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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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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120회 작성일 09-08-2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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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명랑하고 조용하며 순종적인 성품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그를 “평화의 사람” “순종의 사람” 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신사(紳士)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금전적인 면으로 볼 때 이삭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신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대단한 부자였고 실제로도 아버지 아브라함의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습니다.(창25:5) 그러나 그러한 부유한 환경과 엄청난 재산을 상속 받은 자 임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노동을 하여 더 큰 재산을 일구었습니다. 창세기26:12절을 보면 “이삭이 농사하여 그 땅에서 백배나 얻었고...”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물려준 막대한 재산과는 별도로, 이삭은 자신의 노력으로 거부가 된 것입니다. 그 내용이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창26:12-14) 실로 이삭은 당대에 제일가는 갑부였고 백만장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런 백만장자가 되었을까요?

1. 기쁨이 부요하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삭은 유약한 사람 같았습니다. 이삭의 쌍둥이 두 아들 에서를 보면 씩씩한 사냥꾼이었고 야곱은 잔꾀도 부리고 야망이 큰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또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세파에 시달리며 산 사람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자신을 잡아 쪼개어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 했을 때도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묶여서 화목위로 올라갔었습니다. 물론 신앙적으로는 그러한 순종을 높이 평가해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약한 성격의 인물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것도 단 1년에 백배의 소출을 낼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이삭(isaac)이라는 그 이름에서부터 단서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삭”이라는 말은 “웃음, 기쁨, 행복, 평화”를 뜻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입니다.(창17:19) 그 이름의 의미대로 이삭은 마음이 평화롭고 항상 여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평화롭고 즐거움이 있는 사람은 번영과 성공을 끌어들입니다.
 반면 마음이 어둡고 예민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오히려 오는 복도 밀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도록 일하면서도 결코 부유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고 나서 절망에 빠진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남긴 빚과 생활고로 인해 그녀는 몸과 마음이 모두 무기력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으로 살아 갈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기쁨”이라는 한마디가 들려왔습니다. 마치 누군가 그녀의 귓전에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녀는 대뜸“뭘 기뻐하라는 거야?”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금방 대답이 떠올랐습니다. “최소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갖고 있잖아.” 그리고 이어서 또 다른 축복들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친구, 가족, 직장...마침내 그녀는 이렇게 소리 내어 말했습니다. “기쁨, 기쁨이라, 그래 내 인생은 지금 기쁨으로 가득 차 있어”그 후로부터 자신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슬픔 마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식구들은 일자리를 잡았습니다. 친척 중에는 병상(病床)에서 죽음 직전에 기적적으로 회생한 사람도 생겼습니다. 자신과 주변에 기쁜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는 일도 수월하게 풀리고, 빚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이 모든 문제를 극복하게 해 준 것입니다. 기쁨이나 슬픔도 병처럼 전염됩니다. 기뻐하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도 기뻐집니다. 그래서 사람이 모여들고 서로가 살맛이 생기며 활력이 거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기쁘고 활기차게 일하는 사람을 돕고 싶고, 기왕이면 그런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니 근천 떨고 죽겠다는 사람은 자연히 외롭게 되고 생활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삭은 이름부터서가 부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도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했습니다. (잠17:22) 즐거워하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건강해집니다. 옛 어른들 말씀도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고 했습니다. 웃으면 복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투고 불하면 복이 달아납니다. 잠언서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1:9)고 했습니다. 이삭에게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신 것은 그가 기뻐하며 살았고 다른 사람들과 평화했기 때문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이삭은 싸움을 피하는 평화주의자였습니다.
