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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거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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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032회 작성일 08-02-2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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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모처럼 나들이를 갔습니다. 한참 걷다가 피곤함을 느낀 할머니가 “영감 나 좀 업어 줄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업어주기가 싫었지만 나중에 들을 잔소리가 겁이 나서 할머니를 업어주었습니다. 업혀가던 할머니는 조금 미안했던지 “나 무겁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왜?” 하고 묻자 할아버지는 “머리는 돌덩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으니까 그렇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쳤습니다. “할멈 다리가 아파, 나 좀 업어주라” 하자 할머니가 갈 때의 일도 있고 해서 할아버지를 업어주었습니다. 이에 미안한 할아버지가 “나 무겁지?” 하면 자기를 따라 할 것 같아 “나 가볍지?”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가볍지!”라고 하면서 “머리는 비었지, 입은 싸지, 허파엔 바람만 잔뜩 들었으니까”라고 대답 했답니다. 이 예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상대방이 듣기 싫은 농담은 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잘해야 남도 나에게 잘합니다. 내가 잘못 대접하면 남도 나를 푸대접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복의 근원은 나 자신입니다. 모든 원인은 내게 있습니다. 남을 탓하지 말고 내가 더 잘합시다. 더욱이나 우리 크리스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창12:2-3절)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복의 근원입니다. 나로 인하여 남이 복을 받게 합시다. 남을 복 받게 하면 누가 또 복 받습니까? 내가 풍성한 복을 받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에서 그러한 주인공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입니다. 그 과부는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1. 남을 먼저 살려 주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역에 가뭄이 오래 계속되어 경제적으로 극심한 불황이 있었습니다. 시돈 지방 사르밧에 한 과부가 아들 하나와 살고 있었는데 식량이 바닥이 났습니다. 겨우 가루 통에 밀가루가 조금 남았는데 두 식구가 한 끼 먹기에도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그것도 버티고 버티면서 남겨놓은 마지막 양식이었습니다. 이제는 자기도 허기가 져 죽을 지경이지만 밥 달라고 보채는 아이를 볼 때 도저히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마지막 빵을 구워 먹기 위해 땔감을 구하러 나왔습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곳까지 와서 그 여인에 다가와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굶주리고 지친 이 여인은 짜증도 날법했지만 친절하게 물을 떠오려고 돌아서는데 엘리야는 다시 여인을 불러 물 뿐 아니라 배가 고프니 떡 한 덩이만 갖다 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여인은 너무 기가 막혀서 자기들도 이제 한 움큼 남아 있는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13-14절에 보면 두려워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 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대로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이 성경이야기는 믿음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통속에 남아있는 가루의 양은 분명히 두 식구의 한 끼 양식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지식의 범위입니다. 그러나 그 사르밧 과부는 그 가루를 엘리야에게 제공하는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간의 계산을 초월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말은 쉽지만 내가 그 경우였다면 과연 그 여인처럼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요? 여러분은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못했을 것 같아요? 성질을 내면서 엘리야를 쫓아버렸을 것 같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그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자기보다 남을 더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남의 배고픈 것을 더 가슴아파했습니다. 자기 생명보다 남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자기가 죽더라도 먼저 남을 살려놓고 보겠다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놀라운 결단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그 여인의 성품과 믿음을 알았기에 엘리야를 그곳에 보내셨고 그 여인에게 복을 내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남을 먼저 대접했더니 풍성한 복을 받았습니다. 남을 살려 주었더니 자기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남에게 먼저 베풀 때 하나님께서 감동하시고 축복하신 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더 인정머리 없고,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랑이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내가 사르밧 과부와 같이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 주인공이 못 되는 것을 더 가슴 아파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믿음은 시험을 거친 믿음이었습니다. 