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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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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2,049회 작성일 08-02-2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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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은 가계적으로 어떤 사이였습니까? 처남 남매지간이었습니다. 물론 사울왕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다윗이 죽게 하려고 정략적으로 작은 딸 미갈과 결혼을 허락했으나 다윗과 미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기에 결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울왕은 결혼 조건으로 블레셋 사람의 표피 100개를 요구했는데 다윗은 부하들을 시켜 200개를 가져왔기에 할 수 없이 미갈과 결혼하게 했던 것입니다.(삼상18:27절) 1차 다윗을 제거하는데 실패한 사울왕은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는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죽이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다윗을 심히 좋아했다고 했습니다.(삼상19:1) 그래서 다윗에게 사울왕의 속셈을 전해주고 몸을 피하도록 정보를 제공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누이의 남편이었기에 그의 생명을 사랑했던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사울 왕처럼 정권에 눈이 멀었다면 자기가 앞장서서 다윗을 제거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매부이기 전에 다윗은 요나단의 왕위 계승권을 빼앗아 갈 수 있는 강력한 라이벌이요 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왜 아버지 사울왕의 지령까지 거부해 가며 오히려 다윗을 사랑했었습니까?

1. 다윗에게는 영적 매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윗이 물매와 돌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도 놀랐겠지만 다윗에게는 범상한 매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들레헴에서 그 당시 가장  천한 직업인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아버지 사울 왕과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그때 벌써 요나단의 마음과 다윗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다고 했습니다.(삼상18:1) 그때는 누이 미갈과 결혼하기 훨씬 이전이었습니다. 18:3절에 보면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 자기가 입었던 겉옷까지 벗어 다윗에게 주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까지도 그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을 끄는 영적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진실미가 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다정감이 있습니다. 위엄이 있습니다. 용기가 있습니다. 자신감이 있습니다. 믿음이 갑니다. 의리가 있습니다. 남의 생명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은 경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합니다. 그러므로 남이  먼저 알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했고 그랬기에 사울은 그를 군대장관으로 삼으니 온 백성들과 사울의 신하들이 모두 합당하게 여겼다고 했습니다.(삼상18:5-6)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남이 먼저 높여 줍니다. 남이 먼저 알아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높아지려거든 먼저 낮아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요즈음은 모두 자기 피알(P. R) 시대라고 해서 구렁이 제 몸 취듯 자기를 나타내려고 얼마나 가관들입니까? 피알은 피 터지게 자기를 알리는 것이랍니다. 또 어떤 사람은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이라고도 합디다. 그러나 대선 후보자들을 보면 진짜 피 터지게 자기 알리기에 기를 쓰더구만이요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얼마나 알리려고 했었습니까? 병자를 고쳐 주시고도 오히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시기까지 했습니다. (막7:36) 여러분, 금이 오물이라고 한다고 오물되고, 오물을 금이라고 한다고 해서 금이 됩니까? 자기의 가치는 자기에게 있습니다. 자기를 잘 갈고 닦읍시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었기에 영적 매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시고 말씀으로 다듬어져서 다윗처럼 영적 매력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도 그렇게 되어 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서로를 위해서 주의 사랑으로 함께 기도해 줍시다.

