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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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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1,470회 작성일 09-11-21 12:27

본문

본문에 나오는 내용은 실제 있었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을까 한번이라도 깊이 생각 해 보셨습니까? 흔히들 이 내용을 탕자의 비유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아버지의 속을 잔뜩 상하게 하고 집을 나갔던 아들이 제멋대로 살면서 가지고 간 돈을 다 까먹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기뻐서 동네잔치를 벌렸다는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끝나는 단막극 드라마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집 나간 아들을 못된 사람이라고 단정하여 탕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너그러이 용서한 아버지의 사랑이 감동적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좀 있는 사람들은 이 비유는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하신 내용이라고 깨닫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인스턴트(instant) 식품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생각을 깊이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조금만 깊이 풀어서 이야기 하면 골치 아프니 빨리 결론만 말하라고 합니다. 실상 바쁜 것도 없으면서 대개 바쁘다고 안절부절 합니다. 그래서 설교도 짧을수록 좋아하고, 일도 대충 해 치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2009년 연말을 앞두고 또 한해의 결산만은 정확히 해야 합니다. 결산이 틀리면 예산도 다 틀려서 세우나 마나 합니다. 새로 짜야 합니다. 뜯어고쳐야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알지 못하고 무작정 나 좋을 대로 생각하고, 나 좋을 대로 판단하며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영통(靈通)이 아니라 불통(不通)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형통(亨通: going well)이란 공급자와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 필요한대로 공급받고 또 나도 남에게 공급해 주므로 그러한 흐름의 관계가 막힘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막히면 공급해도 받을 수 없고 받아도 흘러 보낼 수 없습니다.
2009년도 신앙의 결산이 잘못되면 2010년도도 축복을 받기 힘듭니다.
본문에 나오는 작은 아들은 왜 생고생을 했습니까? 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까? 큰 아들은 왜 아버지를 원망했습니까? 그것은 아버지의 참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알았어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모르거나 잘못 알면 고장이 생깁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안 해도 될 헛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알면 뻥 뚫릴 일이 더 힘들고 골치 아프게 됩니다. 오늘은 여러분의 신앙문제가 뻥 뚫리는 해결이 있기를 바랍니다. 2010년은 헛고생하지 맙시다. 빙빙 돌지 말고 하나님 품으로 바로 직행합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므로 여러분의 인생문제도 만사가 형통하시기 빕니다. 왜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며 즐거워해야 할 시간을 오히려 고통스럽게 보냅니까? 사랑하면 웃을 것을 왜 꼬나보십니까? 본문으로 돌아가 생각 해 봅시다.

1. 작은 아들은 왜 그런 고생을 했습니까?
한마디로 미 성숙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 관리나 경영 방법을 답답하게 여겼습니다. 요즈음 신세대들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도 그래서 썩 좋아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발한 전도방법, 교인 성향만 쫓아가는 복음 내용, 그런 교회당 분위기 만들기 식 교회 성장 지향성이 알고 보면 초대 교인들의 뜨겁고 열렬했던 영성(靈性)을 변질시켜 버렸고, 냉랭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성과 철학만을 강단에 도입하고, 진실과 성실은 물 건너 보내버렸습니다. 늙은이들도 신세대 흉내를 내야 그래도 인기관리가 됩니다. 그래서 늙은 사람들도 젊은 사람들보다 한술 더 뜨는 체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교회 형태가 아닙니다.
그래서 거대했던 산속의 절간들이 도회 속에 교회당으로 기어들어 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탄을 받습니다. 이제는 설교를 듣기 보다는 교회당 안에서 록(Rock)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설교도 드라마틱하지 않으면 먹혀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한국 교회도 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서구 교회들이 세속주의로 흘러갈 때 잘 나가는 듯 했지만 교회당은 지금 회의장으로, 연회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제가 몇 년 전 방문 했을 때 종교 개혁을 했던 스위스의 칼빈교회는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교회당 안은 캄캄했고 관리인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교회 주변은 이끼만 끼어 있었습니다. 요새 보수주의를 고집하며 성서로 돌아가자고 하면 콧방귀 뀌지만 그래도 우리는 고집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뺏다시피 집 나간 작은 아들처럼 착각하면 안 됩니다. 제 힘으로 큰 부자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부자 됐습니까? 아버지 재산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했습니다.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집을 나갈 때는 신났을지 몰라도 곧 그 귀중한 재산을 탕진해 버렸습니다.  자기가 고생하여 번 돈이 아니라 돈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먼 나라로 가서 펑펑 썼습니다. 허랑방탕했다고 했습니다.(13절) 기생이나 협잡꾼들이 파리 떼처럼 달려들어 금방 빨아 먹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얼마 못가 알거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돼지 굴에서 돼지를 치면서도 돼지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습니다.16절에 보면 돼지들이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돼지들보다 더 못한 신세가 되어 버렸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지켜야 할 것 잘못 지키면 그렇게 됩니다. 작은 아들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랐던 사람입니다. 알 것을 모르면 그렇게 됩니다. 아버지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인생독본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진정한 인생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면 제 아무리 똑똑한 것 같아도 작은 아들 같은 실패를 합니다. 세상 것 다 얻었어도 생명을 잃어버리면 인생 끝납니다. 어떤 목사님들이 필리핀에 갔다가 경찰복장을 한 사람이 찾아와 검토 해 볼 것이 있으니 여권들을 달라고 해서 믿고 주었더니 일행들의 것까지 몽땅 가지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그것을 위조하여 여권 한 장에 천여만 원씩 받고 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땀나는 고생을 했답니다. 여러분, 사탄은 항상 우리 곁에서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진리입니다. 그것만은 잃으면 안 됩니다. 돈의 소중함을 몰랐기에 허랑방탕했던 작은 아들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면 안 됩니다. 지켜야 할 것을 잘 지키셔야 합니다. 진실과 근면 성실함입니다. 신앙양심입니다. 예의범절입니다. 효성심입니다. 맡은 직분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성도들의 재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의 가치를 모르면 나중에 잃어버리고 고생합니다. 대접 못 받습니다. 사랑을 잃어버리면 인생 고아가 됩니다. 여러분, 이 해가 다 가기 전 미리미리 점검하고 챙기시기 바랍니다. 여행가면 가이드가 일러줍니다. “귀중품을 뒤에 메고 다니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옆에 매면 가져가던 말 던 알아서 하세요. 앞에 매면 절대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라는 표시랍니다. 여러분들의 가장 귀한 귀중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 받은 여러분은 고마움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가르침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생명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결단코 놓치지 마셔야 합니다.

