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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여인과 결혼한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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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3,877회 작성일 09-08-2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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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절에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였다고 했습니다. 구스 여인은 이스라엘 백성 속에 섞인 잡족이었고 출신 지역(아프리카)으로 보아 검둥이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속에서 물이나 긷고 심부름하는 천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여인과 이미 100세가 넘은 모세가 결혼을 했으니 동생인 미리암과 모세의 형 아론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9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의 편을 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를 감히 비방한다고 진노하셨고 10절에 보면 미리암이 나병에 걸리게 하여 피부가 눈과 같이 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결혼을 금하셨고 아말렉 같은 이방 민족은 아예 진멸하라고까지 명령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곳에서는 왜 모세의 편을 들어주시고 당연히 불평할 만 했던 미리암과 아론에게 진노하셨을까요?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과 모세의 깊은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1. 모세는 속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모세가 결혼한 구스 여인은 잡족이었습니다. 검둥이 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하필이면 이러한 잡족과 결혼하였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잡족들이 따라 오니까 그들도 대열에 포함시켰습니다.(출12:43-49절) 그런데 후에 광야에서 그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탐욕을 내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민11:4) 잡족들이 탐욕을 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충동되어 난리를 피었습니다. 심지어 모세의 장막문 앞에 밀고 들어와 울며불며 원망했습니다.(11:10절) 성경에 보면 이때처럼 모세가 기가 막힌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한 모세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 철딱서니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숨통이 터질 것 같아 하나님께 가슴을 치며 호소하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백성들은 애굽에서 해방시켜 홍해를 건너게 하고 그 메마른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한 사람도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게 먹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깡그리 잊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병아리 눈꼽만큼도 없고 이제는 이 사막에서 생선과 야채와 고기를 먹지 못해 기운 빠져 죽겠다고 떼로 몰려와 시위를 하니 모세가 더 이상 나도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자기를 죽여 내가 고난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1:15절) 이 비장한 기도를 해야만 했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먼저 원망 불평했던 잡족들 때문이었습니다. 생각 해 보면 그들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또 두고두고 화근거리가 될 수 있으므로 내쳐 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속이 있는 지 없는지 그 사건이 있었던 바로 직후에 그 잡족인 구스 여인과 결혼 한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를 보고 동생 미리암과 형 아론이 비난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깊은 속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성적 욕망에서 결혼 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때 100세가 넘었습니다. 성욕 때문이라면 하필 잡족이며 검둥이와 결혼했겠습니까? 모세는 소수 잡족도 품고 사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허물만 보지 않고 용서하며 다독거려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옛 어른들 말씀에도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중을 평안하게 하는 방법은 모두를 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방죽을 흐리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세는 소수 잡족이 문제를 일으키면 온 민족에게 악 영향이 올 것을 심히 염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 모세의 깊은 속을 모르는 미리암과 아론은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그때도 모세는 또 속상했을 것 같습니다. 이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속상하게 할 때 더욱 가슴이 아픈 것입니다. 모세의 깊은 속을 아무도 이해 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결혼을 가장 화내야 할 하나님은 그 깊은 속을 아셨기에 그러한 모세를 보시고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고 우리가 이해 못할 칭찬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 깊은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용서하고 끌어안는 사람을 보면 흐뭇해하십니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5:9절)고 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찬송가 부르기 대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보니 가사를 모두 틀리게 불렀습니다. 목사님 가정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때 목사님도 틀리게 불렀습니다. 유난히 큰 소리를 내어 틀리게 불렀습니다. 교인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성도들이 틀리게 부르는 것은 그럴 수 있는데 목사님이 틀리게 부르는 것이 우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사모님이 일기를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날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찬송가 부르기 대회를 하였다. 이상하게도 성도들이 가사를 거의 틀리게 불렀다. 그래서 내 차례가 되자 일부러 나도 틀리게 불렀다. 사람들은 까르르 웃었다. 그때 나도 속으로 웃었다. 목사가 틀리는데 우리가 틀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만족해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만족하여 웃은 것이다” 사모님은 장로님들에게 이 일기를 보여주면 대성통곡했답니다. 가까운 자기도 목사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었던 것이 부끄럽다면서 눈물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지도자의 깊은 속을 감히 성도들이 알 수 없습니다. 모세의 깊은 마음속을 형제동기간도 몰랐습니다. 우리는 나타난 것만 가지고 함부로 사람을 평하지 맙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난하고 악평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2. 모세의 믿음은 용서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렸을 때 모세는 “그것 봐라, 바로 비방하더니 깨소금 맛이다”라고 고소하게 생각하며 골탕 먹이려 했습니까? 아닙니다. 아론이 와서 미리암을 위하여 기도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그를 고쳐 달라고 강청했습니다. 모세에게는 자기를 면전에서 비방했지만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며 미워하기 보다는 사랑하는 열정이 더 뜨거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왜 똑같이 비방했는데 미리암만 나병에 걸리고 아론은 괜찮 했을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리암이 비방할 때 아론은 동조만 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더 큰 이유는 아론은 금방 회개했으리라 봅니다.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도 모세가 지적하자 아론은 금방 회개 했었습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실수 안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의식 중에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왜 버릇을 못 고치는 것입니까? 깨닫지 못하거나 회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같은 믿음의 사람도 예수님이 고문을 받고 있는 바로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때 “닭 울기전에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뛰어나와 통곡했다고 했습니다.(마26:75절) 그러한 뼈저린 회개 후에 베드로는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두 번 다시 실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더 신중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미리암은 끝까지 씩씩거리며 모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에 모진 문둥병에 걸려 진밖에 쫓겨나 일주일동안 고생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빨리 깨닫고 회개했기에 그래도 고생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에나 빨리 깨닫고 자신을 고쳐가는 진보적인 인생관과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자기 마음을 이해 해주려고 하지 않고 비방하는 미리암을 용서 해 주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 해 주었습니다.
3. 모세는 온유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 고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다 온유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분명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잔뼈가 바다에서 굵어진 능숙한 어부이면서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려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행동을 하던 베드로였지만 말고의 귀를 자를 정도로 성격이 급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온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온유했습니다. 민수기는 누가 썼습니까? 바로 모세 자신입니다. 자신이 자신을 온유한자라고 말할 정도로 모세는 온유 면에서 자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사에 스스로 그렇게 느낄 정도로 자신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온유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으십니까? 모세는 건방진 것이 아니라 온유 면에서는 자신만만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성격은 너무 다혈질인 것 같아요. 일분간의 걸음걸이수가 가장 많은 민족이 한국 사람이랍니다. 식사 시간이 가장 짧기로 유명하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망을 가질 것은 모세도 원래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자기 동족을 괴롭힌다고 사람을 때려죽인 전과자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의 영이 그의 속에 들어가 모세를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미디안에서 40년간 고난의 세월, 고독의 세월을 지내면서 자신을 단련했고 기도 생활 속에서 변화가 왔던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며 변화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며 행동하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의 사람 편을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비방할 때 그의 동생과 형이라도 가차 없이 진노하셨고 하나님은 모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노아가 홍수 사건이후 포도주를 먹고 취하여 실수했으나 그 모습을 보고 비방한 함을 저주했고 노아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보호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도 여러분을 가까이  하십니다. 시73: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오직 자신의 기쁨이요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스 여자와 결혼했고 동생 미리암과 형 아론에게 비방 받으면서도 그들을 포용했고 용서했습니다. 모세는 평화를 사랑했고, 백성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욕을 먹는 것을 달게 참았습니다. 그 깊은 속을 누가 알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아시고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옳은 일에 앞장서고. 희생하면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아시고 우리의 손을 들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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