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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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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1,082회 작성일 08-10-0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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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부자 집 열한 번째 아들이요, 아버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제일 총애를 받고 자랐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창세기37:12절 이하에 보면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던 형들에 의해 은20냥에 싸구려로 애굽에 팔려와 노예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비통하고 절통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맑은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이지 이 어찌 기구한 운명입니까?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 옷까지 벗겨진 채 애굽으로 끌려올 때 당시 17세였던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 달라고 얼마나 울면서 소리쳤겠습니까? 애원하면서 발버둥 칠 때 그 절통함이 어떠했겠습니까? 메마른 사막까지도 진땀이 날 정도로 아픔에 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13년 후에 극적으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요셉은 초 대강국 총리대신이 되어 있었고 자기를 죽음보다 더 처참한 노예로 팔아버렸던 형들은 흉년으로 죽게 되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지금 요셉 앞에 와 있습니다. 그동안 요셉은 짐승처럼 노예생활을 했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감옥생활까지 했었습니다. 그러한 요셉이 형들을 볼 때 얼마나 분노가 끓어올랐겠습니까? 예사 사람 같으면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능치 처참을 해도 시원찮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보십시오. 자기 앞에서 고양이 앞에 쥐처럼 덜덜 떨고 있는 형들에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5절을 함께 봉독해 봅시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관용입니까? 이 요셉의 말속에는 그 동안도 그러한 생각으로 살아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providence)이라는 믿음에 기준을 가지고 살았기에 고통스런 노예생활도 잘 극복할 수 있었고 비참한 감옥 생활 가운데서도 오히려 남을 도와주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오히려 형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며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요셉은 신약에 오실 예수님의 모형이었습니다.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엡3:19절 참조, 사55:8절) 예수님은 우리의 어떤 죄과나 허물도 다 용서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1. 생각을 바꾸면 나 살기가 편합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의 처사가 분하고 원통하여 복수의 칼을 갈고 살았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울화병이 나서 죽었거나 감옥에서 자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설령 용케 살아났다고 해도 그 동안의 생활이 얼마나 지옥같이 괴로웠겠습니까? 또 형들을 만나 보기 좋게 보복을 했을 것이고 피비린내 나는 숙청 바람이 불었을 것입니다. 나아가서 아버지 야곱과 한 어머니의 동생 베냐민까지도 굶어 죽었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장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착한 마음으로 살았기에 그 동안의 삶이 결코 고통스럽거나 괴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며 최선을 다했기에 노예 생활을 할 때의 주인 보디발에게도 인정받았고 옥중에서도 옥사장이 신임하고 모든 일을 위임 해 주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꾸면 나 살기가 편하고 남에게도 유익을 끼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눈여겨보시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실 뿐 아니라 놀라운 축복을 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두 세가지 고민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고민에 빠지면 머리가 뒤숭숭 해져서 마음도 굳어집니다. 출구가 없는 터널에 들어선 것처럼 주위를 충분히 볼 수 없게 됩니다. 이 굳어진 머리와 마음을 풀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효과적이겠습니까? 이럴 때는 한쪽 편에 고정된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돌려 버리는 것입니다. 이 발상(發想)법을 “흔들이 추 발상”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사고방식이나 심리적 활동을 하나의 흔들이 추(錘)로 보고 고정(固定)된 상태에 빠졌을 때 즉시 자기의 흔들이 추를 흔드는 것입니다.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자기가 있는 곳에서 정 반대편으로 흔들어 보세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치 우리 안에 갇혀있는 백곰처럼 저녁내 내 자지 않고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아직 안 주무세요?” 하고 묻자  “내일 돈을 갚아야 하는데 불안해서 잠이 오나”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그때 부인이 “그러면 당신 갚을 방법이 있어요?” 하고 묻자 “없지, 있으면이야 내가 왜 이러고 있겠느냐?” 그때 부인이 “그래요! 그렇다면 주무세요. 잠 못 들어 서성거리는 쪽은 받을 사람일테니까요?”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인의 발상이 바로 추발상입니다. 서성거린다고 해결이 안 될 바에야 그날 밤은 푹 자고 내일 또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여러분! 머리를 흔들어 보세요. 너무 무슨 일이나 외골수로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을 바꾸면 딴 세계가 보입니다. 나도 불교 쪽 사고를 가지고 그쪽으로만 생각할 때는 기독교가 우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니 기독교가 바로 진리의 종교였으며, 생명의 종교요, 구원의 종교였습니다.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되는 쪽으로 생각해 보세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잠을 푹 주무실 수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일단 나 살기가 편해집니다. 세계가 넓게 보입니다. 나 때문에 남이 행복해지고 나는 의외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의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생각을 바꾸면 지혜로워집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왜 실패합니까?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정 때문에 오기가 생기고, 감정을 진정 못할 때 폭력적인 사람이 됩니다.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때 악담을 하게 되고, 억지소리로 폭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권면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과 실패, 죽고 사는 것이 마음 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잘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감정을 잘못 다스리면 말 한마디로 홀랑 까먹어 버리고 오히려 친한 사이가 원수로 변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감정에 치우치면 지혜가 떠납니다. 생각을 바꿀 때 지혜로워집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 운명의 여신은 미소를 보내지 않습니다. 