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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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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9,668회 작성일 09-03-07 11:40

본문

본문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지도자라도 보통지도자가 아닌 지금 같으면 국회의원급 인사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적 율법주의자들이었으며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분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찾아와 대화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대화의 내용 속에서 니고데모는 보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인 생명과 영혼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한 해답을 얻어보려는 내면적 갈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교만과 아집이 왜 무서운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 이외 남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더 이상 성장하거나 변화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기형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 잘난 맛에 사는 비교 견적이 불가능한 불량품 인생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의 인간됨이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을 음미 해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인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찍이 고(故) 김활란 박사도 여성의 네 가지 덕목에 대하여 말한바 있지만 바로 니고데모는 그 아름다운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1. 니고데모는 말씨가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말씨를 몇 마디만 들어보아도 그 사람의 인품과 교양을 대강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자기평가의 기준입니다.
우리 한국은 아름다운 말이 많기로 유명한데 근래에 와서 남을 대접하는 용어가 자꾸 줄어 우리말을 아끼는 사람들의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더욱이 요즈음 젊은이들의 은어를 들어보면 얼마나 가관입니까?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고맙습니다” 등 한국적인 겸비는 사라지고 “안미, 또잔” 하며 히히덕거리는 아이들을 지하철에서 보면서 노는 것은 귀여운데 가슴은 아팠습니다. 공자(孔子)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에 어긋나는 말씨가 곧 자기를 깎아 내리는 결과를 낳고 인간관계를 파괴합니다. 교회에서 더욱 본을 보여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기왕이면 높임말을 써 주어야 하는데 하물며 자기보다 나이가 좀 어리다고 함부로 직함대신 이름을 부르고, 야야 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하지 말을 것은 남의 말 내하면 남도 내 말하는 것이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하는 시조가 기억납니다. 이것은 생각 없이 뱉는 말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므로 나의 말씨를 언제나 곱게 다듬어야 한다는 옛 선현(先賢)의 교훈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란 사람은 당시 국민의회의 의원으로 지위가 높은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과는 인간적으로 비교가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갓 30세의 햇내기고 목공 노동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백전노장 일뿐 아니라 바리새파 학자로서 당시최고의 지식인이었는데 예수는 학교 문턱도 못 가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굉장한 니고데모가 예수를 방문하여 첫 마디로 한 인사를 보십시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유대교의 성직자를 Rabi라고 부릅니다. 랍비는 그 당시 최고의 존칭으로서 “대 선생님”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말입니다. “대 선생님, 당신은 어느 모로 보든지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짧은 인사 속에 우리가 배워야 할 니고데모의 인격이 듬뿍 스며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를 낮출 줄 아는 겸손입니다. 둘째는 상대방을 칭찬할 줄 아는 너그러움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남을 사실 그대로 인정해 줄줄 아는 솔직함입니다. 이 말씨는 예수의 향기를 떨치기 위하여 필요한 세 가지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겸손과 관대와 솔직, 이것은 크리스챤 인격의 시금석(試金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맵시와 솜씨입니다.