2. 요나단은 의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사람을 보는 눈이 올발라야 합니다. 함부로 경솔히  사귀지도 말고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고 잘 판단하고 믿기로 작정하였으면 송곳 끝나올 때까지 믿어야 합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덕이 죽 끓듯 하면 안 됩니다. 요나단을 보세요.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과 언약을 맺은 후로 어떻게 했습니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보다도 언약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신의 유익과 영달만을 노리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아버지 사울왕의 편을 들어야 자신에게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버지라고 해도 부당한 것에는 편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물론 효도도 하고 어른도 존중해야 하지만 언제나 진리 편에 바로 서야 할 줄 믿습니다. 특히 진리이신 주님과의 언약은 절대로 지켜야 합니다. 요나단은 감히 아버지 사울 왕에게 바른 충언을 했습니다.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19:4) 그러나 사울에게 악한 영이 들어갔으므로 사울은 아들 요나단의 강청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상20:33절에 보면 자기 아들 요나단까지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오늘 본문 삼상20:17-23절에도 보면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처럼 그를 사랑했고 다윗과 맹세하였기에 끝까지 다윗의 생명을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고 다윗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의리를 지켜 다윗을 들에 숨게 하고 활을 쏘아 신호로 사울왕의 살의(殺意)를 알려 주므로 다윗의 생명을 구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울처럼 영성이 흐려지면 안 됩니다. 심령이 병들면 마귀가주장합니다. 공연히 남을 의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면 안 됩니다. 남이 잘된 것을 보고 박수 쳐 주고 기뻐하면 자기도 그런 날이 옵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면 자기가 잘 되어도 남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갖습니다. 남의 말을 듣고 쉽게 의심하거나 함부로 경솔한 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요나단처럼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입니다. 인정 때문에, 이권 때문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일하다가 개를 한 마리 발견하여 집에 데려다 식구처럼 잘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사람이 늑대개여서 나중에 큰 화를 입을 수 있다고 의심하게 하고 겁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기 혼자 놓아두고 산에 나무하러 갔다 오니 그 개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이를 해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보았더니 아이가 뉘여 놓은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웃집 사람의 경고가 떠올라 개에게 분노가 치밀러 총으로 당장 쏘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뒷방에서 기어 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늑대가 침입하여 아이를 해치려 하자 자기 집 개가 혈투 끝에 늑대를 물어 죽이고 아이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후회가 되었겠습니까? 바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것은 이러한 엉뚱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여 불신하다 잘못하여 구원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엉뚱한 오해로 생사람 잡습니다. 여러분! 개는 못 믿더라도 진리는 바로 믿읍시다. 성경말씀만은 바로 믿읍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행적과 말씀하신 교훈을 바로 믿고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에 이하에 성경은 어떤 책이라고 했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여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험합니까? 어지럽습니까? 성경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시카코 교회가 홀랑 불타 버렸을 때 무디는 파자마 바람으로 뛰어 나오면서도 그의 손에는 성경이 꼭 붙들려 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 고 묻는 질문에 무디는 성경을 높이 들고 “이 말씀이 있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전에는 무식하다고 초청을 거부했던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부흥회에 초청하여 영국을 뒤집어 놓는 놀라운 영적 역사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의리를 버리지 마십시오. 사람은 믿는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공부를 많이 했고 부자고, 잘났다고 해도 나와 신뢰관계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시면 그 말씀대로 시행하십니다. 그 사람이 잘못되면 어떻게라도 고쳐서 기어코 약속을 지키십니다. 요나단은 의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을 판단했습니다. 부모 자식 간의 인정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더 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한 요나단을 다윗도 믿었습니다. 그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을 들로 도망가게 활을 쏘아 신호를 해 주겠다는 요나단을 다윗도 믿었습니다. 그 두 사람의 우정은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을 들로 도망가게 활을 쏘아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왕의 저의를 알려주기로 했는데 다윗이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요나단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함정에 빠뜨려 죽게 할 수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의 인격과 의리를 알았습니다. 요나단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두 사람 사이의 믿음은 이스라엘을 살렸고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나 사이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버리신 일이 없는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백번씩 의심하고 불신하고 함부로 입을 열어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습니까?
소위 교회의 중직 되는 사람들도 함부로 하나님에 대하여 방정맞은 말을 하는 것을 듣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아니고요. 믿을 사람은 끝까지 믿읍시다. 잘못되면 참고 고쳐서라도 믿게 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더더욱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지 맙시다.

3. 요나단을 조상(弔喪)한 다윗
사람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남이 아무리 달다고 해도 내 입에 쓰면 뱉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언제는 죽자 살자 사랑하고, 또 필요할 때는 위험한 전쟁에 앞장세우고 실컷 부려먹다가 공연히 의심하고 질투하여 드디어 다윗을 죽이려 하던 사울은 결국 하나님 앞에 심판받아 망하고 말았습니다. 블레셋과 전쟁 중 사울왕은 길보아산에서 패망하고 자기 칼로 죽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고 사울왕의 세 아들도 모두 자기 칼로 죽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얼마나 슬퍼했습니까? 사울왕은 다윗을 그렇게 죽이려고 추격하고 괴롭혔지만 다윗은 사울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부은자를 내가 어찌 해 하겠느냐고 부하들을 책망했습니다. 그들의 사망소식을 듣고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삼하1:23)하고 애통해 했고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勝 )하도다”(삼하1:26)고 탄식했습니다. 요나단이 죽을 때 그에게 다섯 살 난 므비보셋이란 아들이 있었습니다.(삼하4:4)
다윗은 나중에 왕이 되어 왕국을 확장하고(BC 1000년경) 당당한 왕위에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유모가 안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려 절뚝바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므비보셋을 찾아다가 요나단을 인하여 은총을 베풀었습니다.(삼하9:7) 심지어 자기와 겸상하여 먹었으며 자기와 가까운 예루살렘에 거하게 했습니다.(삼하9:13) 그리고 사울왕의 밭을 다 그에게 돌려주었으며 많은 종들을 붙여 므비보셋을 공궤케 했다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우정이었습니까? 다윗과 요나단은 진정한 친구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내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친아들처럼 사랑했던 것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믿음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합니다. 서로 신뢰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추한 것을 싫어하십니다.
의로운 하나님은 불의를 싫어하십니다. 약속의 하나님은 불신을 싫어하십니다. 갈등과 분열을 싫어하십니다. 화합하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함께 하십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믿게 하신 하나님은 제대로 바로 믿는 믿음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다윗과 요나단처럼 서로 믿고 사랑하되 하나님을 바로 믿고 사랑합시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위에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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