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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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시편 1편 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1)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는 복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빛이 있는 곳과 빛이 없는 곳으로 나뉘듯
사람은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우리가 복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걸고 복에 매달린다고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을 구하기위해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복이 항상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절에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나무도 이 곳에 내가 심겨야 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나무는 없습니다.
누군가 심겨주었고 시냇가에 심겨졌다는 사실은 이 나무가 복있는 나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만 뿌리를 물이 있는 시냇가 쪽으로 더욱 뻗었다는 정도가 그 나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알고보니 복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을 보면 있는 복도 내차버렸던 삶이었지만 깨닫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수 강가에 심겨진 복 중의 복인이 었던 것입니다.
1절에 악인들은 꾀를 지어낸다고 합니다.
꾀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머리를 써서 한다면 한 시간의 수고로 두배 세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꾀는 일반적인 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타인의 것을 탐하고 자신의 수고를 면제받고자하는 탐욕과 게으름에 있습니다.
악한 꾀든 선한 꾀든 일단 상당한 노력과 고민이 동원됩니다.
복 없는 자로 끝나는 악한 꾀를 위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을 선한 꾀를 내는데 쓴다면 복있는 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선한 꾀는 2절에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3절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만드시는데 다른 기술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팍팍한 삶이 복 있는 자의 삶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파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라고 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 깨닫는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나'라는 존재가 되기까지 내가 어디어디에 심겨져야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살아오다보니 어느덧 이런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나를 만들고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나를 둘러쌓은 언어와 정보와 문화와 관계였습니다.
내가 나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나의 관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변화되고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2022년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의 시냇가에 더욱 우리의 뿌리를 뻗어나가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들어가야 합니다.
2022년에 돌아보닌 어느새 내가 복있는 자였구나라는 고백이 터져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시편 1편 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1)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는 복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빛이 있는 곳과 빛이 없는 곳으로 나뉘듯
사람은 복 있는 사람과 복 없는 사람으로 나뉩니다.
우리가 복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걸고 복에 매달린다고 복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을 구하기위해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복이 항상 따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3절에 복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나무도 이 곳에 내가 심겨야 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나무는 없습니다.
누군가 심겨주었고 시냇가에 심겨졌다는 사실은 이 나무가 복있는 나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만 뿌리를 물이 있는 시냇가 쪽으로 더욱 뻗었다는 정도가 그 나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알고보니 복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과정을 보면 있는 복도 내차버렸던 삶이었지만 깨닫고 보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수 강가에 심겨진 복 중의 복인이 었던 것입니다.
1절에 악인들은 꾀를 지어낸다고 합니다.
꾀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머리를 써서 한다면 한 시간의 수고로 두배 세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한 꾀는 일반적인 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타인의 것을 탐하고 자신의 수고를 면제받고자하는 탐욕과 게으름에 있습니다.
악한 꾀든 선한 꾀든 일단 상당한 노력과 고민이 동원됩니다.
복 없는 자로 끝나는 악한 꾀를 위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을 선한 꾀를 내는데 쓴다면 복있는 자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선한 꾀는 2절에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3절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만드시는데 다른 기술을 동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의 팍팍한 삶이 복 있는 자의 삶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파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라고 하며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스스로 깨닫는 능력이 없습니다.
내가 '나'라는 존재가 되기까지 내가 어디어디에 심겨져야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다기보다는 살아오다보니 어느덧 이런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나를 만들고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나를 둘러쌓은 언어와 정보와 문화와 관계였습니다.
내가 나의 삶을 변화시키려면 내가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나의 관계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에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와 소통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변화되고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2022년을 맞아 하나님의 말씀의 시냇가에 더욱 우리의 뿌리를 뻗어나가야 합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성도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들어가야 합니다.
2022년에 돌아보닌 어느새 내가 복있는 자였구나라는 고백이 터져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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