이것은 몸매나 손재주를 말하는 동시에 그 근본이 되는 몸가짐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성경을 공부하고 나서 예수님의 생활 교훈을 세 가지(christs three nots)로 요약(要約)하여 영문 수필을 썼습니다. 춘원은 “예수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seek the kingdom 곧 천국을 찾으라인데, 천국을 찾는 생활로서 예수님이 제시(提示)하신 것은 결국 Lie not(거짓말 하지 말아라), fear not(두려워하지 말라) worry not(근심하지 말아라)이라고 했습니다. 문학인의 성경공부이지만 참으로 예수님의 교훈을 요약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 세 가지는 두고두고 예수님이 강조한 생활 교훈이었습니다. 첫째로 “너희 생활에서 거짓된 부분을 없애라. 가면(假面)을 벗으라, 이중성(二重星)을 탈피하라, 어린아이와 같이 벌거벗으라 하나님 앞에 솔직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떨지 말아라, 비겁한 행동을 말아라 떳떳하게 가슴을 펴라, 흔들리지 말고 자기의 갈 길을 가라, 사람을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또 춘원이 요약해 본 마지막 교훈은 “근심하지 말아라, 구질구질해서는 못쓴다. 절망하지 말아라 걱정과 의심을 다 버리고 하나님을 믿어 밝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동하고 이렇게 사는 사람을 몸가짐이 아름다운 맵시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바로 이런 맵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국민의회의원 중에 아리마데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공감(共感)하고 예수님을 존경하였으나 예수님 생전(生前)에 한 번도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뒤에야 겨우 용기를 내어 자기의 무덤을 제공한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체면을 위하여 예수님을 멀리했고, 환경에 따라 물결에 따라 쉽게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가지 않았으며, 권력자의 힘과 로마의 칼이 무서워 바른 줄 알면서도 예수님이 옳다고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요시찰(要視察) 인물인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자기의 문제,  자기의 인생문제, 천국을 찾기 위한 용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정말 진리이고, 신앙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희생을 전제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간 것은 무서워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복음 7:45절 이하를 읽지 않고 하는 악평(惡評)입니다. 그곳에서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과 당국자들에게 “너희들이 믿는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해도 되는 것이냐?”고 당당하게 힐난했었습니다. 니고데모는 관권(官權)앞에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변호했었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은 것은 자기의 중요한 문제를 조용한 시간에 신중하고 단둘이 오붓하게 지도받기 위해서 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헤롯당도, 로마인도, 바리새인도, 사두개인도 반대하고 오직 가난한 민중만이 따라 다니는 젊은 예수, 요즈음 말로하면 대통령도, 행정부도, 입법부도, 학자들과 종교계까지 외면하는 한 복판에서 국회의원 자리에 있는 사람이혼자서 “예수는 옳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경우인데 그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니고데모는 맵시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마음씨입니다.
말씨도 맵시도 결국 마음 여하(如何)에 달렸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의 전부를 완성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참 아름다움은 정신미(精神美)에서 나옵니다. 칸트(kant)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둘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별이 수놓은 밤 하늘이요 또 하나는 진실이 수놓은 사람의 가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별이 뜬 밤 하늘은 자연미의 극치이요, 진실한 가슴은 인간미의 극치입니다. 김학연씨의 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요전(堯田)을 갈던 사람 수려(水廬)를 못 면하고, 탕전(湯田)을 갈던 사람 일간우(日干憂)를 어이할고 아마도 무우무려(無憂武慮) 한 것은 심전(心田)인가 하노라 이 말은 요(堯변) 임금의 시대에도 9년의 홍수가 있었고, 탕(湯) 임금의 태평 시대에도 7년의 가뭄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임금 밑에서 또 좋은 조건 속에 살아도 농사를 짓다보면 물 걱정, 가뭄 걱정을 안 할 수 없는데 이런 걱정과 근심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은 마음 밭을 가는 길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만사태평하고 잘 되어 가다가도 인간에게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봉착한다는 말입니다. 병으로 누울 수도 있고, 집안에 일이 생기고,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사업이 실패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 틀림없이 모든 사람에게 닥치는 큰 벽은 불원간 생명이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귀중하게 더 많이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니고데모의 인생철학입니다. 니고데모는 국회의원이며 바리새파 신자였습니다. 지위와 돈과 학식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은 것은 더 높은 명예를 얻고자 함도 아니요, 더 많은 돈을 벌려는 목적도 아니고, 더 많은 지식을 얻으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생명의 문제, 자신의 영혼문제, 자신의 정신문제를 해결하려는 심각한 씨름이었습니다. 이러한 니고데모에게 주신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했습니다. “당신이 다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춘원의 지적대로 결국 천국을 찾는 것인데(to seek the kingdom) 마음의 천국이든, 지상 천국이든, 내세(來世)천국이든 천국을 소유할 사람은 먼저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말씨가 아름다워지고 맵씨와 솜씨가 아름다워지고, 마음씨가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과거의 인간 김 아무개, 박아무개는 죽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관을 가진 새 인간으로 다시 탄생하는 결심, 나비와 같은 탈바꿈, 나 중심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의 생활 혁명, 봄바람이 불고 새싹이 움돋기 시작하는 3월의 대자연과 같은 새로운 인생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마음의 천국 즉 개인의 행복도, 세계의 평화도, 영생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그 말씀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새싹이 움트는 이 새봄에 우리도 탈바꿈하여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사람들로 거듭납시다. 내가 변해야 가정도, 이웃도, 교회도, 세상도 변합니다. 우리 이봄에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나는 그리스챤들로 모두 변합시다.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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