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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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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251회 작성일 08-02-2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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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이스라엘의 제3대 임금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하게 가장 지혜로웠고, 또 모든 왕들 중에 솔로몬처럼 부귀와 영광을 누린 사람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찍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자기만큼 머리 좋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했고, 상대성의 원리를 발표한 아인슈타인이 아무리 지혜가 빼어났다고 해도 성경말씀 상으로는 그 누구도 솔로몬 왕처럼 지혜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진시황제가 부귀영화를 누렸고, 과거 이승만 대통령 정권 때 동절기인데도 이기붕씨 집에서 수박이 나왔다고 야단들이었지만 그 누구도 솔로몬 임금이 누리고 살았던 부귀와 영광에는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왕은 어떻게 그러한 특출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어떻게 그러한 부귀와 영광을 누리고 살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것은 따지고 보면 해답이 너무도 간단합니다. 여러분! 그 해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 한번 잘한 덕분이었습니다. 솔로몬이 기도한 내용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과 코드(cord)가 맞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크고 비싸고 좋은 최신형 TV라고 해도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전파와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휘황찬란한 산데리아라고 해도 발전소에서 흘러오는 전류와 코드가 연결되지 않으면 보관하기만 더  골치 아픈 물건이 되고 맙니다.  문제는 하나님과 코드가 맞아야 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의 기도가 도대체 어떤 기도였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던 것입니까?

1. 희생과 정성이 담긴 기도였습니다
요즈음 예수 믿는 사람들 기도소리를 들으면 황홀한 정도입니다.
톤(tone-음질) 도 좋고 감정도 풍부하고 더 감동적인 것은 미사어구를 적절히 조화하여 유창하게 간구하는 것을 보면 과연 하나님도 찡하게 감전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솔로몬이 기도를 잘 했다고 해도 요즈음 사람들보다 더 잘 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솔로몬을 능가하는 기도 응답을 안 해 주실까요? 다 좋은데 희생과 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임금의 적자가 아니었습니다. 첩인 밧세바의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임금에게는 많은 자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솔로몬이 후계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했습니다.(3절) 또 그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효도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솔로몬은 수많은 형제들을 제치고 왕이 되었으니 얼마나 우쭐했겠습니까? 당장 대관식 잔치를 베풀며 왕의 위엄을 갖추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산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하고 분향했습니다. 당시는  성전이 건축되지 않았었기에 높은 곳에 제단을 마련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때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여기 일천번제는 소 천 마리를 드렸다는 것을 말하는데 제사를 천 번을 드렸다는 의미가 클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에 수십 번 드린다고 해도 천 번을 드렸다면 상당한 세월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나라 사정이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추측컨대 그만큼 많은 소를 희생시켜 최선의 희생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제사 드렸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드린 제사였습니다. 그럴싸하게 자신의 부와 위엄을 과시하려는 그러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더더욱 몸으로 때우고 말로 때우는 형식적인 그러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신하들을 시켜 대신 드린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왕이 직접 왕궁을 떠나 불편한 숙식을 하면서 친히 자기희생을 다 드린 그러한 제사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전능하심을 믿고 도움을 청하는 정성어린 제사였던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이 너무 지나치게 형식에만 치우치고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관례처럼 정성 없이 드리는 현상을 볼 때 심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바쁘고 귀찮으니까 이것도 생략, 저것도 생략, 어떤 교회는 목사님 설교도 15분만하기로 당회에서 의결했다는 웃기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예배를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헌금 몇 푼하고 큰소리치고, 주일 낮예배 한번 드리고 직분 타령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나마도 고맙다고 하실까요?
그렇게라도 믿으니 안 믿는 사람에 비하면 얼마나 대견하다고 박수쳐주시겠습니까?
솔로몬의 제사는 그런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물질을 드려 희생하고 정성을 다 쏟은 그러한 속이 뜨거운 제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16:7). 그 솔로몬의 희생과 정성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의 중심과 하나님의 사랑의 코드가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그 밤에 하나님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 꼬 구하라” 하나님은 너무 너무 기쁘셨습니다. 예수님이 개 취급을 해도 상에서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어 자기 딸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강청한 사마리아 여인을 보시고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8)고 기뻐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솔로몬의 중심을 보시고 너무 너무 좋아 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이 솔로몬의 기도 응답의 기록을 깨시겠습니까? 우리도 깰 수 있습니다. 용해동교회에서 그런 신자가 나오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솔로몬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아버지 다윗에 비하면 작은 아이에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많은 백성을 잘 다스리고 바로 재판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고 했습니다. 선과 악을 분별할 줄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겸손한 체 해 본 소리가 아닙니다. 속 다르고 겉다른 그러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자신의 부족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귀한 직분을 바로 감당해 보려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한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약4: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벧전5:5)
솔로몬은 참으로 자기 자신을 아는 자였습니다. 겸손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 다윗 임금을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과 비교할 때 자신을 작은 아이에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의 단점 중 하나는 자기를 크로즈 업(close up) 시키기 위해 되도록 전임자의 업적을 무시하거나 심지어 전임자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정책도 일관성이 없어 선량한 백성들만 얼마나 시달립니까?
실로 솔로몬의 마음은 솜털같이 부드럽고 비단같이 고왔습니다. 하나님은 맡겨준 직분을 잘 감당해 보려는 충성심과 겸손함을 보시고 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했습니다.(10) 너만 오래 부하게 살려는 욕심도 없고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를 구하지도 않고 오직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하는 네 마음과 중심, 그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 마음에 쏙 들었다고 기뻐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도 하나님 마음에 쏙 드는 신자들이 됩시다. 어떻게든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잘 감당해 보려는 충성스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다 되십시다.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고, 내 부귀와 영달보다는 남을 더욱 섬기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립시다. 좋은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울산에 어떤 집사님은 교회 건축 생각하며 기도하고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만선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시며 놀라운 응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중심과 기도가 너무 하나님의 마음과 코드가 맞아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보너스로 주셨습니다.(13절)

3. 하나님과 코드(cord)를 맞추시기 바랍니다
빌2: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꿈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가지십시오. 그러한 소원을 갖게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안에서 행하십니다. 
C. C. C 세계 대학생 선교회를 창설한 빌브라이트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의 속에 잠재된 능력을 개발하여 세계를 움직이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요, 사랑의 원천이요, 우주를 조종하시는 능력의 발전소입니다. 이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렘29:11이하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요셉은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노예였습니다. 억울하게 갇힌 죄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믿음의 코드를 하나님께 맞추었습니다.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의 기도를 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했습니다. 요셉의 그 좋은 마음이 하나님과 코드가 맞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솔로몬처럼 희생과 정성을 드립시다. 겸손합시다. 사명감당을 위해 기도합시다.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 생명을 구하기 위해 기도합시다.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므로 중심이 뜨겁게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되 구치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보너스로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잊지 맙시다. 그 주님께서 말씀하신 뜻에 코드를 맞추십시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능력이 전달되어 여러분을 살리실 것입니다.
“네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그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솔로몬의 기도처럼 좋은 내용의 기도를 합시다. 희생과 정성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우리의 믿음생활이 하나님과 연결만 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제 솔로몬을 능가하는 기도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솔로몬의 기록을 우리가 깹시다. 더 지혜롭고 더 부귀와 영광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마음에만 맞으면 끝납니다.
기대가 없는 믿음은 비극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코드를 맞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끌어내리지 마시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세요. 정성을 드리세요. 희생을 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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