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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를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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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440회 작성일 09-04-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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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보면 무슨 일이나 누구에게나 고비가 있습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너무 힘들어 그만 올라가고 싶고,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마찬가지 이지만 목회를 하다보면 유달리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고 도우시는 일이 아니라면 아마 목회자 대부분이 중도에 포기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고 끝까지 희생하여 교회를 섬긴 분들은 물질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을 받는 것을 봅니다. 사람마다 세상 살다보면 남모르는 고비가 다 있습니다. 그 중에서 견디기 어려운 고비가 어떤 것입니까?

1. 경제적인 고비입니다.
옛말에도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 안 넘어 갈 사람 없다”고 했습니다. 배고프면 도적질 안할 사람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자녀들이 배고프다고 보챌 때 성현 군자라도 강도질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입니다. 빅톨 유고가 쓴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이 바로 그런 사람 아니었습니까? 열왕기하 6:29절에도 보면 이스라엘의 도단성이 아람군대에 포위당하여 외부로부터 보급품이 차단되자 심지어 비둘기 똥도 없어서 사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 고비를 못 넘어 어떤 여인들은 자기의 아들을 잡아먹었지 않았습니까? 사회학자 파슨스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제일 강한 욕구가 식욕이라고 했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면 그것 같이 참기 어려운 고비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 고비를 못 넘기고 가정을 버리고 도망하거나 이혼을 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까지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려울수록 그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이고 인내며 믿음인 것입니다. 열왕기하 4:1절 이하에 보면 생도의 아내가 빚만 잔뜩 져 놓고 남편이 죽자 채주들이 두 아들까지 종으로 삼고자 했을 때 어떻게 그 절망적인 국면을 극복했습니까?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에게 찾아와 의논했고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기적적으로 극복해 냈으며 빚만 갚은 것이 아니라 남은 돈으로 가족의 생계까지 해결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강하게 붙들어야 할 때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더욱 강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해야 합니다. 요즈음 세계 경제가 어렵다고 움츠려들 필요 없습니다. 인구밀도에 비하여 세계적으로 교회와 교인수가 제일 많은 믿음의 강국인 우리 대한민국이 이제 기적을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들이 하나 되고 크리스챤 모두가 하나 되어 신앙부흥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들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할 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경제난을 제일 먼저 극복하고 기적을 이루는 원동력은 우리 크리스챤들의 믿음에 달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교만과 아집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 죄를 범하기 쉽지만 또 잘 나갈 때 더 큰 죄를 짓기가 쉽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 대표적 인물이 사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는 얼마나 순수했고 겸손했습니까?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를 잃고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하자 사흘 동안이나 찾아 헤맸습니다. 그때 사무엘 선지자를 만났고 사무엘 선지자가 자기와 그의 아버지 집을 칭찬하자 자신은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며 모든 가족 중 가장 미약한자라고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삼상9:21절) 그렇게 겸손했던 사울이 왕이 되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그것을 책망하는 사무엘 선지자 앞에서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들 중 가장 좋은 것을 남겼다”(삼상15:15)고 거짓말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셨는데 자기가 잘해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고 전승비를 세우려고 갈멜에서 길갈로 내려갔다고 했습니다. 세상 가요에도 “있을 때 잘 해”라는 노랫말이 있습디다만 우리들은 없을 때도 잘해야겠지만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승리했을 때 더 겸손해야 합니다. 올라갈수록 더 겸손해야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질책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거역하고...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삼상15:22-23)고 했습니다. 이어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교만과 아집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며 가까이 하십니까? 구약 민수기서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와만 대면하여 명백히 말씀하셨는데(민12:8) 그것은 모세가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고(민12:3), 또 모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민12:7)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아집이 없는 사람을 누구보다 좋아하십니다. 모세도 애굽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잘 나갈 때는 혈기가 대단했습니다. 아무리 의분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을 구박하던 애굽의 병사를 떼려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모세가 40년간 광야로 도망 와서 처가살이를 하면서 자기를 죽였습니다. 