“약자는 싸움을 하지만, 강자는 더 높은 목표를 위해 자신을 다스린다” 란 명언을 읽었습니다. 이 명언처럼 이삭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풍요의 우물을 찾아내고 소출을 단 1년 사이에 백배나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너무나 부유해지자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시기했다고 했습니다.(창26:14) 우리가 이삭처럼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여 부자가 되어도 똑같은 경우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박수를 쳐 주고 함께 기뻐해 주지 않고 시기를 합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 나쁘게 생각하며 대항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어떠했습니까? 냉정을 잃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소득을 증대 시켰으며 그들과 화평을 누렸습니다. 그는 부당하게 억압하고 공격하는 세력 앞에서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마음과 생활에 여백을 만들고 온유함을 잃지 않을 때 그 빈자리에 신성한 물질이 자석에 쇳조각이 달라붙듯 쏟아져 들어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항을 안하는 이삭과 싸울 수 없으니 블레셋 거민들은 이삭이 부유한 것이 배가 아파서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 즉 우리를 떠나가라”(창26:16)고 추방했습니다. 그때 이삭은 막대한 재력을 갖추었고 수하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블레셋과 싸우고 보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권리를 찾겠다는 이유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신선한 그랄 골짜기를 향해 이사했고 일군 땅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그는 그랄에서 당장에 물이 문제였으므로 우물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종들이 진땀을 빼면서 우물을 파서 겨우 목을 추기고 정착하려고 하자 심술궂은 블레셋 사람들이 나타나서 “ 이 우물은 우리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창26:20) 이삭은 그들에게 우물을 양보하고 다른 장소로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몰려와 다투므로 또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때는 그들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지 더 시비하지 않아 그곳 우물 이름을 르호봇(Rehoboth)이라고 했습니다. 르호봇은 "넓은 장소"란 뜻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며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26:22)했습니다. 이삭은 첫 번째 두 번째 우물을 양보함으로서 더 큰 부의 공급원을 향해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양보한 것은 빼앗긴 것이 아니요 더 풍요로운 우물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것이 많습니까? 빼앗긴 것이 있습니까?  그러나 이삭처럼 아직 파야 할 우물이 더 남아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부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 멀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머지않아 이삭처럼 진정한 풍요의 우물 “르호봇”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3. 이삭은 실패에 성공의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이삭은 세 번째 우물을 발견하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이삭은 감사의 제물을 드려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봉인(封印)한 것입니다. 그것은 성공을 확실하게 다지고 영원히 지속시키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주신 복을 봉인 못할 때 더 큰 실패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복권타서 부자로 산 사람 드물고 땅 투기로 돈 벌어서 행복하게 사는 가정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돌린 이삭에게 하나님은 플러스 알파(plus α)의 복을 주셨습니다. 생각치 않은 우물을 하나 더 얻었습니다.(창26:32)
그래서 그곳 이름을 “세바”라고 했으니 “브엘세바”가 바로 그곳인 것입니다. “성취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삭이 부당한 요구를 하는 블레셋 앞에 저항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부의 물결이 강물처럼 쏟아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에 실패는 없답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실패랍니다. 여러분!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성취의 우물을 퍼 올리면 이삭처럼 땅을 더 파내시기 바랍니다. 블레셋의 세력은 결코 우리를 영원히 괴롭히거나 속박하지 못합니다. 저항보다 강한 것이 바로 무저항입니다. 무저항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맞서 싸울 때 보다 더욱 강력한 정신력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누구와도 적개심을 불태워 가며 맞서 싸우려 들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자기는 “실패한 일이라고 해도 성공이라고 부르면, 결국 그것은 성공이 되고 말더라”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삭의 효력을 증명한 성공의 비결이 바로 그것입니다. 겉보기에 이삭은 아무런 저항 없이 물러섰지만 그럼으로써 진정한 성취의 장소를 더욱 크게 확대시켰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실패로 보이는 경험마다 실제로는 성공의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경험들을 떠 올리며 큰 성공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과거 또는 현재의 불운한 상황과 타협할 때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삭은 실패에 성공의 이름표를 붙인 사람입니다. 이삭이 거부가 되고 강해지자 블레셋 사람들이 화친 할 것을 제의 해 왔습니다. 이삭이 속 좁은 사람 같았으면 화해를 거부하고 오히려 과거사를 거론하며 그들과 손을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웃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에 성공의 이름표를 단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시며 이런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복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이삭은 전혀 자기 피알을 한 적이 없습니다.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도 변호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인 그들이 먼저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니라”(창26:29절)고 고백했습니다. 성서속에 백만장자 이삭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복 받게 살았고, 하나님은 그를 택하여 복을 쏟아 부어 주셨던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마음 창고가 제일 중요한 줄 믿습니다. 마음의 부자가 제일 부자인 줄 믿습니다. 웃음의 사람, 기쁨의 사람, 평화의 사람, 이삭은 정녕 거부였습니다. 백만장자였습니다. 실패에 성공의 꼬리표를 단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 사화하라”(마5:25)고 말씀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5:9)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하나님이 복을 쏟아 부어주셨고 성서속의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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