불황속에서 믿었고, 배고플 때 바쳤고,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바로 가루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거꾸로 뒤 바꿔서 가루통이 넘치면 바치겠다고 하고, 모든 일이 순조로울 때 믿겠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믿음이 아니라 장사속(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믿음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난번 상그리야 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이게 무슨 3,000원이냐고 너무 비싸다고 어떤 분이 투정하자 다른 장로님이 이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투자된 것은 생각하지 않느냐? 고 했습니다. 선선하게 에어컨을 틀어주고 써빙하는 종업원들 비용까지 계산한다면 사실 비싼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사실을 제처 두고라도 저 하늘과 이 땅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사시사철 좋은 기후 속에서 이른 비와 늦은 비에 자란 곡식을 먹고 살면서 감사에 인색할 수 있습니까? 조금 깨달은 사람이라면 예수 잘 믿자는 소리에 신경질 내지 못할 것입니다. 예배 좀 잘 드리자는 말이 그렇게 귀찮습니까? 더더욱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장차 그 좋은 하늘나라까지 유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커피 값 정도 헌금 하는 것이 아깝습니까? 십일조 드리는 것이 아깝습니까?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간부들에게 저 놈들은 놀고먹는다고 불평합니다. 일은 우리가 혀 빠지게 하고 봉급은 저놈들이 다 가져간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사람들이 투자한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남들 놀 때 공부하느라고 궁둥이에 땀띠가 나고 밤잠 한잠 못 자고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또 학비로는 얼마나 투자했습니까? 다 거져 남보다 높아지고 지도자가 된 것 아닙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너무 쉽게 돈 벌고 너무 쉽게 출세하려고 합니다. 저는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교회가 어려울 때 함께 땀 흘리고 고생한 사람을 잘못할 때 책망은 해도 버리지 않습니다. 역사(歷史)를 중요시합니다. 자기는 별로 수고하지 않고 남을 깎아 내리는 사람도 잘 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더욱 천국 가는데 그렇게 쉽게 가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을 코끼리가 비스켙 얻어먹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되 시험을 거친 믿음의 사람을 쓰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 노아, 요셉, 모세, 다니엘, 신약의 베드로, 바울 누구나 시련을 이기고 죄와 투쟁하여 시험에 합격한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분! 연세대학이 세워지고 우리나라에서 복음사역에 생애를 바쳐 많은 영혼들을 구원한 언더우드를 잘 아시지요? 그가 어렸을 때 하도 울기만 하니까 주일학교 선생님이 골치가 아팠답니다. 그래서 우는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생활이 너무 어려워 다른 아이들은 헌금을 하는데 자기만 못하니까 운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5천원씩을 주면서 매 주일마다 천원씩 헌금하고 이제는 울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다음 주일부터 또 웁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래 왜 또 우느냐? 고 했더니 지난 주일에 하나님께 몽땅 헌금을 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언더우드는 나중에 신학을 하고 박사가 되어 우리나라에 와서 엄청난 일들을 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믿음을 보시고 접근하십니다. 사르밧 과부는 시험을 거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 여인을 통하여 엘리야가 살았고 엘리야가 살았기에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을 위해서도 큰일을 했지만 하나님을 위해서 큰일을 해냈던 것입니다. 물론 믿음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프고 때로는 외로운 길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르밧 과부, 불황속을 헤치며 믿음의 생활을 해 보려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눈동자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일어나라, 시돈땅 사르밧으로 가거라. 내가 그곳 한 과부에게 너를 영접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이 가난한 과부에게 계획이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하나님의 축복 보따리를 가지고 달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눈동자로 여러분을 보고 계십니다. 불황속에서 어린아이를 껴안고 외로이 헤매고 있는 그 과부는 혼자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한 웅큼의 가루로 마지막 식사를 비장하게 준비하듯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주의 성찬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기념(기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친히 흘린 눈물, 그의 피, 그의 고독, 그의 사랑, 그의 죽음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남을 먼저 살리는 정신과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검증된 믿음의 사람을 축복하시고 쓰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노력으로 축복받고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힘들기 때문에 더 큰 보상이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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