물며 화려한 출발을 한 사람이 제대로 능력 발휘도 못 해보고 남에게 조롱당하며 인생을 마친다고 하면 얼마나 비통한 일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약한 것, 작은 것, 없는 것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공급받아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한 인생들이 되십시다.(욥8:7절) 우리 용해동교회도 그렇게 될 줄 믿고 축원합니다.


2. 삼손은 능력만큼 역사(歷史)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같은 사사 중에도 에훗은 왼손잡이였음에도 모압의 압제에서 나라를 구했고(삿3:12절 이하) 드보라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서도 가나안의 침략에서 민족을 구했는데(삿4:1절 이하) 삼손 같은 장사가 도대체 해 놓은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삼손은 젊은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어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삿14:5-6절) 삼손은 장사라기보다도 산을 뽑을 힘을 가진 역사(力士)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삼손이 오늘 본문처럼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애석합니까? 물론 삼손은 힘을 과시하면서 블레셋 사람을 몇 천 명 죽이기도 하고 곡식밭을 불태워 버리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떤 일관된 정책이나 계획에 의한 구국처사가 아니요 그때그때 자기 기분에 따라 분풀이로 저지른 산발적인 보복 행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렸고 단지 그 몸에 돌멩이 몇 개뿐이었지만 블레셋의 대장이며 거인이었던 골리앗을 쓰러뜨렸지 않습니까?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하고저 하는 열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재력이나 권력이나 기력이나 체력이나 모든 조건이 남보다 월등하게 나으면서도 겨우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못해 놓고 만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누가 뭐라고 변명해도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포에서는 우리 용해동 교회를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어떤 큰 교회가 요양원을 세우고 수양관을 만들었다고 하면 응당 그려러니 생각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목포 귀퉁이 언덕배기 꼬작대기에 있는 별 볼일 없는 교회가 그런 일을 했기에 뜻있는 분들은 우리 용해동 교회를 주목하며 우리 교회 장로님들, 권사님들, 안수집사님들 뿐 아니라 모든 교인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목포의 모델(Model) 교회로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힘을 가지고 큰일을 해냈고 앞으로도 더 많은 큰일을 해 내는 교회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모두에게 더욱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삼손은 기대만큼 보답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삼손에 대하여 하나님의 기대나 부모의 기대, 국민의 기대와 촉망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이 큰 기대에 비하여 그가 보답한 일이란 너무 빈약했습니다. 두 눈을 뽑힌 채 블레셋 사람의 노리개 거리나 되라고 그의 부모는 그처럼 애써서 경건하게 길렀겠습니까? 이방의 창기 나부랭이나 찾아다니며 무위도식이나 하라고 하나님은 그를 나실인으로 성별하여 세우신 것입니까? 기분 나쁘면 한 번씩 테러 행위나 저질러서 국민을 곤경에 빠지게 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를 사사로 섬겼을까요? 삼손은 너무 기대에 어그러진 생활을  했기에 석패요, 분패요, 참패요 그리고 대패를 했던 것입니다. 자녀 된 우리는 부모님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은 분들은 세운이의 기대에 어그러진 믿음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돌아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후회하게 만드는 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부모님들이, 이웃들이 기대하는 그 이상은 몰라도 그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게 삽시다. 조금이라도 보답해 보려고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삼손의 패인을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정리 해 봅시다.

1)소명의식이 희박했습니다.

천사의 수태 통고를 받았을 때 “우리가 이 아이에게 어떻게 행하오리까? 어떻게 기르오리까?”(삿13:8) 하며 전전긍긍하던 부모의 경건을 십분의 일만이라도 본받아 “내가 어떻게 행하오리까?” 하고 조심하였더라면 그런 비참한 실패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내게 직책이 주어졌는지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실패입니다. 무엇을 위하여 내가 하나님께 뽑혔는지 소명감이 없는 사람이 목회자가 된다면 결과는 뻔합니다. 이런 경우 그 실패는 자기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그 악영향이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욱이 교회에서의 직분은 남의 영혼까지 병들고 죽게 맞들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 봉사 할 자리보다 향락할 자리만 찾아다닌 것이 실패의 둘째원인이었습니다.

삼손은 찾아야 할 자리를 바로 찾지 못했고, 그가 쓰여져야 할 자리를 바로 선택하지 못했고, 봉사의 자리보다는 향락의 자리만 취미를 가졌었습니다. 그런 삼손에게 실패는 당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삼손은 나실인의 고유의 머리털을 잘리 운 것이 또 패인이었습니다.

그의 독특한 머리털은 나실인의 표징이었으므로 머리털을 잘린 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명을 포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힘의 근원을 상실 해 버렸고 특별한 사람이 보통사람으로 전략해 버렸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특별한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삼손은 두 눈을 뽑힌 채 블레셋에 끌려가 맷돌 방아를 돌리는 짐승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 해 보십시요! 적국이며 이방나라인 블레셋의 축제일에 그들의 우상인 다곤 신전에 끌려나와 노리개 거리가 되었으니 이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닙니까? 자기 망신, 가문망신, 나라망신, 하나님 망신까지 시킨 것입니다. 산을 뽑을 만한 힘이 넘쳤던 삼손이 신전의 기둥을 붙잡고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고 하나님께 속으로 기도할 때 패배자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후회막급이었을 것입니다.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린 채 기생 드릴라의 향기로운 무릎을 베고 감미로운 꿈에 빠져 있었던 결과는 결국 이러한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두렵습니다. 오늘도 자신의 안락만 취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속의 무릎위에서 머리털을 잘리우는 교인이 어찌 없겠습니까? 사명의 머리털을 밀어버리면 그때는 얻을 것도 줄 것도 없습니다. 늦게야 깨닫고 속으로 울부짖은 기도의 응답으로 이방신전을 무너뜨리고 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게 하므로 실패에 대한 설욕을 어느 정도 한 것 같지만 자신도 자폭한 슬픈 최후였습니다. 그것은 통쾌한 최후가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사의 등장으로 출발했던 천하의 역사(力士)의 말로(末路)는 이렇게 비참하게(unhappy ending) 끝나고 말았습니다. 오호 통제라! 참으로 원통하고 분통한 슬픈 말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작보다는 끝이 좋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애가, 자신의 사역이 슬픈 말로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경성합시다. 은혜 중에 제일 귀한 은혜는 깨닫는 은혜입니다. 그것도 삼손처럼 늦게 깨달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진리이신 예수 안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시고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골2:7절)

서로 돌아보시며 “빨리 깨달읍시다”하고 인사들 나누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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