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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갇힌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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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0,155회 작성일 08-02-2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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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어떠한 환경에서나 자기 할 나름인 것입니다. 예쁨도 자기에게서 나고 미움도 자기에게서 나는 법입니다. 180°로 환경과 처지가 변했지만 믿음만은 여전했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요셉 때문에 주인집까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보디발이 요셉을 절대 신임했으며 가정의 총무로 삼아 자기의 소유를 다 요셉에게 위임했다고 했습니다.(4) 그런데 요셉에게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좀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편하게 살게 되었는가? 했더니 난데없는 시험이 닥친 것입니다.

1. 보디발 부인의 유혹
사람이 일거리가 없고 편하면 좋은 것 같지만 그런 사람들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보디발이 정사에 바쁘다 보니 아무래도 가정을 많이 비었을 것입니다. 그때 보디발 부인에게 용모가 준수한 그러면서 충복인 요셉이 눈에 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당시 노예야 움직이는 도구에 불과한 존재였으니 주인이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내야 했을 때가 아니었습니까?  그러한 주인의 신분으로 주인의 처가 눈짓으로 유혹했고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당시는 노예가 주인의 성적 노리개로 사용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단호히 여주인의 청을 거절했으니 여주인의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요셉이 얼마나 괘씸했겠습니까? 요셉은 주인 보디발이 자기를 절대 신임했는데 어떻게 그 주인을 배반하겠는가가 첫째 이유였고 그보다 더 큰 거절의 이유는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9)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인도주의적이며 신실한 믿음의 사람입니까? 어떤 도로 자기 합리화(合理化)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죄와 타협하지 않고 떳떳해야 합니다.
여주인은 얼마나 모욕스러웠겠습니까? 정욕이 불타고 있을 때 무참히 거절당했으니 너무도 황당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 해 볼 때 막강한 힘을 가진 여주인이 어이없게 비천한 노예에게 그대로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여기서 제2의 반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억울하게 당한 요셉
적반하장(賊反荷杖)이란 말이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이 잘한 사람을 도리어 나무라는 경우를 말합니다.(The Turns on the master with a club) 성경에서 여주인의 반응을 눈여겨보십시오.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는 요셉을 잡고 늘어지자 옷까지 벗어두고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교활한 여주인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여주인은 집사람들을 불러서 히브리 사람(요셉)이 자기를 겁간(劫姦)하려 들어왔다고 소리쳤습니다.(14) 주인 보디발이 돌아오자 멋진 드라마를 또 연출하였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배은망덕한 사람이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사람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음해했을 것입니다. 부인의 그럴싸한 연극을 보고 화 안날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비천한 종에게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믿었던 나무에 곰(곰팡이)핀 격이 된 셈이라고 생각하니 노기가 충천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들어가면 좀체 나오기 어려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집어넣고 말았던 것입니다. 엄청난 중 죄인으로 다루었다는 이야기입니다(20).

3. 요셉의 반응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한 사람은 기가 막힐 일입니다. 누가 권세 있는 주인 부인의 말을 더 믿지 비천한 노예를 인정해 주겠습니까? 설령 요셉의 말이 맞는다고 인정된다고 합시다. 의로운 재판관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요즈음 같아도 법관이 선뜻 요셉의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심지어 지금도 유전무죄(有錢無罪)요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용어가 나돌고 있으며 얼마든지 그런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더욱이 평상시 요셉을 눈에 가시처럼 시기하고 질투했을 동료 노예들이 요셉을 변호 해 주었을 리도 없고 또 편들어 주다가는 자기까지 치도곤을 당할지도 모르니 설령 요셉은 믿는다고 해도 박수는 주인 부인을 위해 쳐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하고 십자가에 매달 때도 “죽이라”고 소리치던 무리 중에 예수님의 의로움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한명도 없으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6.25당시 인민재판처럼 제사장들과 세도 있는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며 소리쳤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악 세상의 실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 탄생당시 헤롯왕의 말을 거역하고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간 동방박사들을 우리는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마2:12)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려고 온 박사들에게 헤롯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아기가 태어난 곳을 발견하면 자기에게 고(告 )할 것을 당부했었습니다.
만일 헤롯의 말대로 했더라면 톡톡히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음식 뿐 아니라 선물, 노잣돈 등 후한 상금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반면 만약 도망가다 붙잡히면 감옥에 갇히거나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헤롯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다른 길로 갔다고 했으니 대단한 믿음의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챤들이 돈과 권력 앞에 그렇게 무릎 끓지 않고 남은 자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기독교 교육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우리 교회에서 아동교육에 역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요셉은 어떤 변호를 하였습니까? 성경에 요셉이 억울하다고 변호했다는 부분은 한자도 없습니다. 요셉은 체념했습니까? 아닙니다. 주인의 은혜에 보답했습니다. 비천한 자기를 그렇게 믿어주고 밀어주었던 주인에 대한 은혜를 너무도 감사했기에 한마디 변명조차 않고 순순히 당해 주었으리라고 봅니다. 요셉의 신앙인격을 우리는 믿습니다. 자기가 변명하고 억울하다고 소리쳐 보았자 인정해 줄 리도 없겠지만 자기를 그렇게 사랑해 주었던 보디발의 체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정말 속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겠습니까? 세상 어떤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요셉을 더욱 귀하게 보시고 전욕(典獄))의 마음까지 감동을 주어 요셉을 인정하고 전옥의 은혜를 입게 해 주셨습니다. 진실한 믿음의 사람은 감옥 아니 인생이 어떤 가시밭길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항상 그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3절 끝절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늘이나 꽃밭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에는 마귀가 있고 감옥이나 가시밭 속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곳이 천국이요 형통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간 좀 어렵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도 펄펄 뛰며 내가 해결하려고 서둘지 맙시다. 상대가 잘못했더라도 오히려 그 사람의 입장을 배려 해 주고 기도 해 줄 수 있는 속 깊은 신자가 될 수는 없을까요? 나도 요셉처럼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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