요셉은 얼마나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잠언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다”(잠3:15절)고 했는데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지혜 중에 가장 뛰어난 지혜는 우주의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해 충성할 수 있었고 형들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지 않았기에 기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을 때도 생각하며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겠습니까? 그러나 감정을 잘 다스렸습니다. 이러한 사건 속에도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으리라고 믿고 참을 수 있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감옥 속에서도 봉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죄수들을 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고 분한 악 조건 속에서도, 험난한 인생길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혜의 등불을 꺼지지 않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요셉에게 하나님은 지혜를 더해 주셨습니다.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 해 주고 후에 애굽 바로왕의 꿈을 해석 해 주므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때문이었습니다. 악한 감정을 버리고 모든 것을 순리로 생각하는 사람, 곧 생각을 바꾸고 차분히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무진장한 지혜를 공급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무리 많이 쌓은 지식도 지혜로 바꿀 수 없는 한 그 가치가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책을 등에 쌓은 당나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이 나온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분명히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집은 지혜에 의해 세워지고 예지에 의해 탄탄해진다” “밥은 지혜라는 보물로 채워져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힘이 새진다” “학자가 초대되지 않은 식탁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혜를 매우 존중했습니다. 그들은 지혜 있고 탈무드에 정통한 사람은 세금도 면제 받았습니다. 탈무드는 “사람은 지혜에 의해 존경받고 친절에 의해 사랑 받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생각을 바꾸지 않고 형들을 미워하는 악심을 품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일시적인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지혜로워집니다. 생각을 바꾸면 지옥도 천국으로 변합니다. 미워하던 사람이 사랑스런 사람으로 변합니다. 원수도 더 절친한 형제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우습게보면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취급합니다. 원수라도 용서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면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에게 잘해 주기를 먼저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잘 해 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왜 교회에서도 직분을 받고 신앙이 잘못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더 지혜롭고 친절하여 존경받게 되지만 대부분 직분을 명예로 생각하여 먼저 대접을 받으려는 교만 때문에 신앙까지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 밑으로 말꾼이 모이고 불평꾼이 모여서 자꾸만 감정을 더 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합니까? 하나님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축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신앙생활에 승리자입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넘어뜨리는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부인이 평상시에 얼마나 잘해 주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인정과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도 사람인데 왜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감정에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생각을 바꾸었을 때 모든 고통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기쁘게 살 수 있었고 오히려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우리 교회 창립 28주년 기념주일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요셉 같은 신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요셉처럼 무슨 일이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므로 믿음에 승리하고 세상에서도 축복받기를 원합니다. 바울사도는 전도하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골로새 교인들의 신실한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뻐했습니다. (골1:3-4절) 이것이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의 심정처럼 목회자의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한 번도 교회가 찌국 짜국 하는 불화가 없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고 주위가 허술 할 뿐 아니라 언덕배기에 위치한 좋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성도들은 꾸준히 믿음을 잘 지켜왔고 그런 가운데서도 수양관 건축, 양로원 운영 등 많은 일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용해동교회는 성도들이 사랑으로 뭉쳐진 부자 교회라고 실상보다는 소문이 잘 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하느라고 힘들어도 사람들이 또 다른 교회들이 부자 교회라고 하면 그들의 말 그대로 부자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믿음만 넉넉하여 부자가 된다면 무엇이 기릴 것 있겠습니까? 앞으로 수양관 확장 공사와 양로원 확충을 해야 할 일이 산재 해 있습니다만 능히 다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들이 그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사람들을 후원하십니다. 에베소서 5:15절 이하에 “그런 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노력이 더욱 요구됩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생각을 바꿉시다. 요셉은 자신의 감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쫓았습니다. 패배 의식을 버리고 큰 꿈을 꾸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미운 생각을 버리고 용서했습니다. 원수 같은 형제들을 오히려 사랑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넓은 세상이 보입니다. 미래가 보입니다. 천국이 보입니다. 해가 지는 서쪽만 보지 말고 머리를 시계추처럼 돌려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십시오. 요셉처럼 마음의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세상을 가슴에 품읍시다.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사랑합시다. 큰마음을 가진 사람이 큰 일 합니다. 큰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서 큰 후손이 나옵니다. 큰일을 꿈꾸는 교회가 큰 일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창립28주년을 맞은 우리 용해동 교회위에, 이 교회를 손이 갈퀴같이 거칠어지도록 일하며 섬겨 온 모든 성도님들과 가정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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