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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왜 오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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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652회 작성일 08-12-0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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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절을 다 같이 한번 봉독하십시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천사들은 11절에서 목자들에게 분명히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왜 하필이면 짐승들이 사는 썩은 오물 냄새가 나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야 했습니까? 그 분은 호화로운 왕궁에서 비단 보좌기에 쌓여 태어나야 할 분이셨습니다. 적어도 부자 집 안방에서라도 태어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시끄럽고 북적되는 여관방 한 칸도 못 얻었기에 구세주 예수가 말구유에 태어나야 했습니까?
그것은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명령을 내려 고향으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여관방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관방 부인들은 돈 벌 욕심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때 바가지요금으로 한탕 하겠다는 야심이 만만했습니다. 마치 바캉스 철에 관광지 장사꾼들처럼 이때 왕창 한 몫 챙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눈에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상품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마리아의 부르짖음 따위는 귀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추운 밤 길바닥에서 아이를 낳아야 할 아내의 애절한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방 한 칸만 달라고 애원했을 요셉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비참 했었습니까? 그러나 끝내 어느 누구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행여나 자기 여관방 손님이 떨어질까 봐 아멸차게 거절하며 등을 떠밀어 쫓아냈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리 태어날 아이가 구세주인 것을 몰라서 그랬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야박한 인심입니까? 여관방 주인들은 나중에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자기 집에서 낳게 했더라면 천세 만세 두고 기념관이 되었을 것이며 방세 좀 더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기만 했어도 그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만세에 이름이 남았고 또 성경 로마서 16장에 보면 시몬의 아들 루포와 그 아내까지 구원 받아 바울의 문안 인사를 받지 않았습니까?(13절) 여러분! 더럽고 초라한 마굿간 말구유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는 분명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관방 주인들처럼 후회하는 과오를 범하지 맙시다.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하지 맙시다.
※한탕주의 때문에 예수님을 거부하지 맙시다.
※교만 때문에도 거부하지 맙시다. 마음을 비웁시다. 그리고 구세주를 영접하십시다.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들이 모두 그렇게 거절 했는데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왜 그 더러운 마굿간을 마다하시고 태어나셨습니까?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땀에 젖은 헤어진 보자기에 싸여 추위에 떨면서 우리네 세상에 오신 것입니까?

1. 우리를 구원하시기 오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태어나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운 사람들과 헤어지지 않고 항상 젊고 싱싱하게 산다면 얼마나 태어난 보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인생살이가 어떻습니까? 지금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생입니다. 아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교를 시킨다고 어머니들이 엎어서 자면서 아이들을 누른답니다. 그래야 짱구 머리가 되어 두뇌가 발달하고 강해진다나요? 태어나자마자 걸음마 훈련, 탁아소, 유치원, 그 놈의 징그런 학원을 빙빙 돌리고, 입학시험, 취직 시험 얼마나 힘듭니까? 직장에 들어가서는 또 경쟁, 경쟁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어 죽습니다. 괴로운 쪽으로 생각하면 인생이 억울해요. 소크라테스는 돼지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행복이라고 했는데 요즈음은 돼지 신세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여러분! 인생이 이렇게 끝난다면 정말 억울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소망으로 오셨습니다.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오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루시고 영원히 죽지 않고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래서 천사가 목자들에게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오늘 분명히 천사들도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때 천군 그 천사와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나님께 찬송을 했습니다. 오늘 성탄의 주인공인 아기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이 확 바뀌었습니다.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하여 주전(B. C)과 주후(A. D)의 역사로 나뉘어졌습니다. 성경도 예수님이 오시기전에는 율법시대였으나 오신 후에는 복음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오늘 성탄의 주인공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천지의 개벽 자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그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질병도 고쳐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질병이 찾아왔고 그 질병으로 고통 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우리의 그러한 고통을 보고만 계시지 않았습니다. 38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 12년간 혈루 병든 여인을 고쳐주셨습니다. 문둥병자들을 낫게 하셨고 소경이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우리들의 영도 육도 살려주시고 우리에게 세상을 사는 동안도 평안을 누리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18절에 보면 성령님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도 평안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제일 먼저 팔을 벌리시고 “평안 할지어다”하고 축사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이렇게 우리의 소망이요. 구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어두운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요1:9) “세상은 바로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0-12절)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예수를 영접하여 여러분들의 마음도. 생활도 밝아지시기를 원합니다. 그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자기 백성 가운데 오셨습니다.
옛날에 현명한 임금들은 백성들의 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허름한 옷차림으로 미행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너무도 안타까우셔서 직접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자기 땅에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던 것입니다.(요1:11) 예수님은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누추한 외양간에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비천한 자세로 오시어 우리 인간의 밑바탕을 직접 경험하시고 친히 몸으로 체휼 하셨습니다. 태어나시면서 화목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그곳에서 노동자인 목자와 존귀함을 받는 학자들인 박사(magi)가 만나게 했습니다. 그것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노동자와 학자, 못 배운 자와 배운 자, 현 주민과 외국인의 만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고요 속에서 빈부의 화합, 지식의 융합, 인류의 평등 평화를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탄절에 사랑과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너와 나의 사이가 무너지고, 동서가, 남북이 하나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과 하늘과 죄인과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성탄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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