2.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 정신이 든 아들은 늦게야 깨달았습니다. 기왕 돼지우리에서 이 고생하고도 돼지 밥도 못 얻어 먹을 바에야 부자인 자기 아버지 집에 가서 머슴살이를 하면 이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정말 염치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창피하지만 죽는 것 보다야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 아들은 죽기보다 자존심이 더 상했을 것입니다. 금방 집을 나가면 부자가 될 것처럼 큰 소리쳤던 아들입니다. 아버지처럼 촌구석에서 이렇게 안 살겠다고 했을 것입니다. 성공하여 떵떵거리면서 살겠다고 자기 몫의 재산을 나누어 달라고 앙탈을 부렸을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 만사가 다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거지도 자기 뜻대로 못 되는 것입니다. 어떤 거지가 깡통을 들고 자유롭게 살아보려고 했더니 어느 놈이 깡통을 훔쳐가 버렸다고 신세 한탄을 하더랍니다. 거지도 자기 뜻대로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잠16:9) 고 했습니다. 그랬던 아들이었으니 무슨 낯짝으로 아버지 집에 들어올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멀리서 그 거지꼴이 되어 오는 사람이 자기 아들인 것을 벌써 알고 달려가 측은히 여겨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비는 아들의 고백을 듣는 둥 마는 둥 종들을 불러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살찐 송아지들을 잡아 잔치를 벌리자고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즐거워했습니다.(24절) 우리는 여기서 아버지의 재회의 기쁨 속에 숨어있었던 아픔을 생각 해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 아들이 얼마나 괘씸했겠습니까? 소문을 통해 알거지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잘난 체하고 아버지의 충고도 듣지 않은 생각을 하면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돌아온 아들을 보고 기뻐했다는 것은 그 동안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얼마나 마음 아픈 나날을 보냈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끼니때마다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밥이나 안 굶고 있는지? 옷을 어떻게 입고 사는지? 혹 사고는 당하지 않았는지? 밤잠을 잘못 이루고 그 아들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여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자식을 낳아서 길러보면 압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는지 이제 의미를 조금은 아시겠지요? 아들이 탕자였다는 것 보다는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에 초점을 맞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예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집밖에 나가면 고생이듯이 인간은 마음이 하나님과 멀어지면 외롭고 평안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항상 그 아버지 집에 거하는 여러분들은 복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했으면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이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 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으니”(시84:10) 거기에서 살게 해 달라고 고백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사랑하며 항상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아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전도가 그렇게 값지고 중요한 것입니다.

3. 큰 아들도 아버지의 그 심정을 몰랐습니다.(25-32절)
큰 아들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아들이었습니다. 그 날도 온 종일 밭에서 진땀나게 일하고 돌아오다가 집에서 울려나오는 풍악소리를 듣고 자초지종을 알았습니다. 그때 동생에 대한 미움보다 아버지에게 야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기는 죽도록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며 일했는데 자기에게는 한 번도 염소새끼 한 마리라도 주어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배려도 안하셨던 아버지가 재산을 빼앗다시피 가지고 나가 창녀들과 놀아나며 탕진해 버린 저 못된 동생을 위해서는 잔치를 벌리고 저 야단이니 “아버지도 이상 해 진 것 아닌가?” 노여운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큰 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그 착한 아들도 아버지의 그 깊은 속은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런 생각 때문에 서로를 오해하고 시기하며 심지어 성질을 부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에서도 실컷 수고하고, 앞장서서 고생하던 착한 분들이 목사님이나 리더(Leader)의 마음을 이해 못하고 뚝심 부릴 때가 있습니다. 초신자에게 관심을 더 두면 억측을 하여 말을 만들고 가슴 아픈 꼬라지를 부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발 물러나 생각하며 삽시다.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예수님의 깊은 뜻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허물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과거의 어떤 실수도 허물도 보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찾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도 남의 허물만 보지 맙시다. 지금 이 시간 이전의 섭섭했던 일들을 다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그랬기에 기뻤습니다. 잔치를 베풀어 모든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용서하면 이처럼 나도 기쁘고 남도 기쁘게 합니다. 그때부터 인생잔치가 벌어집니다. 만약 용서하지 못했다면 큰 소리가 나오고 아들은 다시 집을 나갔을 것이며 그 집은 슬픔으로 망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용서가 있기에 항상 즐겁고 흥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교회들과 우리들의 가정 가정이 사랑과 화해로 기쁨이 넘치고 계속 흥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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