교만과 아집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모세를 좋아하셨고 “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고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교만과 아집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사탄 루시퍼(Lucifer)도 그것 때문에 스올(sheol)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14:15) 사탄 루시퍼도 아침의 아들 계명성(啓明星), (금성, 샛별)이었지만 “뭇별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14:13-14) 하고 교만과 아집의 고비를 넘기지 못했기에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의 화신(化身)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어떤 사람도 기준(基準)을 벗어나면 그렇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기준 삼고 보태지도 빼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와 할머니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거기에 “만지지도 말라” 했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는데 “죽을까 하노라”고 자기 마음대로 보태고 빼고 하다 사탄에게 코가 끼워 세상에 죽음을 불러왔지 않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약1:25) 가끔 교만해 지려고 합니까? 그러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약1:5) 절대로 교만과 아집의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다 먹은 밥에 코 빠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생을 열심히 살다가 말년에 땡하고 불합격 종을 치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잘 믿고 살아오셨습니까? 끝까지 겸손해 지시기 바랍니다. 요단강 건널 때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합시다. 교만하지 말고 순종합시다. 충성합시다. 사울 왕처럼 하나님께 외면당하면 끝장입니다. 인생 테이프를 잘 끊읍시다. 신앙의 골든벨, 인생의 골든벨을 꼭 울립시다.

3. 믿음의 고비를 잘 넘깁시다.
믿음 생활은 한마디로 선(善)한 싸움입니다.(딤후3:17, 4:7)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의 기준은 세상에서 윤리 도덕에 기준을 둔 그러한 선이 아닙니다. 우주의 근원이 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뜻이 곧 선(善)입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볼 수 있고 생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선의 기준은 곧 성경말씀입니다. 이 선한 싸움에는 반드시 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적이 없으면 싸움이 될 리 없지요. 그 적은 누구입니까? 하와와 아담을 타락시킨 악의 화신인 사탄입니다. 이 사탄은 음부에 갇힐 때까지 우리를 괴롭히고 믿음에서 넘어뜨리려고 마치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벧전5:8-9)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봅시다. 그들은 유대나라에서 바벨론에 붙들려온 인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결단코 신앙의 정절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왕의 총애를 받는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음해하는 자 들 앞에서 느브갓네살왕의 금신상 제막식 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겠다는 왕명이 떨어졌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적발되어 왕 앞에 끌려갔는데 왕은 사정했습니다. 다시 한 번 풍악을 울릴 테니 절하고 죽음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죽으면 너희만 억울하지 않겠느냐? “풀무불 가운데서 건져 낼 신이 어디에 있겠느냐?”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대범하게도 “하나님이 풀무불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절) 그러나 그 다음이 더욱 놀랍습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18절)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풀무를 평상시 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했고 그들을 극렬히 타는 불속에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풀무 밖에서 그들을 던진 사람들은 타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꽁꽁 묶어 불에 던져진 세 사람이 신들의 아들 같은 다른 한 사람과 유유히 풀무 불 가운데서 걸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신비하여 왕이 직접 가서 그들을 나오라고 하니(28절)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으며 불탄 냄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이방나라 왕 느브갓네살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는 자는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 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29절) 또 더욱 감사한 것은 왕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승리입니다. 사탄이 제 아무리 정치세력까지 동원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 해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책임져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신앙의 10부 능선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믿되 이처럼 절대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만을 믿고 풀무불도 두려워하지 않은 그들을 하나님은 결코 방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고 했습니다.(딤후3:17절) 선한 싸움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와의 약속입니다. 그 말씀은 선(善)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는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절)고 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운 고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고비를 잘 넘기는 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내일의 소망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더욱이 믿음의 고비를 그때그때 지혜롭게 잘 넘기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골든벨을 꼭 울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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